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기 2층은 키즈카페, 4층은 주간보호센터인 건 아시죠?”
“네 봤어요. 꼭 인구 피라미드 같아서 인상 깊었어요.”
“인구 피라미드요?”
정우의 눈엔 이 건물이 인간 피라미드와 비슷하게 보였다고 한다. 2층의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카페, 3층은 청년층의 작가 작업실, 4층 노년층의 주간보호센터. 비어있는 5층은 꼭 인간의 끝인 죽음을 뜻하는 것 같다고.
아린은 오래 이 건물을 드나들었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상상력이 아니, 센스가 좋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냥 뭐… 엘리베이터에 각 층 안내판이 있잖아요. 그걸 보니 인구 피라미드랑 비슷하다 생각했어요. “
“혹시 지금 말씀하신 거 저 나중에 소재로 써도 돼요?”
“이 건물이 인간 피라미드 같다는 거요? 당연히 되죠. 대신 혹시 멋진 작품이 나와서 대박 나면 저 꼭 맛있는 거 사주셔야 해요.”
“그럴게요. 이야기가 다른 데로 빠졌네.”
아린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정우가 잠시 커피를 가져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시간을 뺐어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거창하고 오래 걸리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져와요. 오늘은 어차피 글 쓰기는 포기했으니까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옥상을 내려갔다. 아린은 조금씩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라떼를 마셨다. 정우의 말대로 달달함이 온몸을 감싸더니 머리에 있던 잡생각을 모두 날려주는 듯했다. 아린은 정우와의 대화로 모든 것이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정우와 대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더 유명한 공모전에서 당선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야 더 유명해지고 자신의 글을 읽어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한 마디에 더 이상은 공모전이 아린의 인생에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심사위원들의 입맛에만 맞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으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틀에 맞춰 글을 써야만 당선될 수 있는 것이라면 구태어 지금까지 공들일 필요가 없었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하늘에서 곧 시선을 거두었을 때 정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 다시 아린의 앞에 앉았다.
정우는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음… 진짜 별거 아니었어요. 키즈카페 어머님들이랑 주간 보호 센터에 계시는 어르신들의 언쟁이었죠.”
옥상에 흡연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주차장 한 구석에서 대부분 흡연을 했다. 아린뿐 아니라 이 건물을 이용하는 손님들, 그리고 주간 보호 센터의 어르신들 역시 마찬가지 었다. 주차장 끝 차를 댈 수 없는 부분에 간이 재떨이를 놓아두고 흡연자들은 그곳을 이용했었다. 2층 키즈카페는 특성상 오픈 때와 마감 때 빼고는 창문을 모두 닫아두는 터라 딱히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담배 연기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군다나 비흡연자나 어린이들에게는 더더욱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아린도 키즈카페 때문에 작업실에 올 때는 전자담배만 이용했지만 가끔 글이 너무 풀리지 않을 때는 주차장으로 와 흡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키즈카페에 온 손님과 어르신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몸이 불편하신 분도 계셨고 다른 사람의 부축 없이는 걷기 힘든 분도 있기에 보호사들이 시간을 정해놓고 흡연하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내려왔다. 어르신들이 흡연을 하는 동안 보호사들은 옆에 서 있었다. 어떨 때는 보호사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분명 비 흡연자라면 담배 냄새가 끔찍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어르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날도 아린은 1층으로 내려와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날 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나이 드신 분들이 어쩜 이렇게 생각이 없으세요? 여기 애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떻게 여기서 담배를 피우세요?”
한 아이의 엄마는 모여 있는 어르신들을 향해 소릴 질렀다. 보호사가 대신 양해의 말을 전하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여기가 흡연 구역으로 정해지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몸이 불편하셔서 딱히 다른 곳으로 가시기도 어려워서….”
“몸이 불편하면 안 피워야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말씀이 너무 지나치..”
“지나쳐요? 당신은 자식 없어요? 만약 당신 자식이 여기 카페에 놀러 왔는데 담배냄새 맡고 가면 좋아요? 좋냐고요!”
여자는 화가 많이 나 보였다. 흡연자로서 아린은 당연히 여긴 흡연구역이니 상관없다고 하고 싶지만 또 저 여자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말은 분명 지나쳤지만 무조건 저 여자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때 한 어르신이 담배를 끄시고는 여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 큰 소리가 나겠구나 싶었다.
“미안합니다. 아이들이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싫겠지요. 저희는 여기와 있는 이상 이곳밖에 올 수 없어서 이용한 겁니다.”
구부정한 자세로 여자에게 말하는 할아버지 뒤로 여자 못지않게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도 있었다.
“어린년이 말을 왜 그렇게 해! 그럼 몸이 불편하면 아무것도 못하냐? 나이 들면 아무것도 못해? 늙으면 그냥 죽어야 돼? 여기 흡연구역이라고 만들어 놨으니까 온 거지! 생각이 있니 없니 그런 말을 해 버르장머리 없이!”
여자는 그대로 맞붙었다.
“여기서 계속 피니까 흡연구역이라고 만들어 준거겠죠. 그리고 왜 욕하세요? 제가 틀린 말 했어요?”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언쟁이 하울의 등장으로 종료됐다. 하울은 키즈카페 이용객인 여자에게 빠른 시간 내에 다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어르신들도 달래 다시 올려 보냈다. 그걸 모두 지켜보고 있던 아린은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작업실로 올라갔다.
“여기까지가 끝이에요. 별거 없죠? 그다음 날 바로 옥상에 흡연부스 만들고 이왕 흡연부스 만든 김에 저희랑 어르신들이 머물다 갈 수 있게 조금 더 꾸며 주셨죠.”
“어르신들도 마음의 상처를 좀 입으셨겠어요.”
“그렇겠죠. 저도 좀 기분이 이상했어요. 꼭 죄지은 사람 같고. 담배라는 게 기호식품이긴 하지만 요즘은 더더욱 조심해야잖아요. 남에게 피해를 줘도 안되고요. 하지만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오신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할 거고요. 어찌 됐든 이 건물에서의 흡연사건은 여기 흡연부스로 마무리되었지만 이게 여기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아직까지도 아파트나 공공시설에서는 타협점을 못 찾은 곳도 많고요. 흡연자들 입장에서는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라는 마음이 더 크지만 또 비흡연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거든요. 저는 흡연자지만 비흡연자들 마음도 충분히 이해돼요.”
정우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분의 마지막 말에 하울 님이 옥상 흡연 부스를 바로 만들었어요. 늙어 자식에게 버림받아 복지센터에 온 노인네들 주제에. 딱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 여자분이.”
“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말을…. 자기도 늙을 텐데.”
“주간 보호센터를 요양원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낮 시간에 자식들이 일을 해야 하니 이곳에 잠시 계시도록 하는 건데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우리끼리는 노치원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어린이들이 부모가 일할 동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듯이 혼자 생활하시기 힘든 어르신들이 여기 오셔서 친구도 만드시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내시거든요. 왜 어린이들이 가는 유치원에 대한 편견은 없으면서 어르신들이 오시는 주간 보호 센터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사람들의 인식이 그런 거겠죠. 당시 그 말씀을 들은 어르신들 중 두 분은 아직도 나오지 않으신데요. 여기 보호사 분이랑 가끔 마주치면 얘기하거든요.”
“저라도 못 올 거 같아요. 수치심 드셨을 것 같아요. 고작 담배 한 개비에 너무 모욕감이 드셨을 것 같아요.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말이죠. ”
아린은 그날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오시지 않는 두 분 중 한 명인 듯했다.
“그래서 건물주님, 우리 하울 님이 생각해 내신게 옥상 쉼터예요. 흡연 부스로 인해서 연기가 새어 나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줄 일 없고 어르신분들 가끔 나오셔서 산책 대신 즐기시기도 하고. 멋지죠 우리 건물주님.”
정우는 그 덕에 좋은 휴식 공간이 생겨서 좋긴 하지만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사회가 변하면 거기에 따라가야 하는 게 맞지만 씁쓸하긴 하네요. 이런 사연이 있는 곳일 줄이야.”
“짧은 이야기인데 너무 길어졌네요. 글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내려가서 쓰면 돼요. 아린 씨는요?”
“저는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요. 아까 정우 씨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공모전 이야기요?”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이야기를 드린 것 같네요.”
“아니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집에 가서 어떤 글이 쓰고 싶은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 좀 해보려고요. 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아린은 웃으며 일어나자 정우도 따라 일어났다. 작업실로 내려가려던 찰나 정은과 서주가 옥상 문을 열고 올라왔다. 잠시 담배만 피고 오겠다던 두 사람이 오래도록 오지 않자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정은이 정우에게 조금 더 있다 가자고 조르자 세 사람은 옥상에 더 머무르기로 했다. 아린은 먼저 사무실로 내려와 노트북과 가방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