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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솔윤베씨 Aug 30. 2024

무슨 권리로

타인의 권태

무슨 권리로 나는 타인의 권태마저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은 요가원 마지막 수강 일이다. 사용 가능한 횟수는 2회가 남았는데 오늘은 지나면 모두 사라진다. 요가가 몸서리치게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내 돈 내고 산 수강권이니 마지막까지 효용을 다 하자는 마음으로 아침에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 골반 다이어트 수업을 듣고 왔다. 하루에 똑같은 시퀀스를 두 번 돌리고도 사바사나 할 때 꿀잠을 잘 수 있게 하는 원장님의 에너지에 감탄하며 _ 수업을 마치고 맞은편 무용 학원에서 콩쿠르 준비에 한 창인 솔이를 기다렸다. 대회를 일주일 남겨두고 조용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딸을 커튼 너머로 몰래 바라보면서 대회 끝나면 예쁜 무용복 하나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부쩍 키도 크고 살도 붙어 토실토실한 윤솔이. 







저녁도 건너뛰고 급하게 요가학원으로 무용 학원으로 넘어왔지만 내가 누군가, 삼시 세끼에 진심인 엄마 아니던가. 20분 만에 후다닥 김밥을 싸서 윤성이 한 접시, 남편 두 접시, 솔이 도시락까지 야무지게 챙겨 왔다. 분명 연습이 끝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못 걷겠다느니 배가 고파 뭐라도 주면 안 되냐는 식의 애교를 부릴 텐데 그럴 때 써먹을 김밥 도시락 : ) 요가 끝나고 무용 학원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솔이 입에 들어갈 꼬마 김밥을 생각하니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 



차로 십 분도 안 되는 거리를 오는 동안 솔이는 엄마 김밥은 정말 언제나 최고라며 오물오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소소한 기쁨이 쌓여 아이도 엄마도 자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초록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찰나에 하기도 했다. 한 주가 저무는 금요일 밤 치고 꽤 괜찮은 시간이다. 



집에 돌아오니 윤성이는 8시가 되기도 전에 피곤해서 잠이 들었고 남편은 식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다. 솔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하러 들어갔고 나는 남편 맞은편에 앉아 윤성이 요플레를 하나 뜯어먹으며 밥을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분명 요가 가기 전에는 간헐적 단식의 기회라며 아주 단호히 내 몫의 김밥을 남편에게 건네주었건만 요가 끝나고 집에 오니 온몸이 천근만근 뭐라도 입에 집어넣어야 살 거 같은 착각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남편은 이번 한 주는 감기 때문에 너무 무기력했다며 아무것도 못 적은 자신의 다이어리를 내게 건넨다. 남편의 텅 빈 이번 한 주를 바라보며 그래 지금 내 안의 이 허기도 이 빈 공간처럼 남겨두자 마음먹으며 다이어리를 넘긴다. 


                     






그리고 시선이 머문 짧은 메모. 

특별한 일 없는 무료한 일상. 설렘은 일상을 들뜨게 한다는 글. 표현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글에 담긴 남편의 마음은 날카롭도록 선명하게 와닿는다.  반복되는 일상. 앞으로 나아가는지 뒤로 밀려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부동의 일상들, 분명한 방향도 선명한 기쁨도 찾기 쉽지 않은 권태로운 시간들이 날을 세우고 나와 눈 마주침을 하는 듯하다. 그리고 몇 번을 곱씹어 읽으며 그 문장 어디에도 없는 남편의 권태로움을 찾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래, 우리가 조금 권태롭긴 하지 요즘 ' 








뭐지, 이 말은 도대체 뭐지? 내가 내뱉고도 무슨 의도인지 남편의 권태가 서운한 건지 도통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게 그 뒤론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덮고 요플레 통을 싱크대에 넣고 샤워를 하러 갔다. 마치 들키면 안 되는 눈물이라도 있는 듯 남편의 시선도 대화도 가볍게 피하고 도망치듯 샤워기 물을 틀었다. 다 지워버리자고, 생각하지 말자고 _ 권태면 또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냐고. 내가 무슨 권리로 남편의 권태마저 불허하려 드는 건지 주제넘은 내 깊은 마음에 파도를 잠재운다. 그러면서도 왜 또 나가서 나쁜 년이랑 나쁜 짓 하는 재미라도 보지 그래,라는 내 몸 어느 구석에서 새어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들을 눈꺼풀 아래에 숨겨두느라 연거푸 두 눈을 감고 세수만 해댔다.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면서 뒤늦게 말해 본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일 리 없다고. 남편의 권태든 내 무뎌진 감정들까지도 내 잘못일 리 없지 않냐고, 그러니 그런 생각들 털어내고 배고프면 시리얼이라도 하나 타서 먹고 잘 자라고 말했다. 



아마 앞으론 남편 다이어리에서 어떠한 권태로움도 찾을 수 없을 테지만, 남편은 더욱 깊이 꽁꽁 숨길 테지만 _ 생각해 본다. 정말 무슨 권리로 내가 타인의 권태마저 짊어지려고 하는지. 부부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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