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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May 09. 2019

노란색 벽돌길은 에메랄드 성을 향한다.

리틀 피플 빅 드림즈 시리즈


정작 스스로는 책을 읽지 않는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독서의 습관을 심어주기 위해 고심한다.

하지만 어릴 때는 항상 놀 시간이 부족하다! 빡빡한 일정을 가진 요즘 어린이들이라면 더더욱 시켜서 읽는 책이 재미있을 리 없다. 기획전집의 후려치기에 관한 우려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책 자체만 두고 본다면 진부한 고전 전집류가 꼭 배제되어야 한다 생각지는 않는다.

약간의 지도는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취향을 찾아가는 것만큼 좋은 독서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내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우쳐준 건 마구잡이식 읽기였다.

PC함과는 무관한 각종 전집류를 클리어한 이들이라면 분명 온갖 글들을 읽어댔을 것이다. 이해되지 않고 인상으로만 남겨진 금지된 카테고리가 탐구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기성품 같은 세계문학의 진부함마저 가이드가 되어줬다. 만화.. 아! 처음으로 어둑한 만화방에 들어설 때의 불온한 설렘은 언제나 일시에 환기가 된다.


책은 가장 쉽게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창구이고 모든 어린이에게는 가능성이 제시되어야 한다.

때문에 조카에게도 굳이 계도성을 목표로 책을 권하지 않는다. 물론 학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혐오 서사를 주입하는 매체들, 그중에서도 위인전에 관해 나는 굉장히 냉소적인 입장이다.

따분하다고 간과하기엔 위인전은 정말 효율적인 프로파간다이다. 노골적인 계도성을 목표로 윤색된 서사는 언제나 스테디셀러이다. 그 무게중심이 구국의 영웅에서 자본주의 성공신화로 옮겨 갔을 뿐이다.

심지어 여자 어린이들은 여전히 ‘현모양처’라는 차별적 혐오 서사를 주입받는다.

순결한 성처녀 이미지로 부각된 ‘잔 다르크’나 (순결해야 한다!) 등불을 든 백의의 천사로 윤색된 ‘나이팅게일’ (어머니 집밥과 동일한 뜻이다!)이 대표적이다. ‘마리 퀴리’처럼 너무도 또렷해 가릴 수 없는 업적을 가진 여성에겐 기어코 ‘부인’이란 명칭을 붙여 종속시키려 든다.



위인전집이라 볼만한 <리틀 피플 빅 드림즈>는 기획전집의 한계에도 무척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단 일러스트가 예쁘고 산만한 어린이들도 쉽게 되풀이할 수 있는 축약이다. 약소하나마 보충 페이지를 통해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현실과의 연계성도 명시한다.

무엇보다도 이 기획전집의 가장 큰 장점은 배제되고 지워진 이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위인전의 가장 큰 특징인 성취보다는 목표를 향해 움직인 사람, 주변인으로의 배제를 초월한 인물들이 선별되어 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로자 파크스, 조지아 오키프, 자하 하디드가 누구인지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가? 간디나 에디슨, 이순신은 이제 좀 넣어둬라. 현재 국내에는 <에멀린 팽크허스트>, <코코 샤넬>, <프리다 칼로>, <아멜리아 에어하트>, <마리 퀴리> 다섯 편이 발간되어 있다. 하나같이 좋았는데 후속 발간이 중단될까 조바심 난다. 특히 <제인 오스틴>, <비비안 웨스트우드>, <제인 구달> 편이 빨리 완역되길 바란다.



물론 이 시리즈 역시 위인전의 함정을 완벽히 피해가진 못한다. 예를 들어 <코코 샤넬> 편의 경우 성인이라면 익히 아는 일대기가 함축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아동 도서의 숙명처럼 인물의 최대 약점, 샤넬로 치면 세계대전 전범 활동 같은 부분은 당연히 빠져있다. 때문에 조카에게 이 책을 사줄 때 그 부분에 대한 지도를 해줘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결국 이런 역사를 부러 알려주진 않았는데 어차피 크면 알 텐데..라는 안이함 때문이 아니었다.


소녀들, 미래의 여성들에겐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하다.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보다 훨씬 오만해져도 좋겠다.

유구한 지우개질에도 끝끝내 살아남은 여성이라면 더더욱 발굴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수정의 상자, 소녀들은 모험을 꿈꾼다 https://brunch.co.kr/@flatb201/171

#시간을 달리는 그녀들 https://brunch.co.kr/@flatb201/164


토네이도에 휩쓸린 도로시는 무지개 너머 소망에 닿기 위해 에메랄드 성을 향해 떠난다. 막연한 여정, 보이지 않을 때도, 보이지만 쉽게 닿지 않을 때도 도로시를 올바른 종착지로 안내한 것은 노란 벽돌길을 따라가라는 조언이었다.

귀감이 되는 삶이 쉬울 리 없듯 완벽한 위인전이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준 건 먼저 걸어간 여성들의 흔적이다. 좌절과 불안 속에서도 그녀들이 깔아나갔을 노란 벽돌길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아주 오래 걸을 테니까.

뒤따라오는 나의 조카, 미래의 여성들이 지금보다 훨씬 탄탄하고 아름다운 길을 밟기 바라니까.





@출처/

Little People, Big Dreams (Lincoln Children's Books)

리틀 피플 빅 드림즈 시리즈 (달리)

https://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654903


The Wonderful Wizard of Oz, Lyman Frank Baum,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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