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재는 후문 앞에서 남자애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희미하게 눈발이 날렸다. 과외 물려받는 것 관련해서는 메시지로 이야기하기로 정리하고 헤어졌다.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동계 계절학기를 들으려면 돈은 많이 모아둘수록 좋았다. 과외 자리 하나가 더 생겨 통장 두둑해질 예정이니 기분이 왠지 좋아졌다. 흐릿한 눈이 내리기 시작한 그 금요일의 밤. 혼자 자취방에 들어오니 왠지 씁쓸했다.
경기도 외곽의 본가에서 S대까지는 애매하게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희재 엄마는 명문대에 입학한 딸에게 1년간의 자취를 선물해줬다. 돈도 없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희재 만류에도 엄마는 굳이 후문 앞에 방 하나를 얻어주고 몸 편히 공부하라고 했다. 어릴 때 아빠와 이혼해 단둘이 사는 처지였지만 살가운 모녀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 엄마가 이 학교 입학에 얼마나 기뻐하는지는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는 표정에서 느꼈다.
엄마의 무리로 얻은 그 자취방에 보일러를 켤지, 전기장판을 켤지 고민하던 희재는 벌떡 일어났다. 눈이 오는 금요일의 한겨울. 왠지 낭만적이었다. 에코백에 새로 산 소설책들을 넣고 부랴부랴 뉴발란스 운동화에 발을 욱여넣었다. 본가 가는 빨간 버스도 바로 도착해 탔다. 점점 굵어지는 눈발이 서울 야경과 어우러졌다. 가슴이 들떴다. 뭔가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벅찬 밤. 이런 느낌이 들면 뭐든 써야 했다. 가끔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으로 뭔가를 쓸 때면 인생의 고난이 싹 잊혔다. 문학적 재능도 아니고 천재적 감각도 아니지만 혼자서 이 벅차오름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심장 뻐근해지는 나날들이 있었다. 문창과 입학은 시작도 못하고 퇴짜 맞았지만, 그쪽에 타고난 천부적 재능은 없대도, 그래도 소설 쓰는 일은 계속 동경하고 사랑했다. 이름 날리는 작가 중 문창과와 국문과가 아니며 애초에 문과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 재밌는 책만 찾으면 작가 프로필부터 검색했다.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판타지나 SF가 아니고 오로지 <그것>을 쓰면서 생뚱맞은 전공을 한 작가는 드물긴 했다.
[오늘 날씨 죽이지 않냐?]
희재는 공찬과 추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았다. 한 명은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굴속에 들어간 것일 테고, 한 명은 행복한 학과생활을 즐기러 알콜의 굴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렇게 눈이 펑펑 오는 날 국문학도는 코딩을 하고 공학도는 <그것>을 쓰고 싶어 근질근질하다니! 대학 입시와 완전히 어긋난 꿈의 작대기를 보라. 희재는 몽글몽글한 케이팝을 틀었다. 그렇다. 희재는 그것을 쓰고 싶어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희재는 경험해본 적도 없으면서 사랑 이야기 짓는 걸 좋아했다. 남에게 보여주거나 인정받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었다. 일단 스스로 쓰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어 즐겼다.
희재에게 가끔씩 찾아오는 그 가슴 뻐근해지는 마구 쓰고싶어지는 증상은 참으로 빨리 증발했다. 이건 국문학도나 문창과 학생이 아니라 그런 거라고 확신했다. 이 기분을 좀 더 오래 붙잡는 방법은 분명 전공 시간에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버스에서 내리자 눈발이 굵어졌다. 무겁고 습한 눈이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15분을 걸어야 본가 빌라가 나왔다. 우산 없이 눈을 쫄딱 맞자 몸이 점점 솜처럼 무거워졌다. 빌라에 도착했을 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채였다. 집은 자취방 못잖게 음산하고 어두컴컴했다. 엄마에게 전화하니 이모와 찜질방에서 자고 오려고 외출한 상태였다. 올 거면 진작 말을 하지 왜 갑자기 오냐고 혼도 났다. 불도 안 켜고 바로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오자 피곤이 몰려왔다.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오래된 구형 노트북을 켜고, 대학 원서를 썼던 그 키보드로 소설을 써야지 마음 먹었는데. 계획에 없던 다 젖은 옷 빨래까지 돌리느라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막상 키보드 앞까지 갈 힘도 없어 소파에 척 드러누웠다. 프로스타스 해체 이후로 변변한 영감 주는 뮤즈가 없었다. 결국 수건으로 머리를 둘둘 말고 리모컨을 집었다. 이렇게 기운 없는 몸으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문창과에 가면 기력이 쇠한 순간에도 글 쓰는 악바리 정신머리에 대해 교수님들이 알려주지 않을까. 배울 수 없는 것에 문득 서러워졌다. 서러운 손가락이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무 채널이나 돌렸다.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뭔가를 쓸 거다. 애정에 눈 멀어 서로밖에 모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희재가 눈을 비볐다. 누워있느라 비스듬하게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렸다.
익숙하고 희재 홀로 오랜시간 사랑해온 방송국이었다. 음악 전문 채널. 여기서는 아이돌들의 리얼리티를 방송해주고 케이팝 퀴즈쇼를 운영하고 연말연시엔 굵직한 가요 시상식과 매주 가장 퀄리티 높은 음악방송까지 했다. 희재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 없는 케이팝 전문 채널이었다. 실존하는 사랑의 손끝을 잡아본 적은 없지만 저 방송국이 열어주는 세계에서는 마음 동하게 하는 사랑이 존재함을 배워왔다. 오늘은 왠지 운명적이었다. 하필이면 텔레비전이 있는 본가로 불쑥 오고 싶었다. 함박눈이 예정된 날 우산도 없이 버스를 타서 눈에 쫄딱 젖었다. 덕분에 몸은 피로해졌고 원래 계획대로 사랑 이야기를 쓰러 컴퓨터 앞 책상 대신 소파에 누웠다. 모든 게 망해버렸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리고 그 텔레비전 안에 그들이 있었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소파에 등을 기대 앉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텔레비전 코앞이었다. 불 끄고 티비 앞에 앉으면 눈 버린다고 잔소리할 엄마도 없었다. 창밖에선 소리 없는 눈이 펄펄 내린다. 집안에는 방금 널어둔 부드러운 섬유유연제 향이 진동하고, 머리와 몸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레몬향이 폴폴.
희재 시선을 뺏은 건 어느 신인 아이돌의 데뷔 직후 리얼리티.
대형 소속사 아이돌도 아니었으며, 그러니 재방송도 이런 비주류 새벽 시간대에 해주는 거였다. 방송 포맷은 간단했다. 데뷔 직후의 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이 본인들을 알리기 위한 게릴라 공연을 준비한다. 피디는 그 공연장 규모를 정하는 미션을 내린다. 멤버들은 첫 쇼케이스 게릴라 공연을 큰 규모로 하고 싶어했고 한참 전 유행했던 커피프린스 1호점 컨셉을 따온 미션이 진행된다. 다섯이 카페를 운영하며 판매한 커피잔 수량만큼 공연장 규모가 결정된다. 총 5일간의 운영 기간 동안 1,000잔 이상을 팔면 천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700잔 아래일 경우에는 중간급 공연장에서, 500잔 아래일 경우에는 작은 방송국 공개홀에서, 300잔 미만일 경우엔 야외 한강 공원에서 가장 열악한 팬미팅을 연다. 데뷔 직후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가장 큰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싶어 했다. 좀 더 많은 이들을 대면으로 만나 본인들의 팬으로 만들고 싶다는 야무진 포부를 드러냈다. 이제 막 꼬질꼬질한 연습생 티 벗은 그들은 아르바이트라는 걸 태어나 해봤을 리도 없고, 팬들을 대면으로 만나 대화 나눠본 적도 없고, 심지어 방송은 앨범을 내기 직전부터 촬영해서 아무도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가장 재간둥이로 보이는 다섯 중 둘째가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며 커피와 그룹을 홍보해도 되냐고 물었다. 피디에게 감히 딜을 시도하다니! 피디는 ‘커피 한 잔이라도 더 파는 게 좋지 않겠냐’고 회유하자, 둘째는 영리하게 고민하더니 ‘장사와 무관하게 여기에 아이돌 애들이 커피 팔고 있다고 우리 그룹을 알리는 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연습생 때 친구들과 전단지 알바를 한 적이 있다면서 깜찍하게 일화까지 공개했다. 순한 멤버들은 모두 둘째 의견에 동의했다. 하나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 희재는 막 1화 중간부터 보기 시작했고 방송은 총 6화 짜리였다. 새벽 내내 5화까지 연속 재방송 중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걸 왜 몰랐지? 이게 다 빌어먹을 대학 수업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공부만 하다니! 생각해보니 자취방에는 노트북이 없었다. 추자 말고는 케이팝 소식을 말해줄 친구가 없었다. 맙소사. 희재는 그간 속세와 단절된 인생이 무상해졌다. 텔레비전 속 5인조 신인 아이돌은 참으로 열심히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5인조 신인 보이그룹 텐빌스입니다!”
저희 텐빌스의 뜻은, 다섯명의 저희가 내면의 선과 악을 모두 보여드리기 때문인데요. 저희 다섯이 그려낼 선과 악, 열명의 천사와 악마, 텐빌스를 기대해주세요! 저희의 첫 데뷔곡은 상큼한 소년들의 첫 등장을 상징하는 스쿨락 댄스힙합 장르인데요! 종이 뚫어지게 외웠을 본인들 컨셉을 말하는 다섯은 귀엽고 총명했다. 둘째가 의견낸 전단지를 만드는 것부터 2화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