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충동10_그림책『달가닥 콩! 덜거덕 쿵!』_팻 허친스/국민서관
교실 풍경
“선생님, 저 엊그제 피아노 콩쿠르 나갔어요.”
“선생님, 이것 보세요, 어제 학원에서 그린 거예요.”
“선생님, 선생님, 어제 우리 집 구피가 죽었어요. 그래서 아빠랑 같이 묻어 주었어요.”
저학년 교실은 언제나 왁자지껄하다. 한 녀석의 말에 호응하면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늘어난다.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때로는 ‘선생님, 선생님, 있잖아요’라고 시작만 해놓고 그제야 생각에 들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과연 자랑거리일까’ 싶은 이야기도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교실은 언제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아이들로, 자랑하고 싶은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학년 초부터 강조한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하기, 다른 친구가 말할 때는 끼어들거나 자르지 말고 귀 기울이기’도 쉬는 시간에는 그다지 효력이 없다. 쉿, 하며 손가락 싸인을 주면 말을 멈추기는 하지만 엉덩이는 들썩들썩, 입은 오물오물, 팔은 팔랑팔랑 거린다.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저 생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 좀 봐봐요.
제가 이걸 했어요.
저요, 저요.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랑하고 싶어 하고, 시시때때로 서로 하겠다고 나선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역할 분담은 칠판과 관련된 일이다. 칠판에 글씨를 쓸 수 있는 역할을 가장 선호하고 칠판을 지우는 것도 좋아한다. 칠판지우개 관리나 칠판 주변 정리도 꽤 인기가 있다. 칠판 관련 역할을 맡은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칠판 근처를 맴돌다가 적당한 순간이 오면 얼른 칠판에 다가선다. 학급 대부분의 아이들이 몸이든 마음이든 칠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달가닥 콩! 덜거덕 쿵!
팻 허친스의 그림책, 『달가닥 콩! 덜거덕 쿵!』은 표지부터 작가 특유의 밝음과 경쾌함이 가득하다.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파란 하늘에 그녀의 시그니처 컬러인 노란색으로 제목이 쓰여 있다. ‘Bumpety Bump!’를 번역한 ‘달가닥 콩! 덜거덕 콩!’이라는 의성어 제목은,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함으로써 생기를 더한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 두 그루가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길이 나 있고, 길가에는 주황색 경계석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구석구석 손길이 닿아 있는 정갈한 풍경을 배경으로 파란 손수레에 타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노란 반팔 셔츠와 빨강 멜빵바지에 파란 장화를 신고 있다. 아이가 탄 수레를 밀고 있는 할아버지는, 노랑 셔츠를 입고 흰 물방울무늬가 있는 빨간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다. 아이의 한 손에는 초록 삽자루를 끼운 빨간 삽이, 다른 한 손에는 동그스름한 바구니가 들려 있고, 두 발은 허공에 들려 있다. 바구니에 담겨 있던 채소들이 수레의 움직임에 따라 바깥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이들 뒤로 빨강, 주황, 노랑 색상으로 그려진 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른다.
작가는 풍경과 인물을 알록달록한 색상과 섬세한 무늬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이의 몸짓에서도, 바구니와 수레에서 굴러 떨어지는 채소들에서도 경쾌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표지 그림 전체가 ‘달가닥 콩! 덜거덕 쿵!’ 움직이고 있다.
면지에는 알뿌리 식물들을 심은 땅의 단면이 펼쳐진다. 한 고랑에는 비트가, 그다음 고랑에는 순무, 감자, 양파가 자라고 있다. 고랑과 이랑, 식물의 종류에 따른 흙의 깊이, 뿌리와 줄기, 잎, 꽃과 열매의 세밀한 묘사, 3단으로 이루어진 토양층이 만들어내는 반복과 변화가 율동감을 만들어 내면서 식물들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속표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농장에서 할아버지가 아이를 번쩍 들어 손수레에 태운다. 웃음 가득한 할아버지의 입은 벙싯 벌어져 있지만 아이는 조금 긴장한 것 같기도 하다. 꼬꼬닭은 고개를 쭉 빼고 지켜보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이, 닭이 서 있는 바로 앞쪽으로 조그마한 나무 문이 자리 잡고 있다. 쉽게 열릴 것 같고, 아니면 폴짝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낮은 문이지만 낮은 나무 울타리와 함께 경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나 좀 봐 봐,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할아버지가 밀고 가는 손수레는 신이 나서 달린다. 그렇게 달리던 할아버지와 아이의 시선이 뒤로 향한다. 꼬꼬닭이 따라오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반가워한다.
아이는 삽으로 당근과 감자, 양파를 캐어내고 할아버지는 수레에 차곡차곡 담는다. 꼬꼬닭은 울타리 위에 올라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다.
“꼬꼬닭아, 나 좀 봐 봐.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다시 수레를 타고 콩밭으로 향한다. 이번에도 꼬꼬닭이 따라간다. 콩은 지지대를 돌돌 감아 올라가며 잎사귀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있다. 콩꼬투리가 아이의 손에 닿지 않는다. 아이가 콩꼬투리를 딸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아이를 들어 올린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아이는 콩꼬투리를 똑똑 딴다. 꼬꼬닭은 고개를 젖히고 쳐다보고 있다. 할아버지와 꼬꼬닭의 눈동자가 저 높이에 있는 아이를 향하고 있다.
“꼬꼬닭아, 나 좀 봐 봐.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이제 손수레가 꽉 차서 아이가 앉을자리가 없다. 수확한 채소와 열매들 위에 아이가 눕다시피 앉는다. 아이의 배와 가슴 위에는 콩꼬투리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다. 수레가 덜컹거릴 때마다 바구니에 담긴 것들이 튀어 오른다. 여전히 꼬꼬닭이 따라온다.
아이는 토마토도 따고, 상추도 따고 커다란 오이도 딴다. 아이와 꼬꼬닭의 시선이 또 마주친다.
“꼬꼬닭아, 나 좀 봐 봐.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옥수수 밭을 지나 딸기를 따러 간다. 남은 하나의 바구니에 딸기를 따서 담는다. 손끝이 빨갛게 물드는데도 차곡차곡 따서 담는다. 이번엔 할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다른 곳을 보고 계신다. 아이 바로 뒤에서 꼬꼬닭이 유심히 지켜본다.
“꼬꼬닭아, 나 좀 봐 봐.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손수레 가득 농작물을 싣고, 다시 신나게 달려 농장 아래로 내려온다. 네 그루의 과일나무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는 풍경 속으로 달린다. 여전히 꼬꼬닭이 따라온다.
집이 가까워졌다. 농작물이 자라는 밭 대신 꽃이 피어 있는 화단이 나타난다. 저 멀리 커튼이 드리워진 벽돌집이 보인다. 꼬꼬닭이 돌아선다.
꼬꼬닭은 헛간으로 가고, 그 꼬꼬닭을 급히 따라가느라 수레에 실었던 양파, 감자, 당근, 토마토, 딸기가 튀어 올라 밖으로 굴러 떨어진다.
꼬꼬닭은 하얀 알을 낳고 바구니 손잡이에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표정에 기쁨이 가득하다. 꽃과 식물이 심어져 있는 화분, 갈무리되어 헛간의 벽과 바닥에 놓여 있는 농작물, 물조리개와 모종삽 같은 도구들이 들어 있는 헛간이 환하다.
그들이 사는 세상
할아버지와 텃밭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아이는 점점 신이 난다. 한 번씩 성공할 때마다 자신이 해냈다는 것에 으쓱해하며 꼬꼬닭에게 자랑한다. 아이가 꼬꼬닭에게 여러 번에 걸쳐 자랑하는 장면은, 자신이 잘한다는 것을 닭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꼬꼬닭이 아이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의 으쓱거림은 으스댐이 아니다. 아이는 닭에게 자신이 해낸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이의 마음에는 거리낌이 없다. 닭과 아이의 관계가, 닭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아이의 인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망설임 없이 자랑하지 않는다. 거리낌 없는 자랑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다. 꼬꼬닭이 따라와서 내내 지켜보았다는 것이 아마도 아이의 마음에 그런 확신을 준 것이 아닐까?
또한 우리는 이 그림책 속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 수 있다. 할아버지는 공들여 가꾼 텃밭을 아이에게 내어준다. 손주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손수레 끌기도 마다하지 않고, 일이 더뎌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할아버지라는 따스한 햇살 아래서 아이의 몸과 마음이 채소와 과일들처럼 쑥쑥 자라난다. 콩은 지지대를 돌돌 감아 올라가는 콩줄기처럼 할아버지라는 지지대를 돌돌 감으며 아이가 자란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아이를 하늘 높이 드높이 올린다.
아이의 자랑에 담긴 마음의 빛깔은, 꼬꼬닭의 자랑에 대한 아이의 반응으로 확인된다. 닭이 자기가 낳은 새하얀 알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할아버지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장면은 이들의 관계가 ‘기쁨을 공유하는’ 관계임을 증명한다. 할아버지는 농작물을 키우고, 아이는 그 농작물을 수확하고, 꼬꼬닭은 그 모습을 보고 알을 낳는다. 아이를 지켜보던 꼬꼬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를 따라 하고 싶은 아이, 아이의 그 마음을 알아주는 할아버지, 이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다 자신의 알을 낳는 꼬꼬닭의 모습은, 다른 이의 기쁨 속에서 나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농장에서 할아버지가 기른 것이 농작물만이 아니듯, 이 헛간에서 닭은 알만 낳은 것이 아니다. 헛간은, 기쁨의 공유를 통한 관계가 창조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은
사별하고 혼자 자식을 키운 어떤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혼자 어린 자식을 키우며 가장 슬펐던 순간은, 자식들이 힘들게 했을 때보다 오히려 기쁨을 주었을 때라고 했다. 마음 놓고 자식 자랑할 수 있는, 거리낌 없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인 남편의 부재가 무엇보다 슬펐다는 것이다.
기쁨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혹시 자랑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여 기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기쁨을 부러움이나 시샘 없이 내 일처럼 기뻐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수희(隨喜)’를 ‘공덕(功德)’이라고 하는 것을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다.
꼬꼬닭이 아이를 부러워하여 농작물을 수확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내 것’을 보지 못할 때, 우리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결핍에 눈이 멀어 의기소침해지거나 질투에 사로잡히게 된다. 창조의 기쁨은 기쁨의 공유를 통하여 누릴 수 있다. 얼마나 자주 기쁨의 표현이 절제해야 할 자랑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일까? 타인에 의해, 스스로에 의해.
세상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그가 누구와 어떻게 접촉하고 살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 팻 허친스의 그림책 <달가닥 콩, 덜거덕 쿵>은 기쁨의 원천과 그것이 공유되는 과정을 거리낌 없이 환하게 그려내고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텃밭을 돌면서 열매를 따는 아이 뒤를 암탉이 따르고, 그 암탉이 발걸음을 돌리자 할아버지와 아이는 그 뒤를 따라가 알 낳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뻐한다. 이들의 관계는, ‘자랑’이 곧 기쁨의 공유가 되는 조건을 보여 준다. 기쁨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림책의 그림과 글처럼, 언어의 리듬감처럼 이들의 관계는 리드미컬하다. 경쾌하다.
이 그림책의 제목, ‘달가닥 콩! 덜거덕 쿵!’은 기쁨을 공유하며 누군가를 싣고 가는 그 길이, 그 관계를 창조하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지 일인지 잘 보여준다. 애써 기른 농작물을 수확하여 안다미로 담은 수레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열매들이 수레 밖으로 튀어나가도 괜찮을 정도로. 그 일은 그렇게 신나는 일이다.
손수레 타고 덜커덩
달가닥 콩! 덜거덕 콩!
꼬꼬닭이 따라와요,
우리 뒤를 따라와요.
라임을 글자 수로 재현하기라도 하듯 이 문장은 모두, 8개의 낱말로 번역되어 있다. 이 구절은 후렴처럼 반복되면서 이 그림책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거기에 ‘덜커덩, 달가닥 콩, 덜거덕 쿵, 쏙쏙, 똑똑, 뚝, 으쓱으쓱’과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생동감을 더한다. 운율이 살아 있는 문장의 반복, 적절한 의성어와 의태어, 밝고 선명한 색감과 세밀한 붓 터치가 리듬을 만들어 낸다. 적절한 생략과 세밀한 묘사가 잘 어우러진 그림에 노래하는 듯한 문장이 얹어짐으로써 이 그림책은 마지막 장면의 환한 기운을 책 전체에 퍼지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