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월급이 들어왔다.
퇴직금 정산 등 몇 가지 수입원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제 월급쟁이는 끝이다. 들어올 때마다 잠시 기뻤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작 이게 내 자유의 값인가 하던 월급이 내심 아쉽다.
통장잔고를 뒤적이며, 앞으로 몇 개월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대략으로만 계산해 보아도, 알뜰살뜰하게 살면 최대 2년은 노동 없이도 지낼 수 있지 싶다. 2년 간의 자유라니. 월급에 대한 아쉬움 따위 눈 녹듯 사라진다.
다만 붓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게 더 많은 통장, 일명 '밑 빠진 통장'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는 씀씀이가 달라지고 있다. 정확히는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신나게 시켜 먹었던 배달의민족에게 손절을 선언하였다. 대신 시발시간을 허락한다. 사실 노동을 하지 않는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별로 없으나, 종종 기분이 다운되는 날이면 적당히 드러눕거나, 대낮의 산책을 즐긴다.
외식은 사치다. 집에서 간소하게 밥을 챙겨 먹으면 시간도 돈도 절약되어 어찌나 뿌듯한지 모른다. 다만, 포기할 수 없었던 치킨은 1-2주에 한 번은 먹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치킨의 민족.
카페인을 끊은 것은 좋지 않은 위장을 생각해서기도 하지만, 카페를 가고자 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누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커피중독자로 살다 간 6개월도 되지 않아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면, 커피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
집에만 있으면 체력이 망가질 테니, 운동을 시작해 볼까 헬스장과 피트니스장을 서칭 해보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에 마음을 접고 홈트를 하기로 결심한다. 수입 0원의 인간에게 고작 홈트를 할 의지력이 없어서 돈으로 강제력을 행하여서야 되겠는가. 스스로 채찍질을 해본다.
남에게 신세 지고는 못살겠던 내가, 밥을 사준다는 친구의 말에 '에이~ 무슨~'이라는 반응 대신, '고맙다! 신난다!' 한다. 어느덧 가수 윤종신에게 신나게 밥도 술도 얻어먹고, 집에 놀러 올 땐 쓰레기봉투 사오라 했다는 장항준 감독이 내 롤모델이 되었다. 요즘엔 밥 잘 사주는 누나보다는 밥 사주고 싶은 누나가 되고 싶다. 나를 그리 소중히 여겨준 사람들에게 받은 것들을 다 갚기 위해서라도 돈 잘 버는 멋진 인간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수입 0원이 된다는 것은, 평소의 습관과 가치관을 바꿔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일이지만, 이런 일련의 변화마저 온전히 즐거운 것을 보면, 백수가 체질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