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레이트 퍼스트 클래스, 한 잔의 커피와 팀워크 이야기
<런던 만석, 오후 7시 이륙>
이 한 줄짜리 스케줄 상태를 본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특히, 에미레이트 프리미엄 캐빈의 승무원이라면,
나처럼,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멈추지 않을 식사 요청, 와인 페어링 요청,
기내 분위기까지.
이륙 전부터 이미 마음은 바빠오기 시작한다.
오후 7시 이륙.
이건 곧, 이륙 직후 곧바로 몰아치는 저녁 서비스의
전쟁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승객들은 빠르게 식사를 하기 원하고, 우리는
그 속도에 정확히 맞춰야 한다.
늦으면 불편함이고, 너무 빨라도 품격이
떨어질 수 있다.
이 시간대는 그야말로 전장이다.
그날 퍼스트 클래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우아한 전쟁터였다.
승객 14명 만석.
그리고 놀랍게도, 모두가 동시에
캐비아를 주문한 날이었다.
캐비아 하나에도 많은 준비가 따른다.
빵의 종류, 함께 곁들일 와인, 그리고 각자의 기호에
맞춘 사이드 메뉴까지.
한 접시를 완성하기까지 정교한 호흡과
손발이 맞아야 한다.
그렇게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며 음식 준비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기내를 울리는 반가울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띵-똥”
기내전화.
너무나 바쁜 와중엔 이 벨소리조차 부담이다.
“퍼스트 클래스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사무장입니다. 기장님이 아주 뜨거운 카푸치노
한 잔 부탁하신답니다.”
... 순간, 갤리 안에 정적이 흘렀다.
머릿속으로 세 가지 질문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1. 지금? 정말 지금?
사무장님도, 기장님도 이 타이밍이 얼마나 바쁜지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런데 왜 지금?
2. 카푸치노?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데우고, 거품을 곱게
올려야 한다. 아메리카노도 아닌데?
이 바쁜 와중에 만들라고?
3. 그리고.... 아주… 뜨. 거. 운 카푸치노라고?
나는 슬쩍 갤리 담당 승무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태였다. 지금 당장
카푸치노를 만든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다. 내 표정에서 당황함이 적잖이 비쳤는지,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요청을 그대로 전했다가는 지금 이 팀의 균형이
흔들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정중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퍼스트 클래스 갤리가 너무 바빠서 카푸치노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커피에 우유를 넣어 간단히 드릴 수는 있고요,
기다리실 수 있다면
나중에 만들어 드릴 수도 있지만… 정확한 시간은
장담드리기 어렵습니다.”
잠시 후, 사무장님이 직접 갤리로 올라왔다.
말없이 커피 머신 앞에 서더니 카푸치노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툭 던지는 한마디,
“오늘 퍼스트 클래스 승무원들, 참 딱딱하네…”
그 순간, 갤리의 공기는 차갑게 굳어졌다.
우리가 딱딱한 게 아니었다.
딱딱했던 건, 서로를 향한 배려가 없던 태도였다.
사무장님이 커피를 내리며 던진 그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작은 컵 속의 카푸치노는, 기장님이 원하는 만큼
뜨거웠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우리의 팀워크는 한순간 차갑게 식었다.
우리는 눈빛 하나로도 움직이는 팀이다.
한 사람의 식사를 완벽히 맞추기 위해, 캐비아를
올리는 타이밍부터 와인 페어링까지 철저히 호흡을
맞춘다. 그런데 그 호흡 안에 누군가 “이 정도야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끼어든다면
그 팀워크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문제는 커피 한 잔의 요청이 아니었다.
그 타이밍, 말투,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 배려가 없었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모든 서비스를 마친 뒤, 하루 중 가장 분주했던 갤리
담당 승무원이 조용히 무언가를 준비했다.
“얘들아, 정신없이 일하느라 힘들었지? 여기 와서 이거 좀 먹어. 너희 것 따로 챙겨놨어.”
그녀의 앞에는 예쁘게 차려진 티 팟 세트와 따끈따끈한 스콘이 놓여 있었다.
갓 우려낸 차, 막 구운 스콘.
바로 우려낸 차에서는 향이 은은하게 퍼져왔고,
막 오븐에서 나온 스콘에서는
고소한 버터 냄새가 풍겨왔다.
그녀는 우리에게 그걸 내밀었고,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조용히 웃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스콘이었다.
그날 우리는, 배려 없는 한마디에 흔들렸지만
배려 깊은 한 조각에 다시 회복했다.
진짜 팀워크란, 아주 뜨거운 커피보다 서로를 생각해 주는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물론,
사무장님의 스콘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