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충동9_그림책『동갑내기 울 엄마』_글 임사라 그림 박현주_나무생각
8시 40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지각일까, 아닐까? 출근 시각의 기준을 두고 누군가는 업무 시작 시각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문 통과 시각이라고 했다. 어느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마음은 단연코 후자 편이다. 아, 우산! 문을 열다 말고 보조석 앞쪽에 있는 우산을 급하게 꺼내 든다. 반쯤 열렸던 자동차 문이 저절로 닫히려고 한다. 왼쪽 다리가 급하게 문을 막아서고 이어서 왼쪽 팔꿈치가 눈썰미 좋은 이웃처럼 거들고 있을 때였다. 물웅덩이를 살피느라 시선을 향한 바닥에 호박 넝쿨과 호박잎이 보였다. 비에 젖고 있던 넓적한 이파리가 내 마음을 한 번에 푹 감싸 안는다. 맑고 서늘한 기운이 기습한다. 장난기 많은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얼굴에 물방울을 튀겼을 때처럼. 몸에 갇혀 있던 성가신 열기가 사그라든다.
별일 아니었다. 어젯밤 늦게 잠든 아이를 15분쯤 더 자게 두었을 뿐이다. 늦게 일어난 아이는 어둑한 아침이라 그랬는지 내 마음과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식탁으로 나오지 않는 아이를 재촉하러 갔을 때, 아이는 마침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각 걱정에 동동거리던 내 마음에 불길이 일었고, 나는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아침부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시간에 쫓겨 머리카락도 채 말리지 못하고 차에 오른 아이는,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싶으면서도 마음이 어지러웠다. 헝클어진 마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헤아려 본 다음, 입에 털어 넣거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까닥하면 지각할 것 같아 그 마음을 가방에 쓸어 담고 출근하던 길이었다.
애호박을 좋아하고, 호박꽃을 볼 때마다 왜 못생김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의아해하며 한참씩 들여다보곤 했지만, 호박잎에 눈길을 준 적은 없었다. 이 자리에 처음 주차하는 것도 아니다. 주차장 담벼락에는 누군가 심어 놓은 식물의 가지나 넝쿨이 늘 있었고, 그 자리에 주차할 때마다 무심코 쳐다보곤 했었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호박잎이 왜 지금처럼 바쁠 때 마음을 잡아끄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어 갸우뚱거리며 부지런히 계단을 오른다. 마음은 저 앞에서 달려가고, 마음만큼 달리지 못하는 내 다리는 그 뒤를 부지런히 따른다. 호박잎으로부터 고백받은 나는 점점 걸음이 느려지다 멈춰 섰다.
어느 비 오는 여름날이었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빡짝장(강된장의 내 고향 사투리)에 호박잎 쌈을 싸 먹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쌈을 싸 드시는 할머니와 엄마를 보고 있었다. 까끌거려서 먹기 싫다는 내게, 너도 나이가 들면 이 맛을 좋아하게 될 거라시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후드득 들려온다. 아직 나이가 덜 든 것일까? 나는 여전히 호박잎 쌈이 맛있지 않다.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를 먹었는데도. 그 맛은 여전히 모르지만, 나는 그때 몰랐던 어떤 맛을 갑작스레 깨닫는다. 헝클어진 마음으로 헐레벌떡 출근하는 엄마인 내가, 그 밥상에 앉아 할머니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던 어린 나를 응시한다. 오늘 같은 온도와 습도를 가진 그날 속에, ‘딸이자 손녀인’ 내가 앉아 있다.
『동갑내기 울 엄마』, 그림책의 표지와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엄마와 아이가 동갑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표지의 1/3쯤 차지하고 책 등 쪽에 서 있는 엄마의 모습도 그렇다. 엄마의 얼굴은 표지 밖으로 벗어나 있고, 엄마 몸에 기댄 아이의 얼굴은 눈을 감은 채 정면을 향하고 있다. 엄마 손 위에 아이 손이 올려져 있는 모양새는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를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두운 노랑, 갈색, 회색, 보라 등 표지의 색감도 차분한 느낌을 준다. 면지도 연보라색이다. 이 그림책에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까?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단다. 우리 은비를 보고 싶어 하셔.”
연보랏빛 면지와 나풀나풀 떨어지는 은행잎은 이 대사의 복선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간다.
“은비는 은비를 사랑해 주는 엄마가 있지? 하지만 할머니가 떠나면 엄마는 엄마 없이 살아야 한단다. 누구든 엄마가 없는 건 아주 슬픈 일이거든.”
“할머니 어디 가시는데요?”
“우리 엄마한테······.”
“은비야, 은비는 일곱 살이지?”
“네 엄마도 은비 엄마가 된 지 일곱 살이란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은, 앞으로 ‘엄마 없이 살아갈’ 딸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딸을 두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할머니가 가는 곳은 막연한 하늘나라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계신 곳’이다. 할머니는 말한다. 누구든 엄마가 없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라고.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고. 할머니에게 죽음은, ‘우리 엄마한테 가는 일’인 동시에 ‘나의 딸이 엄마를 잃는 일’이다.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그림책에서 엄마의 의미는 ‘아낌없이 걱정과 위로를 건네고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엄마를 잃을 딸이 그토록 마음이 쓰이는 것은, 지금까지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것을 주었다는 것을, 그것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쓸쓸한지 경험해 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가고 나면 너는 어쩌니? 누가 널 보살펴줄까?’
엄마라면 갖게 되는 이 당연한 마음을 그림책에서는 손녀에게 당부하는 할머니라는 설정으로 풀어내고 있다. 은비와 엄마가 동갑내기인 것은 엄마가 된 지 7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은비 엄마가 여전히 ‘어린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손녀와의 이별도 딸과의 이별도 모두 슬프지만, 손녀에는 엄마가 있고 딸에게는 엄마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할머니는 딸이 더 안쓰럽다.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손녀에게 ‘엄마 없이 살아갈 엄마, 엄마가 아닌 딸로서의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말씀은, 할머니가 딸에게 주었던 사랑, 할머니가 딸로부터 받았던 사랑에 대한 고백이다. 그리고 이 고백에는 딸과 손녀가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할머니는 할머니 엄마를 만나러 간 거야. 할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거든.”
은비는 엄마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어요.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요.
가끔씩 은비는 엄마의 엄마가 돼주어요.
은비와 엄마는 동갑내기 단짝이니까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이는 할머니에게 들은 말로 엄마를 이렇게 위로한다.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할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슬픔을 위로한다. 아이가 가끔씩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었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엄마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 톨스토이의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대답처럼 말이다.
그림책은 그렇게 ‘가끔씩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면서’ 자란 은비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 끝난다. 요람에서 잠든 아기의 온몸이 화면 중앙에 그려져 있고 은비와 엄마는 나란히 서서 그 요람을 들여다보고 있다. 은비와 엄마의 얼굴은 앵글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그들의 표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옛날 할머니의 손을 꼭 닮은 엄마의 손 위로, 이번에도 은비의 손이 포개져 있다. 빨간 체크무늬 우주복을 입은 아기는 엄마와 할머니의 눈길을 덮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할머니-엄마-나 그리고 다시 딸아이에게로 이어지는 흐름이 마음을 토닥여준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이 일을 나만 겪는 게 아니었어, 이런 걱정과 사랑을 먹고 자란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 엄마의 서툰 육아를 감싸주었던 할머니처럼 나의 이 미숙함도 그 내력 속에서 힘을 얻고 있어, 내가 지금 느끼는 모든 것을 아이가 몰라주어도 괜찮아, 그 맛은 몇십 년 후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지기도 하니까. 매 순간 언설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감정을 가지런히 추스르지 않아도 괜찮아, 가끔은 그렇게 쌈을 싸는 것처럼 보자기에 푹 쓸어 담아 묵혀 두어도 괜찮아.’
몇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 아침 갑자기 내게 찾아온 호박잎의 기억이, 할머니의 눈길이 되어, 엄마의 손길이 되어 가만가만 내 등을 쓰다듬는다.
일주일 째 비가 내리더니 계절이 바뀌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 가느라 좌충우돌하는 내가 여기 있다. 여전히 서툴고 매번 후회하면서 서서히 엄마가 되어 간다.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 문제는 어떻게 하지?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나의 미성숙함과 서툼을 모질게 대하지 않기로 한다. 할머니의 마음으로, 엄마의 마음으로 나를 감싸 안는다. 엄마 나이 17살인 나를. 결핍과 후회 투성이지만 든든한 배경이 있어 안심해도 괜찮은, 나의 삶이 여기에 있다.
교실에 도착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이 마음을 서둘러 메모한다.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