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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Apr 05. 2024

사이비 교주와 위대한 예술가의 공통점


절대 갑의 위치에 있는 작가들


절대 을의 입장에 있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있고, 절대 갑의 위치에 있는 소수의 작가들이 있다. 대부분의 상품들이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서 선택되기 위해 갖은 비위를 맞추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 반대로 아무렇게나 툭 던지고 나면 소비자가 생산자의 심중을 이해하고 영접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바쳐야 하는 상품이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자고 제대로 알고나 비판을 하자고 끓어오르는 화를 꾹 참고 집중해 이야기를 들어보지만, 뜬 구름 같은 것이 와닿지도 않는데 왜 내가 이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갑은 갑인가 보다. 노력은 내가 해야 하니까.


아무리 좋은 상품도 사는 사람이 없는 상품은 결국 절판된다. 하지만 사는 사람이 있으면 어떠한 상품이든 계속 제작된다. 그것이 허영심을 이용해 세뇌시켜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든 진성으로 소비를 하는 것이든지 간에, 어쨌든 소비가 이루어진다.


대개 그런 작품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을 위치의 갤러리에서는 전시하지 않는다.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급이 안 된다. 작품 가격이 이미 범접하기 힘들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줄을 서야 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간택을 주입할 수 있는 갑 위치의 메이저 갤러리에서 한다.


자본력의 등급이 차별화되는 고급스러운 전시장에서 번듯하게 전시된 파렴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과, 또 그것을 겸손하고 엄숙하게 감상하며 무슨 귀한 뜻이 있을까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 하고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자책하는 관람객들과, 나와 같이 열받지만 소리 낼 수 없는(취객의 꼬장 정도로 치부될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정말 너무나 어리석은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이런 시대에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강한 회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대단한 수준이 확실하다


예전에 <매불쇼>에서 한 사이비 종교의 내부 시스템에 대해 탐사하고 그것을 소재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영진과 최욱, 대한민국 최고의 진행자들은 무엇보다도 그 교주에 대해서 신기해했다. 겉모습도 많이 노쇠하고 말의 내용 또한 너무 허술하고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복종하고 숭배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며 다 함께 의심하지 않고 몰입하는 현장의 분위기 말이다.


“교주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고 민망해하는 것을 들키면 그 순간 끝이다!”라고 최고의 진행자이자 재간둥이 최욱이 핵심적인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부끄럽고 민망한 것을 들키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그 정도 수준은 언젠가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그들은 전혀 부끄럽고 민망해하지 않는다. 태생부터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이들이다.


몇 년 전에 이우환 작품의 위작 사건이 있었다. 앞 뒤 정황과 증거들을 살펴보면 위작임을 충분히 알 수 있고 이성과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들은 자신의 작품이 확실하다며, 자신은 작가를 짓밟으려 악의적으로 날조된 위작 사건의 피해자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위상과 그를 지원해 준 거대 갤러리의 이익에 더 유리했던 것 같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을 하고 있는 의 모습을 보며, 저런 대단한 작품을 가지고 저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려면 “저 정도의 뻔뻔함과 당당함은 기본이자 필수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압도적 성공의 이유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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