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
배우들에게 있어서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꼭 받아야 합니다.
특히 부재중이라도 끊임없이 전화해야 합니다.
캐스팅 디렉터들의 전화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화에 불이 날 때가 있었습니다.(MSG 살짝? 첨가)
그때는 4 잡을 할 때였습니다.
오전에 지하철 안전요원(예전-푸시맨)을 출근시간대 알바로 했었고
가족뮤지컬을 병행하고 있었으며 저녁에 성인 뮤지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촬영을 스케줄에 맞춰서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속 같이 작업하던 캐스팅디렉터에게 드라마 촬영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느 때처럼 촬영을 갔고 하루에 걸쳐서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한밤 중 다시 캐스팅디렉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몇 회 차 추가가 되었고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냐는 전화였습니다.
대답을 하고는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또 캐스팅디렉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캐릭터의 분량이 많아지고 비중이 높아져서 회사 대표님까지 걱정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왜 걱정을 하지? 무슨 걱정을 대표님까지 한다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캐스팅디렉터는 저에게 이번건만 잘해주시면 앞으로 돈 많이 벌게 해 주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
그렇게 제 마음속에 불안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1회 차 촬영을 잘 마치고 2회 차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3회 차 때 일이 터졌습니다.
촬영 리허설 중 블랙아웃이 온 것이었습니다.
며칠 내내 시험 공부하듯이 대사를 외웠는데 결국 머리는 온통 블랙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리허설을 시도한 후 그냥 다음 촬영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캐스팅이 변경됐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그날 있었던 사건들과 같이 연기했던 스타와 현장 스태프들..
상암 야외 촬영장에서 성산대교를 건너며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들..
끊임없이 채찍질하던 제 자신..
공포스러웠던 시간은 그래도 흐르더군요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캐스팅디렉터는 다시 캐스팅 전화를 했지만 티렉터의 전화만 오면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손발이 떨릴 정도의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드라마 촬영을 하고 나서 디렉터들의 연락처를 지웠습니다. (동료들은 배부르다. 아깝다. 좋은 기회였는데.. 등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기다려도 오지 않던 연락들이 그 이후로 왜 그렇게 많이들 오는지..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미친 듯이 밀려왔습니다. 그 두려움은 거절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진정되었습니다.
그렇게 촬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결국 트라우마로 남아 무대에서조차 블랙아웃이 올 때가 빈번해졌습니다.
연습실에서 수백 번 연습하고 수천번 내뱉었던 대사들인데도 불구하고
"다음 대사가 생각 안 나면 어쩌지?" 하는 순간
머리는 하얘지고 식은땀은 줄줄 흐르는데, 입에서는 대사가 나오는중이고, 내가 생각해서 나오는 대사가 아닌 몸이 알아서 뱉는 대사를 인식하며 틀릴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으로 결국 실수해 버리고 그런 나를 자책하며 하루를 보내고.. 반복이었습니다.
예전에 촬영장에서 대사를 못 외워 잘렸다는 말들을 들었을 땐, 준비를 제대로 좀 하지 그런 생각들이 많았는데, 제가 겪어보니 준비의 문제가 아니더군요 멘탈의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깨진 멘탈은 쉽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TO be continue. (II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