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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r 02. 2023

태풍이 지나간 자리

남이 가졌다고 나도 가질 수 없고, 남이 한다고 나도 할 수는 없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2005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폭풍우 치는 밤에(가부와 메이 이야기)>는 늑대와 염소가 등장한다. 폭풍우 치는 밤에 폐가로 피신한 새끼양 '메이'와 늑대 '가부'가 어둠 속에서 만난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과거 이야기를 공유하며 친구가 된다. 날이 밝고 서로의 존재를 마주한 메이와 가부는 먹이사슬 관계에 있단 걸 알고 놀라지만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늑대 무리의 공격에서 메이를 구한 가부는 동굴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약속대로 도와줘서 고마워"

메이가 가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자, 가부는 쑥스러운 듯 대답한다.

"친구라면 당연한 거지"

메이는 갸우뚱하며 속엣말을 꺼낸다.

"늑대라면 나 같은 염소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잡아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 말에 가부는 진심을 표현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염소고기가 아니라 내 친구가 된 염소를 좋아하게 됐어"


  어둠 속에서 내 옆구리를 찌르는 자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으면 친구인지 적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 얼굴과 사귀어보지 않으면 진정한 우정도 기대할 수 없다. 괴롭지만 상처를 들춰봐야 적당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희망퇴직'이라는 태풍은 우리 가정을 관통하며 뿌리를 흔들고 가지를 쳐냈다. 다신 돌아보기 싫은 일이지만 여러 번 곱씹고 글로 정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를 뒤흔든 존재를 상기하고 같은 어둠을 가진 이들과 아픔을 공유하며 그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고 싶었다. 글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글로 써내며 다시 생생하게 과거를 끄집어내 확대 관찰하고, 사실보다 더 중요한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태풍은 일상을 망가뜨리지만 깊은 바다를 뒤집어 적조를 해결하고 어획량을 늘린다. 탁한 공기를 맑게 하고 오염된 자연을 정화한다. 우리 가정에게 다가온 태풍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내가 작아지면 타인과 세상 모든 것들이 커 보인다. 가지지 못한 걸 타인의 손에서 찾으며 부러움과 공허감에 몸부림치지만 결국 남는 건 더 깊은 우울감이다. 억압당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실천을 행했던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는 "반드시 나 자신 아닌 다른 것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결핍은 욕구를 드러내지만 욕구에 잠식당하면 집착하게 된다. 집착은 환상을 만들어내고 현실에 발붙일 수 없게 만든다. 속이 빈 항아리가 물 위로 뜨듯 내 안을 비워야 위로 떠오를 수 있다.


  '나'로 향했던 시선을 억지로 끊어내고 주위를 둘러보자 타인의 고통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 모두가 결핍과 싸운다. 다른 사람은 쉽게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나는 늘 고민해야만 하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인생이 공평한 건지도 모른다. 그 결핍과 친해지고 내 것이라 받아들일 때 인생이 한결 더 가벼워진다. 삶은 지나가는 것이고, 달이 차고 기울듯 환할 때도 어두울 때도 있다. 성장 없는 고통 같아 보여도, 대가 없는 가시밭길 같아도 이것이 진정한 내 모습이다. 어쩌면 인생의 황금기가 벌써 지나간 건지도 모른다. 만개한 꽃잎은 떨어지고 추한 줄기만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트리나 폴러스의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줄무늬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 상태라는 죽음을 경험한 뒤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리처드 바크의 우화소설 <갈매기의 꿈>에서도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동료들의 배척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존재의 초월적 능력을 일깨운다.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겁쟁이 닭 '잎싹'이 족제비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엄마가 되고 싶었던 진정한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린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내려놓는 건 나를 죽게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한 '나'에 다가가게 해주는 쾌속열차이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남이 가졌다고 나도 가질 수 없고, 남이 한다고 나도 할 수는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가봤자 가랑이만 찢어진다. 그 이면에는 내가 늘 최고여야 하고, 최선의 선택만을 하고 싶다는 완강함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자기 중심성의 발로일 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욕망'이론을 주장했다. 주체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어느 사이에 타자가 되어 타자의 욕망을 가지고 자기를 재발견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주변에서 말하는 인정과 욕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원하고 더 높은 가치를 주며 좇는다. 타인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


  '희망퇴직' 사건이 생겼을 때, 나는 무조건 공기업이라는 줄을 붙잡고 싶었다. 학부에서 행정학을 전공할 때, 그리고 부모님의 말속에서도 공무원과 공기업이 최고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이야기들도 큰 몫을 했다.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기고 주말 부부를 하게 되더라도 '안정'이라는 허상을 차지하길 원했다. 그 말은 그동안 나의 안정이 남편의 직업에서 왔다는 말이 된다. 남편이 회사를 나온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나는 죽음을 생각했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모두에게 공기업이나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일 순 없다. 한 직장에서 예순이 될 때까지 비슷한 일을 반복하며 사는 삶이 모두에게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예순 이후에도 삶이 남아있기에 또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은 안정적인 돈벌이 수단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안정'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갑자기 거리로 나앉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지금과 전혀 다른 결의 삶을 살 수도 있고 인생의 긍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올 수도 있다.


  태풍은 내가 가진 것들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고인 물을 빗줄기로 흘려보낸다. 내 안을 비울 때 태풍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은 곳이 드러난다. 생채기 난 곳을 다독이고 잘못된 것을 베어내자 그동안 쌓아 올린 내 삶의 무늬가 보였다.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글쓰기와 쓰는 존재로 살고 싶은 진짜 욕구가 나를 보듬었다. 수녀이자 미국 홀리네임즈대학의 영성학 교수인 박정은은 <사려 깊은 수다>라는 책에 이런 문구를 적었다. "욕심은 덧없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많으며 잠시 지나가는 삶에 대한 감사를 배운다"



유모차 밀고 장 봐오는 길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며 장난감 자동차 바퀴를 굴려댄다. 나는 큰 일을 치른 뒤에는 '몸살'이라는 통과 의례를 거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 외에는 모든 것들이 변했다. 남편은 자기 계발을 위한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고 있고 나는 그가 최대한 개인 시간을 갖도록 노력한다. 아이들 위주의 삶에서 부부에게 주도권이 왔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의 마음이 평안하도록 그의 의견에 무조건 긍정하고, 저녁 식사 시간도 아이들 스케줄에서 남편의 퇴근 시간으로 바뀌었다. 돈을 쓸 때는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인지를 고민하고, 발품을 팔아서 장을 보려 한다. 우리 동네는 대기업 밀집 지역이라 비슷한 기업이나 직종에 근무하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따라 살지 않으려 한다. 태풍을 통해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로마 제정시대 정치가 세네카는 "평생 동안 우리는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2000년 전에 말했다. 우리는 오늘도 사는 방법을 배워간다.


우리의 일상. "이건 누가 다 치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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