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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Sep 03. 2024

미션 임파서블_바나나 전달

 지난주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은 우리에게 당부했다.


"회원님들, 곧 추석이죠. 항상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한테 아무것도 주시면 안 됩니다. 저는 이미 월급을 받으면서 운동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절대 절대 아무것도, 요만한 것도 주시면 안 됩니다. 꼭 명심해 주세요."


 명절이 가까워지니 한 말이었다. 하긴 그 말이 아니더라도 강사진에게 어떤 것도 줘서는 안 된다는 안내글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난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가장 많이 배우고 자주 뵙는 스승님이신데 이렇게 그냥 보내는 게 맞을까 하는. 마음을 전하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과하면 문제가 된다. 함께 마음을 전하자는 제안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고, 선생님들 중에서도 누구는 선물을 받고 누구는 못 받는 상황도 불편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 끝에 선생님들이 다 같이 드실 수 있는 간식을 좀 전달드리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비싼 선물은 할 수 있는 사정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지난번에 농산물 시장에 갔다가 바나나 몇 손을 간식으로 전달하셨다고 했다. 바나나! 가격도 저렴하고 먹기도 편한 딱 좋은 간식거리다 싶었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나와 마트에 들렀다. 마트천국인 우리 동네 내 최애마트에서는 유기농바나나를 한 손에 3,000원에 팔고 있었다. 송이가 크진 않아 네 손을 샀다. 그래봤자 대여섯 개씩밖에 안 달려있기에 직원이 10명이어도 인당 2개씩 먹으면 끝날 양이다. 그래도 자전거에 실으니 무게가 두둑했다. 미리 준비해 둔 종이봉투에 담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전달이 아주 힘들었다. 사람이 없어 앞에 두고 가야 하나 생각하며 돌아서다 한 직원분과 마주쳤는데 간식을 전달을 좀 부탁드린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절대 안 된다며 다시 가져가라 했다. 선생님 이름도, 내 이름도 안 밝히겠다 했지만 거의 막무가내였다. 이런 거에서는 나도 지지 않는 편이다. 그럼 아무도 못 마주친 걸로 하고 앞에 두고 가겠다고 하고 샤워장으로 도망쳤다. 그 앞까지 따라오셔서 몇 번을 옥신각신 한 끝에야 바나나 전달에 성공했다. 바나나 몇 손을 전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아무튼 선생님들과 직원분들이 맛있게 드셨을 거라 믿는다. 비싼 무엇은 아니어도 선생님들도 간식이 불청객처럼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명절 선물 느낌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은 전달되었길 바란다. J가 회사에 명절선물로 들어왔다며 꺼내놓은 사과를 보며 그렇게라도 바나나를 전달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회사에 다닐 때 그런 것들은 소소한 재미였다. 나에겐 보람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익명의 제자가 전달한 간식을 먹으면 조금은 뿌듯하지 않을까? 한입 먹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약간의 보람참과 흐뭇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P.S 아마도 그럴 일을 없겠지만 혹시나 바나나 배달원을 찾는다면 모두를 위해 모르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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