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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Apr 23. 201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신경쇠약 직전의 소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


토끼를 쫓다 땅굴로 떨어진 미소녀, 미치광이 모자장수의 티 파티, 파이를 훔친 하트의 잭과 카드의 여왕, 체셔 고양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매력은 캐릭터에만 있지 않다. 시대와 밀접한 말장난은 문학사를 떠나 대중적 인기몰이를 했다. 작품 속 언어유희가 캐럴이 살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건, 유행과 관련된 것이기에 현대의 독자들은 낯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많은 판본이 있지만 <롤리타 Lolita, Vladimir Nabokov, 1955>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러시아 번역본이 유명하다. 이 작품의 열렬한 애독자였던 나보코프의 번역본은 ‘최초의 번역은 아니지만 가장 훌륭한 번역’으로 평가받는다.

#누가 모자 장수를 미치게 하는가? https://brunch.co.kr/@flatb201/75

#신경쇠약 직전의 소녀 https://brunch.co.kr/@flatb201/233

#빈티지 앨리스 1 https://brunch.co.kr/@flatb201/234

#빈티지 앨리스 2 https://brunch.co.kr/@flatb201/235

#빈티지 앨리스 3 https://brunch.co.kr/@flatb201/236




궁극의 소녀

정치적으로도 보수파였던 루이스 캐럴은 불경하거나 외설적인 표현들을 혐오했다. 심지어 외설적인 표현을 걷어낸 어린이용 셰익스피어 전집을 펴냈다. 미남이지만 언어장애와 수줍음으로 사교모임을 괴로워했고 어린아이들, 그중에서도 소녀들을 좋아했다. 각종 놀이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받은 영감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한다.

알려진 대로 캐럴은 특히 좋아했던 리델 가의 자매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선물했다. 책이라곤 해도 캐럴이 직접 제작한 필사본이었다. 초판 발행 시 캐럴은 이 필사본에 그려 넣었던 자신의 스케치가 삽화로 사용되길 바랐다. 캐럴의 바람은 편집자로부터 제지받았고 당시 인기 삽화가 중 한 명인 존 테니얼이 앨리스의 신화를 시작한다. (왜 제지받았는지는 아래 그림을 보자.)

캐럴에게 영감을 준 앨리스 리델의 이미지는 테니얼과 방향이 달랐다. 삽화를 그리는 내내 캐럴의 불평에 시달렸음에도 끝내 자신의 컨셉을 고수해낸 존 테니얼도 참 뚝심 있다.

딱히 능멸할 의도는 없지만 원작자가 그린 최애... 나름의 매력은 있다. 루이스 캐럴의 스케치(좌), 같은 장면 존 테니얼의 스케치 (우)


빅토리아 시대는 어린 소녀들의 아름다움과 처녀성을 이상화를 넘어 대상화했다.

캐럴 역시 성적 함의가 거세된 ‘말갛고 순수한 절대 소녀’ 이미지에 집착했다. 캐럴이 사랑하고 찬미한 무수한 어린이들 중 앨리스 리델은 궁극의 소녀였던 셈이다.

앨리스 리델 Alice Liddell, 캐럴이 그린 앨리스, 루이스 캐럴
존 테니얼의 이미지 모델은 두 명이었다. 메리 힐튼 버드콕 Mary Hilton Babcock, 비어트리스 헨리 Beatrice Henley, 테니얼이 그린 앨리스
극 중 앨리스 언니의 모델이 된 실제 친언니 로리나 리델 Lorina Liddell, 루이스 캐럴의 스케치, 야구루마 스즈시가 그린 앨리스 자매




집안의 천사, 제국주의 시대의 여성성

캐럴과 앨리스의 실제 교제에서 부적절한 기미는 없다고 한다. 그가 어린 소녀들에게 끌린 것은 성적 대상과 무관한 안전함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신체적인 접촉이 없었다 해서 캐럴의 대상화가 정당할 수 있을까?

이 시기 극강의 순결과 순정함으로 규정된 여성상은 제국주의 정치 전략의 일부였다.

‘이성이 부재한 집단’으로 폄하된 여성성에는 생리학적 열등함까지 입혀진다. 희화화되어 조롱받는 히스테릭한 여성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즉,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는 것은 찬사가 아니었으며 여성은 미성숙한 계도 대상으로 규정된다.


천사처럼 노력해서 얻은 미덕은 주로 앉아서 바느질하는데 이용된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지금도 여전하지만 남자들이 이상으로 규정하는 여성성은 꿈속의 이미지들이다.

절대 순수의 미성숙한 여성상은 ‘집안의 천사’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찬사 받았다. 그러나 보호대상, 뮤즈로서의 속성은 기본 인권 자체를 몰수한 교활한 명분이었다. 여성을 수동적 존재로 종속한 남성들은 수호자로서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 착취를 합리화했다. 때문에 시대적 한계 안에서도 작가들, 특히 여성작가들은 이런 인공적인 부조에 조소를 보냈다.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일갈은 현재도 유효하다.


테니얼이 그린 공작부인(좌)의 이미지 모델이 된 퀜틴 메이시스의 풍자화 The Ugly Duchess, Quentin Massys, 1513 (우)


남성들 역시 제국이 바라는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이 가진 기득권은 ‘수호자로서 신사’ 이미지 아래 유효했다. 때문에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욕구는 식민지까지 뻗어나가 계급 폭력으로 발현된다.

부강한 태평성대 아래에는 신경증적 압박감이 고조되고 있었던 셈이다.

스스로의 자각 여부를 떠나 루이스 캐럴 또한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부적절한 기미가 없다 해도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이다. 취향에 이유는 없다지만 나보고프의 집착적인 덕질마저 찜찜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다.





@출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Lewis Carroll, 1865)

Lewis Carroll's Handwritten (1864, 일러스트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금성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 2권 영국 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금성출판사, 1979, 번역 김재영, 일러스트 야구루마 스즈시 矢車凉)

주석으로 읽는 앨리스 (The Annotated Alice, Martin Gardner, 북폴리오, 2000, 번역 최인자, 일러스트 존 테니얼 John Tenniel)


제국주의와 남성성, 설혜심·박형지 (아카넷,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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