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꼴등들의 장래희망
발칙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성장 일기
그 당시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은 고2 최하위 반이었다. 성적으로만 보면 8-9등급의 아이들. 그야말로 꼴등들. 학원 경영진의 시각에서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학원 수익을 올려주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했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우리 반을 ‘정신교육’ 시키려 했다.
1시간 동안 이뤄지는 ‘정신교육’은 부원장님이 들어와 아이들 정신자세, 공부 방법, 그리고 필요한 목표의식을 세워주는 일종의 mental training 과정이었다. 담임인 나도 맨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참관해야 했다.
약속된 7시에 부원장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얘들아, 바로 앉아야지. 의자를 끌어당겨 엉덩이에 딱 붙이고.’
‘그런데 누구세요?’ 명준이었다.
‘난 오늘 너희들 정신교육을 담당하게 된 부원장이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부원장님의 근엄하고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여기 봐야지. 집중!’
쉽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부원장님의 목소리는 점점 하이 톤이 되어가고 있었다.
‘똑바로 앉으라고 했잖아! 여기 봐야지! 너 거기, 정신 사납게 왜 다리를 떨고 있어? 맨 뒤에 너, 지금 하품이 나와! 왜 다들 집중 못하는 거야! 정신 못 차려!’
부원장님의 얼굴은 온통 핏대가 치솟았고, 입에서는 격한 샤우팅에 침이 분수처럼 분사되었다. 며칠 전, 부원장님은 나를 불러 아이들 관리를 그것밖에 못한다고 질책하며 자신이 직접 아이들을 정신교육 시켜 환골탈태시키겠다며 호언장담했었다. 그때 내 속마음은 ‘쉽지 않을걸요.’ 도통 정신교육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쩔쩔매는 부원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10여분 동안의 호통 끝에 아이들은 서서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습 자세의 중요성과 공부를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넌 장래 희망이 뭐야?’
‘없는데요.’ 무색무취한 상훈이었다.
‘뭐 되고 싶은 게 없다고?’
‘없어요.’
‘뒤에 너, 너는 뭐가 되고 싶어?’
‘선생님이요.’ 윤경이었다.
‘선생님이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데.’
‘공부는 하기 싫어요.’
그 대답에 부원장님은 할 말을 잃었다. 장래희망이 선생님인데 공부가 하기 싫다니.
‘됐고. 중간에 너는?’
우리 반의 마스코트인 천진난만, 초긍정적인 명준이었다.
‘현모양처요.’
명준이의 한 마디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또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지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막지 못했다. 웃음을 참다 눈물이 흐르는 신기한 경험이라니.
‘너 현모양처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
‘좋은 남편 되는 거요.’
‘그렇다 치자. 현모양처가 되면 뭐 하고 싶은데?’
‘좋은 아빠요.’
명준이의 대답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장래희망하면 의사, 변호사, 교사, 대통령 등을 말할 텐데 ‘좋은 아빠’라니. 우리 어른들은 자녀들이 그들이 바라는 직업을 갖길 바란다. 아이의 시각이 아닌 어른의 시각에서. 그래서 공부라는 감옥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어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조련하려 한다. 하지만 명준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부와 명성이 아닌 ‘좋은 어른’이 되는 거였다. 저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장래희망이라니. ‘좋은 어른’이 되도록 아이들을 안내하고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일 아닐까?
그렇게 1시간의 정신교육이 끝나고 부원장님은 내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셨다.
‘그동안 저 아이들 가르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누군가 나에게 혹시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좋은 어른. 괜찮은 어른이요.’
Tip 장래희망이 없다는 아이들 다루는 방법:
먼저 부모님들이 ‘좋은 부모’가 되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를 거울삼아 ‘우리 아빠,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