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삶
삶이 어느 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막이 될 때가 있다. 삶이 건조해질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자기만의 생수를 갖고 있다면 좋겠다. 누구에게는 종교, 자연 또는 조용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By 김창옥
당신은 말라가는 당신의 마음을 위해서 부을 생수 한 병 갖고 있나요? 아니면 모르고 있지는 않은 가요? 당신의 마음이 말라간다는 것을...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새벽에도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혼자 책상에 앉아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논문을 쓰면서 TV를 습관적으로 켜놓았다. 집이 너무 조용하면 잠이 들까 봐 배경음악처럼 틀어 놓았다. <오바마의 저녁시간>이라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니, 오바마는 밤에 스포츠 채널을 틀어 놓고 혼자 집무를 봤다고 한다. 나도 '마음만큼은 오바마처럼' 이런 데서 굳이 동질감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배경처럼 틀어놓는 방송은 대부분 조근조근 말하는 방송들이다. <썰전> 같은.
어느 날, 틀어놓은 프로그램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김창옥 씨의 강연이었다. 논문을 적다가 피곤해서 잠깐 쉴 겸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틀어놓은 TV를 봤다. 특유의 사투리로 중간중간 유머를 넣어주는 김창옥 씨의 유쾌한 강의. 어찌나 재미있고 웃기던지 잠깐만 보려고 했는데 결국 끝까지 그 방송을 다 보았다. 그날 김창옥 씨는 사막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사막을 걸을 때, 주기적으로 물을 마시라고 한단다. 사막에서 땀을 흘려도 뜨거운 날씨 때문에 바로 증발해버려서 몸은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땀이 눈에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물을 마시지 않으면 곧 탈수증으로 이어져 목숨도 위태롭게 된다고 했다. 이 사례를 들어 일만 하고 사는 우리 삶에 빗대어 얘기했다. 너무 열심히 사느라 자신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일만 하면 어느새 쓰러지고 말 거라고. 가끔씩 나를 위해서 좋은 것도 보여주고 맛있는 것도 먹여주라고. 그 새벽에 누구한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 얘기였으니까.
퇴사를 하고 나니 일을 제외하고 남은 루틴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마음은 바람 빠져 쪼그라 들러붙은 풍선 같았다. 이런 상태로는 작은 충격도 흡수하지 못하고 또 나가떨어질게 뻔했다. 다시 일상을 좋은 것들로 채우고 루틴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도 오르고 낚시도 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하루에 10km가 넘는 거리를 계속 걸어 다니면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애쓰고 좋아하는 커피도 꾸준히 마셔주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밤, 제주에서 일몰을 보며 생각했다. 아주 조금 차오른 것 같다고. 바짝 말라 갈라진 논두렁에 물 한 바가지 붓는다고 해서 바로 씨앗을 심을 순 없겠지만. 한 바가지 부었으니 이제 한 바가지 더 부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은 말라가는 당신의 마음을 위해서 부을 생수 한 병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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