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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고

by 김경섭

만나고 헤어지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토요일 7시쯤 대림동으로 가는 콜을 잡았다. 채팅방 동료 오니가 사는 동네였다. 고객이 있는 출발지로 뛰면서 채팅방에 콜카드를 올리고 “오니 내가 간다잉” 하고 채팅을 올렸다. 동료들이, “만나서 커피 한 잔 혀~”라고 했다. 운전하고 가면서 약간 후회를 했다. 괜히 그렇게 올려서 콜 잡고 일하러 나가려는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은 아닌지.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경우의 수와 묘한 긴장감(나만 느끼는 것인가?..)이 있다. 토요일 피크타임이고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콜을 잡고 뜰 수도 있다. 서로 이해하기 때문에 서운할 것 1도 없다. 그러면 차라리 마음이 더 편하고 나도 바로 다음 콜을 잡아 일을 연결하면 된다. 그런데 혹시, 잠깐 만나 커피 한잔이라도 하려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러고 있는데 내가 내리자마자 다음 콜을 잡아 쌩하고 뜨면, 친구는 티는 안 내겠지만 조금 허탈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도 크게 서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한 번 만나는 게 약속한 것도 아니고 엄청 중요한 일도 아니고 콜을 잡아서 일하러 가겠다는데 그걸 이해 못 할 만한 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내려서 완료처리를 하고 다음 콜을 잡기 전에 지나간 채팅방을 쭈욱 역행하며 훑었다.


이 자식 왜 토요일 피크타임에 빨리 안 나가고 방구석에서 누워있어. 나를 기다린 건지, 잡을 만한 콜이 없었던 건지.

“얼릉 와라. 아직 나 콜 쪼고 있다.ㅋㅋ”

“야 너 아직 출동 안 했어? 뭐 하고 있언마..”


거리를 재보니 한 1.5km.

“너 따릉이 탈 수 있어?”

“급할 거 없으니 걸어가지 한 20분 후쯤 나와.”

“응 오면서 좋은 콜 있으면 잡고 튀어!”

“엉 너도~”


글쎄 서로 부담을 안 주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정말로 누구라도 콜을 잡고 튈까? 만약에 한 방에 10~20을 벌 수 있는 완전 꿀 콜이 뜬다면, 괜히 남자들끼리 쓸데없이 만나러 가는 감상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는 냉정하고 프로답게 그 콜을 잡아야 할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걸 잡는다면 서로 이해하고 보내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콜이 휙 지나간다면 또 오두방정을 떨며 그거 일부러 안 잡았다고 허세를 부리겠지.


‘니가 콜을 잡고 뜬다면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너를 여태껏 기다리게 했는데 내가 먼저 콜을 잡고 뜰 수는 없지.’ 하고 생각하며 체력을 비축하려 설렁설렁 여유 있게 걸어갔다. 빨리 오라고 채찍 휘두르며 재촉하는 고객을 만났을 때 써야 하는 에너지를 아껴둬야 하니까.


저 쪽 횡단보도 건너에서 친구가 손을 흔들고 있다.

“야 그래도 거기보다는 여기가 콜지여서, 너 보러 오라고 한 거야.”

커피 한 캔씩 하고 담배 피우며, 쓰잘데기 없는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토요일 피크타임에 무한정 없이 그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같이 어플을 켰다. 그래도 나를 기다렸는데 친구가 먼저 콜을 잡고 뜨는 게 맞다. 그러나 완전 꿀콜이라면 내가 먼저 잡을 수도 있는 것이지. 적당히 서로 콜을 쪼다가 친구가 “잡았다!” 하고 일어났다.


“야 빨리 가!”

10시가 가까운 시간.

“야 다섯 개 타라 잉.”

“나 이제 시작이야. 열 개 타야 돼.”

“그려 열 개 꼭 채우시게~”


활동 반경 넓은 대리기사들은 전국을 누비기 때문에 오며 가며 근처의 동선에 있기도 하고 서로 스쳐가며 만나서 커피 한 잔 하기도 한다. 한 30분 내외의 시간을 그냥 만나서 수다 떨며 휴식을 취하는 것인데, 마음이 급하고 빨리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소모일 수도 있다. 꿀 콜을 놓칠 수도 있고 피크타임에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적은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라고 근처에 있다고 꼭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좋다면 좋지만 누군가 한 사람은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매출을 많이 깎아 먹는 정도라면 쓸데없는 데 정신 팔지 말고 정신 차리고 더 전투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뭐 얼마나 자주 일어난다고. 좋은 콜을 놓칠 수도 있지만, 실수로 잡을 수 있는 똥 콜이나 오지 콜을 거르고 더 좋은 콜을 잡을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여유는 가지고 살고 싶다.


>>>>

대리기사 6개월 차 때쯤에 썼던 글이다. 지금 보니 약간 닭이 되기도 하고 좀 낭만적이고 감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 사이에 나는 또 찌들었구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대리기사들이 여기저기 가로질러 이동하며 채팅방에서 서로의 동선을 파악하고 일하는 도중에 잠깐 만나 커피 한 잔 하거나 담배를 같이 태우는 일 등은 자주 있는 일이다.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잠깐의 그 스쳐가는 만남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또 여러 가지의 여건들이 맞아줘야 된다. 서로 같은 시간대에, 근처에 있으면서, 서로가 만나고 싶은 경우여야 한다. 그중에 하나라도 엇갈리면 “보자~” 해 놓구선, 쌩~하고 누군가 먼저 떠나기도 한다.


“콜 앞에서 의리 없고 형 동생도 없다. 콜이 우선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말로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보통은 더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의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말없이 각자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몫을 하면 된다.


“의리! 의리!” 강조하는 사람치고 진짜 의리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조폭 아니면 처음엔 유머 식으로 시작한 거 같은데 트레이드마크가 되어서 벗어나기 민망해진, 자기 프레임에 갇힌 김보성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하다가 동선이 겹쳐서 만나는 미팅의 약속성에, 보통은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만날까 하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마침 콜을 잡고 떠나기도 하고, 채팅방을 보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장난들을 많이 치기도 한다.


근데 또 어떠한 경우는 화가 날 수도 있고 동료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지에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자기 차를 가지고 픽업하러 가는데 그 동료가 콜을 잡고 튀었다고 해 보자. 아무리 콜이 우선이라 한들 서운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서운하기만 할까 동료애도 싹 사라지고 한 순간에 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콜을 잡고 튄 동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자신이 오지에 있다고 해서 구하러 와 주길 부탁하거나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채팅방 동료끼리의 픽업 지원은 받는 사람이 부탁해서인 경우보다, 해 주는 사람이 동료가 걱정되어서 오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와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면, 그 사이에 좋은 콜이 뜬다면 동료가 픽업을 오는 수고에 대한 존중이 좀 약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자기를 구한다며 동료가 오는데, 아무리 탐나는 콜이라 해도 그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콜을 잡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그런 에피소드들에서 생긴 불만이 점점 쌓여서 나중에 동료 관계가 깨지고 채팅방을 나가 버리는 경우도 봤다.


뭐 사람들이 있는 곳에 만남과 갈등과 헤어짐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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