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팔자 좋은 한량이 산다. 언제나 유유자적이다. 시도 때도 없이 늘어져 잠을 자는 것이 하루의 주요 일과다. 발 뻗고 눕는 곳 모두가 제 영토다.특별히 좋아하는 곳도 따로 있다. 볕 잘 드는 창가나 시원한 출입구가 애정하는 공간이다.
한가한 시간이 한없이 주어지면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그것은 바로권태란 녀석이다. 그런데 우리 한량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단순하면서 집착이 없는 마음에는 느긋함과 여유만이 존재한다.매일 변함이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특별히 괘념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누리며 보낼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렀냐고 한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기쁨을 온몸으로 발산하기도 하고 신나게 놀 줄도 알고 성내기도 한다.
사랑할 때는 주저함도 인색함도 없고 풍성하게 넘치도록 베푼다. 그의 사전에는 변심과 변덕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도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일편단심만을 한결같이 보여준다.
때때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집요함도 보인다. 방법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먼저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눈을 똑바로 해서 미동도 없이 주시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그럴 때면 상대방은 '안 된다'는 말을 입으로 하고 있지만 내면의 의지는 모래성이 허물 어지 듯 스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자동적으로 손은 생각과 다르게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제발 좀 줘!
필요에 대한 요구도 당당하고 분명하다. 배가 고프면 밥그릇 앞에 넙죽 엎드려 빨리 달라는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목말라 물이 없을 때도 동일하다. "봐라 물이 없지 않으냐! 물을 다오!"라며 무언의 의사를 강력하게 밝힌다. 주어진 식사량이 작을 때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물론 막무가내로 버티기로 일관하지는 않는다. 분위기가 안될 것 같으면 포기도 빠른 노회함도 가지고 있다.
밥 주란 말이야
원래 한량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즐긴다. 우리 한량도 사람들을 정말 좋아한다. 집에 찾아오는 이들 모두는 귀한 손님이고 마음을 다해 온몸으로 극진하게 기쁘게 맞이한다.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가 환대하는 것이다. 아마도 밤중에 도둑이 와도 마음은 똑같을 것 같다. 인류애가 넘쳐나기에 귀천이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항상 진심으로 대한다.
홀로 있을 때는 고독을 즐기지만 동반이 있을 때는 결코 상대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먼저 다가가 관심과 애정을 베푼다. 혼자서 소파에 배를 깔고 늘어지는 것도 좋아하면서도 앉아있는 이가 있으면 곁에 다가가 머물며 체온을 나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산책하는 일이다. 산책하러 나가는 분위기를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자신을 모시고 갈 하인을 선별하는 혜안도 지녔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신나게 코에 바람을 넣으면서 제 하고 싶은 일은 원 없이 한다. 그러다 피곤하다 싶으면 얼음 땡이다. 이제는 다리가 아파 그만 걸을 테니 알아서 안고 모셔라는 명령이다.
빨리 가자!!!
실내에서 즐기는 확실한 취미도 있다. 컬렉션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장난감을 구비하고 심심찮게 유희를 즐긴다. 이 게임에는 반드시 심부름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제 장난감을 가져다 슬쩍 원하는 하인 발치에 둔다. 그러다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예 다리 위로 올린다. 놀이에 동참하란 무언의 압력이다. 만약 무시하게 되면 다시 들고 와 몸에 올려놓고는 "이래도 안 할래?" 하며 째려본다. 놀이는 제 하고 싶은 데 까지 무한 반복이다. 그렇게 한참을 부려먹다 힘들면 끝이다.
던져!
이 한량에게 삼시 세끼 바쳐야 하고 물심부름도 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산책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매일의 뒤치다꺼리도 만만치 않다. 정기적으로 건강도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집을 비울 때도 간단치가 않다. 시중드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너는 존재 자체가 기쁨으로 굳어진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뾰족했던 마음을 둥그렇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힘든 일과 후에는 청량음료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 준다. 가족 구성원을 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고 불화가 생겨날 때 평화의 메신저가 된다. 이렇듯 지대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네게 주는 것보다 우리가 받는 것이 더 크고 많다.
그러니 너는 식객이 아닌 우리의 소중한 터줏대감이다. 부디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다오. 귀엽고 사랑스러운 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