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충동8_그림책『 난 네가 좋아』_이모토 요코 글·그림/문학동네어린이
언젠가 한 지인으로부터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아 반려견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에서 동물을 키울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집안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 아이를 겪으며 결심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거기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통찰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도 말해야 그 의미가 완성될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아지에게 달려가는 아이를 보며, 강아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애정 어린 눈빛을 보며 마음 놓였을 그분의 마음이 이제야 짐작이 된다.
나는 강아지가 좋아.
그래서 꼬옥 안아 주지.
······ 그런데
강아지는 고양이가 좋아.
그래서 쫄랑쫄랑 쫓아다녀.
그런데 고양이는 ······
병아리가 좋아!
그래서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는 거야.
그런데 병아리는
나비가 좋아.
그래서 팔짝팔짝 뛰어다녀.
······ 그런데
나비는 해바라기가 좋아.
그래서 꽃잎 위에서 잠들지.
······ 그런데
해바라기는 해님이 좋아.
그래서 언제나 해님만 쳐다보는 거야.
······ 그런데
해님은 ······
이모토 요코의 그림책 『난 네가 좋아』, 이보다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있을까? 하얀 표지에 초록, 노랑, 빨간 색으로 ‘난 네가 좋아’라는 제목이 삐뚤빼뚤 쓰여 있다. 그 바로 아래에는 노란 셔츠와 파란 멜빵바지를 입고 빨강 장화를 신은 귀여운 남자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다. 크레파스 글씨 ‘난 네가 좋아’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리는 것 같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동물들의 표정과 몸놀림 또한 어찌나 귀여운지 책에서 눈길을 떼기 어렵다. 그림책 전체에 스며 있는 노랑 색감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에 따스함을 더한다.
‘······ 그런데
해님은 ······ ’
이 여섯 글자의 배경으로 두 페이지 가득 햇살이 퍼진다. 햇살을 그려내는 주황, 노랑, 하양의 그러데이션 배색은, 귀여운 주인공들의 등장으로 이미 동글동글해진 우리 마음을 태양 빛으로 물들인다.
해님은 누구를 좋아할까?
언제, 어디에서 이 그림책을 처음 만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었다는 것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바로 이 장면에서, 듣고 있던 아이들도 읽어주는 나도 침을 꼴깍 삼켰었다.
······ 그런데
해님은 ······
우리를
모두
다
좋아해.
그래서 우리를 모두
따뜻하게 감싸 주는 거야.
환하게 퍼지는 햇살 속에서 나비를 따라 병아리, 고양이, 강아지, 아이가 한 줄로 달려 나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앞장서 날아가던 나비는 해바라기 잎사귀에 기대어서, 따라가던 동물들과 아이는 해바라기 그늘 아래에서 모두 함께 몸을 포개고 잠들어 있다. 잠든 표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느라 몇 글자 없는 이 페이지에서 한참 머문다. 시간이 흐르면서 잠이 깊어지고, 몸은 점점 편안한 자세를 찾아간다. 바닥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자는 아이와 강아지의 머리가 서로 맞닿아 있다. 강아지 옆에는 입을 벌리고 잠든 고양이가 누워 있고, 고양이 꼬리에는 병아리가 엎드려 곤히 자고 있다. 나비도 이들 가까이에, 해바라기 줄기에 앉아 잠들었다.
아이는 강아지를, 강아지는 고양이를, 고양이는 병아리를, 병아리는 나비를, 나비는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는 해님을 좋아한다. 줄줄이 한 방향으로 애정이 흐르고 있다. 이것은 짝사랑일까? 마주 보며 서로 좋아하는 짝이 하나도 없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림책 전반에 깃들어 있는 경쾌한 기운과 따스한 색감이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사랑을 받는 상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전달하는 느낌이다. 만국기가 걸려 있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배턴을 주고받는 계주의 주자들처럼 애정을 이어가다가, 결승점에 도착하여 정답게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달음박질해서 달려가 만난 해님,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님은 직선의 저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태양이 이 세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것처럼 이 그림책에서 ‘해님’은 사랑의 원천이다. 우리는 그 빛 에너지를 흡수하여 광합성을 하거나, 누군가가 광합성하여 만들어 낸 것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사랑을 분유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에너지 없이 우리가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모든 ‘좋아함’ 속에는 햇살과 같은 기운이 들어 있다. 이 그림책에서 해님은,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인 동시에 그 힘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상징한다.
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을 꼬옥 안아 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강아지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쫄랑쫄랑 쫓아다닌다. 고양이는 병아리를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고, 병아리는 나비가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나비는 해바라기가 좋아서 꽃잎 위에서 잠든다. 해바라기는 해님이 좋아서 언제나 해님만 쳐다본다. 이들의 표현방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그런 교섭 방식을 은연중에 체득하게 된다. 좋아하는 대상도 다르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이들의 기차놀이 같은 달음박질은 사랑의 원천인 햇살을 머금고 해님을 향해 달려 나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여섯 주인공은 해님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뛰고 있다. 일직선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는 원 모양이다. 이렇게 뱅글뱅글 한참 돌다 보면 모두 해님 속으로 섞여 들어가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좋아서 쫓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함께 뱅글뱅글 원을 돌며 하나가 되는 것 말고 더 신나는 일이 있을까?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한참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이에게 가져다 줄 도시락을 기다리고 섰던 남편이, 스피커폰을 눌러준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가 어두워지신 데다 스피커폰이니 잘 안 들리시는지 여러 차례 말씀드려도 잘 못 들으신다. 마음이 급한 나는 두서없이 말하고, 귀가 어두운 엄마는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엄마의 용건은 ‘오늘 담근 김치를 내일 택배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 김치를 담그고 나는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싼다. 엄마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햇살 한 자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가끔은 돌아서야겠다. 다음 주말엔 아이와 함께 가서 햇살이 퍼지는 해바라기 그늘에 세 모녀가 함께 누워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