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젊지도, 특별히 예쁘지도

자유형 두 바퀴

by 뚜솔윤베씨

젊지도, 특별히 예쁘지도.


딸아이가 올해 들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엄마, 마흔 축하해'이다. 가끔 전혀 마흔 같지 않다는 색다른 표현으로 나의 안면 근육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딸아이는 엄마가 마흔의 호랑이띠라는 걸 온 동네방네 축하하고 다닌다. 덩달아 밑에 동생까지 어깨너머로 주워 들어 유치원에서 무슨 행사만 하면 호랑이 캐릭터를 집어 들고 우리 엄마 호랑이띠예요 하면서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사뭇 진지하게 말하고 다닌다.


더불어 나 역시 마흔에, 호랑이띠에 금이야 옥이야 하는 딸 아들자식을 둘이나 놓고 _ 이제는 특별히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인생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대단한 사실이라도 되는 양 현관문 앞에 현수막이라도 걸까 생각하다가 거울 속에 비친 눈가 주름에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게 웃상도 아닌데 언제 이런 주름이 생겼나 몰라.







1508937.jpg




그런데 참 이상하게 수영장만 가면 소독약 플라시보인지 늘 기분이 좋다. 뱃살도 좀 빠진 거 같고 얼굴에 물을 입혀 그런지 피부도 반들반들하고 특히 수업 전 체조를 할 때 물속으로 비치는 내 뽀얀 두 발등이 오동통하니 귀엽다 못해 사진을 찍어다가 어디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 물속에서 어른어른 거리는 두 발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기분이 좋다. 우리 몸 중에서 가장 노화가 늦게 오는 게 발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냅다 계절을 건너뛰어 여름 샌들을 신고 거리를 거닐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아마 물속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사고를 단순화시키고 현재 만족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듯하다. 그래서 물속에서는 나이가 무색하게 모든 이들이 잡념을 떨쳐내고 도착하기 무섭게 출발하고 또 출발한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이 하나 없이 다들 힘차게 벽을 발로 차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두 팔을 휘저으며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늘 팔을 몇 번만 더 저으면 벽인데, 25미터 다 왔는데 하면서도 늘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처음으로 자유형 두 바퀴, 50미터를 완영했을 때, 출발선의 벽을 짚고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었을 때 마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가 길고 긴 20년의 세월처럼 기나긴 50미터를 건너 하수구 밖으로 고개를 내민 기분이었다. 너무 벅차서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을 만큼 뿌듯했다. 해냈다. 이제 어딜 가도 젊지도, 특별히 예쁘지도 않지만 나는 자유형으로 침묵의 물을 건너왔다. 드디어 해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수영을 시작해 보이지 않게 서로 의지해가며 매일매일 수영을 익힌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실력과 자신감에 살이 오르는 걸 보면서 또 기분이 좋았다.



이제 호캉스 가서 레쉬가드 입고 반신욕만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물속으로 풍덩 자취를 감추고 자유로이 물살을 가르며 '딸아, 아들아 알아서 놀 거라' 하며 혼자서 유유히 멀어질 수 있다. 호랑이도 수영을 잘한다. 먹이를 찾아 강과 호수를 건너기도 한다. 마흔의 호랑이띠 엄마도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단다. 어흥!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0화자꾸 뒤로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