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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Dec 07. 2016

짐수레를 끌고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휘게, 욜로.. 소소해 보이지만 특별한 일상에 대한 선망은 소비의 흔적으로만 증명되는 것 같다. 삶이 스타일로 소비되기 전에도 우리의 일상은 관습과 문화로 이루어졌다.

바바라 쿠니의 <달구지를 끌고서>는 19세기 한 농부의 한 해를 통해 노동과 삶을 조망한 작은 박물지 같은 작품이다. 실제로는 치열한 분투의 연속이었을 자급자족의 삶은 사뭇 목가적이고 아름답다. 특히 멀리서 조망하는 계절별 풍경들은 영화 속 롱테이크를 보는 것처럼 유려하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기, 농부는 가족들과 함께 직접 만들고 모은 수확물을 팔기 위해 도시로 향한다. 한 시기를 같이한 소에게 고마움을 담아 입 맞추지만 헤어짐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순환하는 인생의 고저에 순응하는 삶을 드러낸다. 포츠머스로 가는 여정은 아름답지만 길고도 길다. 긴 여정을 되짚어 귀가한 농부에겐 비슷해 보이지만 새로울 한 해가 기다리고 있다. <달구지를 끌고서> 속 노동의 반복성은 스스로 일궈나가야 하는 지금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바바라 쿠니는 사실적 묘사의 미국 민속문화를 즐겨 그렸다. 저수지 건설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된 고향마을에 대한 담담한 기억 <강물이 흘러가도록 Letting Swift River Go, Jane Yolen, 1992>,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넓은 세상을 꿈꾸는 연대기 <미스 럼피우스 Miss Rumphius, Barbara Cooney, 1982> 등 미국의 자연과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발표해왔다.

인상파 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림 속에서 자란 바바라 쿠니는 탁월한 색채 감각을 자랑한다. <달구지를 끌고서>는 판화적 느낌이 강조된 불투명한 색감의 이미지들을 선보인다. 바바라 쿠니는 마을 전체와 등장인물을 실물 미니어처로 재현하며 장면들을 그려나갔다고 한다.

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미국의 뉴잉글랜드는 일찍부터 근교농업과 낙농업이 성행했다. 시기상 배경이 <초원의 집>과 유사하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의 풍습들이 등장한다. 단풍나무 수액 사탕부터 읍내-도심의 잡화점, 가내수공업의 일상들까지 가스 윌리엄스의 그림들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가스 윌리엄스, 큰 숲 작은 집 https://brunch.co.kr/@flatb201/48

잡화점 풍경. 바바라 쿠니(좌), 가스 윌리엄스(우)


역시 뉴잉글랜드 지역 농장 관찰기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은 얼핏 포츠머스의 일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더 보편적이다. 작가 앨리스와 마틴 프로벤슨의 농장은 아기자기하고 활기 넘친다. 때문에 사료적 느낌보다는 다양한 캐릭터가 뛰어다니는 농장 조감도처럼 느껴진다. 노동자인 농부를 주체로 진행되던 <달구지를 끌고서>와 달리 익살스럽고 섬세한 캐릭터를 통해 사계절 속에 어우러져 사는 생명들을 그리고 있다.


목가적인 이 두 작품은 모두 문선사의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전집을 통해 처음 읽었었다.

<로타와 자전거>, <마술사 가자지 씨의 뜰에서>, <늪의 괴물 보드니크>, <별도둑>, <우체국 직원이 된 고양이>, <수정의 상자> 등 개성적인 작품들로 구성된 전집이다. 통일된 브랜드 디자인을 고수하는 전집류의 관습을 벗어나 권별 판형이 제각각 달랐다. 또 당대에 유행했던 낭독 테이프가 함께 수록되었다. 문선사에서 발간된 초판은 26권, 백제사에서 재발간된 시리즈는 32권으로 구성된 이 전집은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달구지를 끌고서>,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은 모두 복간되어 있다.


이전에 작성했듯 라블레의 풍자 소설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은 평화롭고, 즐겁고, 건강하게,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상적 쾌락이 이상적 삶이라 주장한 작품이다. 르네상스적 흥겨움으로 치부하기엔 라블레가 추구한 가치들은 지금도 보편적이다.

#기쁘게 취하는 삶, 팡타그뤼엘리즘 https://brunch.co.kr/@flatb201/102

웰빙, 심플라이프, 킨포크 저니, 슬로라이프, 휘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라블레보다 몇 세기 후에도 무수한 명칭들이 우리의 일상을 스쳐간다. 그 형태가 어떤 것이건 소비하는 이들이 누구건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다.

잘 먹고,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고, 가급적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소비하는 것, 그렇게 보낸 날들로 삶을 채워나가는 것.


실제의 귀농이 킨포크 화보처럼 아름답기만 할리 없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순간은 종종 일상에서 비켜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사히 살아낸 올 한 해처럼 인생의 순환 또한 유려하기를, 불투명한 미래지만 작은 불빛들이 모여 아름다운 트리가 세워지길 바란다.

그런 순간들을 기대하며 지난한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출처/

짐수레를 끌고서, 도날드 홀 (Ox-cart Man, Donald Hall, 1979, 일러스트 바바라 쿠니 Barbara Cooney)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22권, 짐수레를 끌고서 (문선사, 1984, 일러스트 바바라 쿠니 Barbara Cooney)

비룡소 그림동화 46, 달구지를 끌고 (비룡소, 1997, 번역 주영아, 일러스트 바바라 쿠니 Barbara Cooney)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 앨리스& 마틴 프로벤슨 (The Year at Maple Hill Farm, Alice & Martin Provensen, 1984)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25권,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1년 (문선사, 1984, 일러스트 앨리스& 마틴 프로벤슨 Alice & Martin Provensen)

단풍나무 언덕 농장의 사계절 (북뱅크, 2008, 번역 김서정, 일러스트 앨리스& 마틴 프로벤슨 Alice & Martin Prove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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