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너무 환해 깨버렸다.
벚꽃이야 진즉 졌고 청량한 밤공기에 라일락향이 진동했다. 우리 동네에 라일락이 이렇게 많은지 향기로 알게 되었다. 평온한 진공 속에 창 밖을 오래 바라본다.
달빛 휘황한 밤 아름다운 정원을 향한 문 앞에 서있는 소년이 있다. 그가 발견한 문은 타디스 Tardis일까? 소년은 자신의 시간이지만 자신은 부재한 시간의 정원으로 들어선다.
<에이스 88> 전집을 통해 읽었던 <톰 깊은 밤 13시>는 아동문학가 필리파 피어스의 인기 대표작이다. 뜬금없는 표지에도 호기심을 자아내던 멋진 제목은 초월 번역이다. 원제 <한 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회환으로 끝내지 않는 위로에 관한 아름다운 판타지다.
#동서문화사의 삼총사 https://brunch.co.kr/@flatb201/103
원전의 일러스트를 그린 수잔 아인칙은 나치 치하 독일에서 아슬아슬하게 탈출해 영국에 정착했다. 임시 교사로 일하며 삽화 작업을 병행하던 중 <메리 밸린다와 열 명의 이모 Mary Belinda and the Ten Aunt, Norah Pulling, 1945>로 인지도를 얻었다.
전작들보다 사실적이며 고전적 분위기인 <한 밤중 톰의 정원에서> 속 이미지들은 지금도 이 작품의 시그니처 일러스트로 꼽힌다. 전후 시기인 만큼 출판업에선 삽화 관련 인쇄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잔 아인칙은 인쇄 숙련공을 지명하는 호사를 누릴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에이스 88> 수록권 삽화는 원전의 일러스트를 모사한 이미지가 실려있다. 화풍상 전성보가 아닐까 추정된다.
방학은 이제 시작이건만 ‘톰’은 전혀 즐겁지 않다. 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려 혼자만 그웬 이모네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모네 집은 오래된 저택을 개조해 협소한 마당조차 없는 다세대 주택이다. 건물 3층에 사는 집주인 ‘바솔로뮤 할머니’가 애지중지한다는 붙박이 괘종시계는 특히나 음침하다.
낯선 잠자리에 뒤척이던 톰은 자정 넘어 열세 번의 종소리를 듣는다. 그저 착각이겠거니 했던 때와 달리 오늘 밤 시계 소리는 절실하게 톰을 재촉하는 것 같다. 숨 죽여 아래층으로 내려간 톰은 달빛 아래 낯선 문을 발견한다. 문을 열자 싱그러움 물씬한 대정원이 펼쳐진다.
다음날 아침, 톰은 정원을 향한 문 앞으로 다시 가보지만 그 자리에는 콘크리트와 쓰레기통이 있었다. 하지만 정원은 그날 밤도 여전히 존재했고 이후로 시계가 열세 번 종을 치면 톰은 혼자만의 정원 탐험을 시작한다.
톰이 들어선 대정원은 아마도 수십 년 전의 시간에 속해있는 것 같다. 정원만큼 아름다운 저택에는 책에서나 보았던 옷차림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아무도 톰을 알아보지 못한다. 오직 한 사람, 어린 소녀 ‘해티’만 빼고.
부모가 사망한 후 숙부네 집에 의탁하게 된 해티는 언제나 외롭다. 터울이 있는 사촌 오빠들은 또래 특유의 심술만 부리고 숙모는 엄하고 쌀쌀맞다. 해티는 자신과 다른 차원에서 온 파자마 차림의 톰을 유령으로 여긴다. 사소한 다툼 끝에 경계심을 푼 둘은 친해진다.
정원은 문을 열 때마다 다른 시간, 다른 계절이다. 여름 폭풍이 내리친 벼락에 불기둥이 되었던 나무가 다음날은 멀쩡히 아름드리 자태를 뽐낸다.
한밤중의 정원에 몰두하게 된 톰은 방학이 끝나가서 애가 탄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소녀였지만 이제 종종 어른 직전의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해티는 이전만큼 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톰과 해티는 이렇게 흐지부지 스쳐가는 걸까? 정원에서의 그 많은 시간들도 함께?
시간을 소재로 한 판타지답게 <한 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시대상을 비교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키친 가든까지 딸린 해티네 대정원은 협소한 마당에서만 놀던 도시 아이 톰에게 차원을 넘어선 공간적 해방감을 준다. 톰과의 은밀한 공조로 인해 정원은 해티에게도 은신처가 아닌 즐거운 놀이터로 여겨진다.
필리파 피어스의 문장은 이미지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을 구현해낸다.
#비밀의 화원, 내일의 장미 https://brunch.co.kr/@flatb201/266
톰이 각기 다른 밤 만나는 정원의 날들은 소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되풀이되는 날은 없다.
손 가는 대로 펼쳐 읽는 챕터처럼 뒤죽박죽인 정원의 시간 속에서도 해티와 톰은 자라난다.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톰과 해티는 알지 못했지만 사실 둘의 교제는 잔인한 시간을 건너뛴 채 펼쳐진다. 어린 소녀의 서러움 앞에 서툴게 방관하던 톰은 정원에서의 시간을 거치며 다정하게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간절함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예정되어 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 앞에 둘의 조우는 애틋할 수밖에 없다.
자연에 인생을 대입하는 작품은 많지만 <한 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위로의 방법을 첨언한다.
사는 게 지옥이라 생각되는 뉴스와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다 마주치는 아름다움-주로 풍경들은 때때로 기이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내가 닿지 못한 세상의 곳곳, 표현할 길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얼마나 많을까?
어디선가 이토록 아름답게 꽃이 피고, 눈이 날리고, 바람이 불고 있다 생각 들면 더없이 쓸쓸해진다.
몹시 추웠던 날, 문득 바라본 목련 가지엔 여지없이 야무진 씨눈이 맺혀있었다.
그 안에 봄이 담겨있다 생각하니 잠시 행복해졌다.
조용히 만개를 준비하는 꽃송이처럼 있는 줄도 몰랐던 기억을 그렁한 눈으로 응시하게 하는 환기가 있다.
우리가 소멸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어딘가의 시간으로 날아드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의 씨눈 속에 잠겨있다 이 계절, 애틋한 위로로 피어난다.
@출처/
톰 깊은 밤 13시, 필리파 피어스 (Tom's Midnight Garden, Philippa Pearce, 1958, 일러스트 수잔 아인칙 Susan Einzig)
ACE 88 전집 2/50, 톰 깊은 밤 13시 (동서문화사, 1988, 번역 신동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시공주니어, 1999, 번역 김석희, 일러스트 수잔 아인칙 Susan Einz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