일단, 나가세요! 그리고, 달려요!
연재를 마치며
달리기는 n명분의 의미를 갖는다. 멋진 성취의 기록, 함께하는 기쁨,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 등등 수도 없이 반짝거리는 달리기의 의미를 하나로 단정 지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내게 달리기란 추적관찰기였다. 명상과 운동 그 사이쯤에서 나는 나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에 대해 참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태어나서 10대에서 30대까지 내내 나 자신을 찾아왔는데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느낌이라니. 다이어트 겸 체력관리 겸 정신건강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달리기는 내게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었는데 덤으로 자기 탐구에도 도움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1 숨이 차고 지칠 때 내가 하는 행동
: (핑계에 가까운) 말이 많아지고, 오늘 더는 달리지 못하는 사연을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2 어떨 때 먹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먹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
: 습관, 십 대의 감정적 폭식, 미에 대한 강박적 관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 시간들,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한 몸에 동의했지만 사실 정확히 그 '미'라는 개념을 정립할 시간을 갖지 못해서 정작 어떤 게 예쁨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3 어디까지 어떻게 달릴 수 있는 사람인지
: 짝꿍은 내게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고, 의미 있는(?) 세뇌 덕에 나는 내가 더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숨이 차고 지칠 때 '원래 운동은 힘들려고 하는 거다.'라고 못 박은 짝꿍 덕에 나는 뒤로 물러설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쓰기와 달리기의 공통점은 둘 다 앞으로만 나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4 나에 대한 오해, 달리기에 대한 오해, 세상의 오해
: 1, 2, 3번을 통한 자기 객관화와 단련을 통해서 나는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임을 느꼈다. 그리고 맘먹으면 정말 무섭다는 것도. 달리기에 관한 책과 영상은 제각기 n개의 철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말하긴 어렵고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페이스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도, 달리기도, 삶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며 마지막의 만족이란 결국 자신이 찾은 정의가 충족되었을 때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 정의를 얼마나 세밀하게 찾아가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시로 깨고 또 깨도 부서지지 않을 그 '기쁨의 정점'에 대해!)
천천히 달린 기록에 대해 '걸어 다니냐'는 악플도 보았고, 달리기 PB(Private Best: 개인 최고기록)를 못 채워 패배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달리기가 이벤트나 유행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하길 바란다. 개의치 않는다. 기록이상의 가치를 얻었기 때문이다.
#5 생각의 전환
: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의 전환'을 경험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걸 경험했다. 결국 이걸 위해서 달려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생각이 바뀐 건 수도 없이 많지만,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배고픔과 허기의 차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배고픔은 하루 중 기다려야 할 상태이지만, 허기 특히 감정적 허기는 입 안 가득 음식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배고픔은 불안이나 무기력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가벼움과 평온함을 만든다는 걸 느끼고 나니 지난 시간 나를 위로한답시고 뱃속을 괴롭혀왔다는 생각을 했다.
2. 근력을 위한 운동과 식사
반면에 나는 어느 때보다 잘 챙겨 먹는다. 책임감이 생겼달까. 음식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식재료를 고르는 시간이 재밌고 신난다. 나는 애초에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달리기를 하면서 허벅지 근육이 탄탄해졌는데 그 근력을 유지할 식단을 챙기게 될 수밖에 없다.
3. 끈기 있는 끊기
여전히 끈기 있는 끊기는 필요하다. 식단 조절을 하면서 플랜 B랍시고 이런저런 묘안들이 나오던데 내 눈에는 다 정신승리 같다. 오히려 원래 먹지 못한 음식에 대한 갈망만 키운다. 과감하게 끊어버리면 삶의 알고리즘도 바뀐다. 물론 2-3일은 금단 증상이 오지만 간절하면 그 시간은 버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4. 계속되는 변명과 두려움은 나를 비추는 거울
나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 신경이 없고 겁도 많고 게으른 데다 (당연히 힘든) 운동을 하면서 힘들다고 짜증 냈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변명과 두려움은 매일 업데이트된다. 이유도 참 가지가지다. 하지만 그걸 보면 내가 보인다. 내 마음이 비친다. 거울삼아 함께 간다.
5. 자신과 화해하면 타인과의 관계도 회복
<나의 러닝 메이트>를 연재하면서 너무 짝꿍 얘기 없이 내 얘기만 쓰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사실 내가 써온 글들은 짝꿍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같이 뛸 수 있었으니까 썼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격려와 응원 덕택에 썼지만 집착하는 욕구, 갈망, 환상과 착각 등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나는 어쨌든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짝꿍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근수저'와 사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연재는 마치지만, 달리기는 아주 오래도록 하게 될 것 같아서 좋은 생각이 나면 매거진으로 종종 써볼 생각이다. 연재만이 주는 연결감이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주제로 주욱 써온 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새삼 달리기, 글쓰기, 삶이 정말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셋 중 하나를 사랑하면 나머지 셋도 사랑하게 될 거라는 느낌도.
달리기는 무 null에서 무 null로 가는 일이다. 첫 번째 무 null는 너무 숨차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무'의 상태를 말하고, 두 번째 무 null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닐 무'의 상태를 의미한다.
철저히 나를 비우는 것이 얼마나 유토피아적 개념인지 안다. 지향할 뿐 도달할 순 없는. 다만 하루의 목표를 달성할 뿐이다. 하루치 유토피아. 그건 도달할 수 있는 미래니까. 시달리는 삶에서 매달릴 건 달리기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