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올라탄 아린은 핸드폰을 연결해 늘 그렇듯 예전 인기가요를 틀었다. 요즘은 아이돌들의 노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린이의 풋풋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예전 아이돌의 노래는 춤과 가사까지 모두 외우며 아직까지도 즐겨 듣는다. 그때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도 몸도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차를 몰아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온 뒤 볼륨을 더 높였다.
늘 듣는 음악이다 보니 가사에 집중하거나 노래에 심취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로 잡생각이 간간히 끼어들었다. 자꾸만 정우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에.
옥상에서 이미 정리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걸 보니 아직 미련이 남은 것 같다고 아린은 생각했다. 이 작업실로 들어온 이유도, 글을 쓰는 이유도 모두 최상위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서였다. 특히 메이저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면 소설가로서의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했다. 사실 정우가 이야기하기 전에도 아린은 문학계에 이어오는 관행 같은 것들을 대충 들어 알고는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
유명 작가의 이름이 붙은 공모전은 그 산하 아카데미를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수상을 했고 유명한 출판사 공모전 혹은 신춘문예 등은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 그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만이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지금까지 아린이 생각했던 대단한 소설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모전에서 당선되려면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문체나 주제로 글을 써야 하고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소설의 방향을 배우는 건 예술고를 나오거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거나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이다.
그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들 중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형식과 틀을 맞춘 글들이 당선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정우가 말한 심사위원이 원하는 글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다 취미로 간간히 쓰고 책을 읽으며 소설 공부를 했던 아린은 그런 스킬 따위는 없다. 책을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사람을 더 많이 관찰하는 것. 유튜브와 검색 사이트를 통해 소설을 배우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직장을 그만두며 아카데미를 다녀볼까 고민하던 아린이 포기했던 이유는 한 플랫폼에서 터진 어느 작가의 소설 때문이었다. 그 작가는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간간히 써 올린 글이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대한민국 독서가들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다. 아린 역시 그 플랫폼을 이용하지만 소설을 게시한 적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공모전에 제출하려면 어느 곳에서도 발표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니 선뜻 아껴둔 글을 그곳에 올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공모전 따로, 플랫폼용을 따로 쓰기에는 아린의 집중력은 쉽게 분산되지 않았다.
빨간불에 멈춰 선 아린은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기분. 또다시 공모전을 준비하기에는 이미 마음이 내려앉아 버렸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공모전을 위해 써온 글들을 플랫폼에 연재하자니 숨겨왔던 보물을 도둑맞은 듯 아까운 기분이었다. 플랫폼을 통해 성공한 작가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쥐도 새도 모르게 묻혀버리는 버려진 소설이 되진 않을까. 몇 년을 공들인 글이 천대받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조여왔다.
초록 신호가 들어와 출발하는 순간 아린의 폰이 울렸다. 같이 작업실을 사용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한 번도 전화 온 적이 없던 정은의 이름이 내비게이션 화면에 나타났다. 아린은 핸들 앞쪽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언니 저 정은인데요. 저희 정우 씨 들어온 기념으로 회식할까 하는데 다시 오실 수 있으세요?
회식? 회사도 아니고 무슨 회식을 한다는 말이지? 그나저나 꼬박꼬박 아린 씨라고 부르던 정은이 처음으로 언니라고 부른 것이 더 놀라웠다.
- 회식이라니요?
- 작업실 식구들끼리 친목도모?
- 우리…. 그런 거 한 적 없었잖아요.
- 그러니까 오늘 하자는 거죠. 시간 안되세요?
- 음…. 저는 오늘은 빠질게요. 생각할 것도 있고.
아린이 대답하자 잠시 웅성거리더니 서주가 전화를 건네받은 듯했다.
- 언니. 그러지 말고 와요. 아까 나갈 때 표정도 안 좋던데 같이 이야기하면 좋잖아. 정은 언니도 오늘 우리랑 이야기하고 풀었잖아요. 정우 씨 들어왔으니 환영 파티도 하고.
- 아니 저기….
-그럼 오시는 걸로 알고 우리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바로 와요. 근처죠? 아아 동동 치킨으로 오세요.
- 저기 서주….
아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무례하다기엔 다정하고 다정하다기엔 무례한 통화가 끝나고 아린은 정차가 가능한 길가에 잠시 차를 세웠다. 한 번도 환영파티라는 걸 한 적도 없는 작업실에서 갑자기 환영 파티 겸 회식이라니.
정우의 등장에 서주와 정은이 저렇게나 달라지다니.
“하긴. 나도 정우 씨 말에 흔들리고 있긴 하니까.”
아린은 가지 않겠다는 톡을 보내려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에라 모르겠다. 가자 가.”
아린은 차를 돌렸다.
“그래도 글쟁이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이 늪 같은 상황에 탈출구가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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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오겠다며 나간 정우를 제외하고 다들 취기가 오른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노래방을 가자는 서주와 옥상에 올라가서 맥주를 마시자는 정우의 의견 사이에서 아린과 정은은 정우의 말에 손을 들어주었다. 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노래방이 최적이지만 아무 의미 없이 노래만 부르다 오기엔 아직 아린은 아무런 조언도 얻지 못했다.
차를 돌려 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1차 치킨집에서는 정우에게 쏟아지는 바람에 진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2차에서는 현재 문학계의 흐름과 출판업계에 바라는 조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틈이 없었다.
취기가 올라온 아린은 순간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왜 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여기 온 걸까.’
아린은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옥상까지 따라왔다.
“낮엔 봄인데 밤은 아직 겨울이네요. 꼭 우리처럼.”
서주는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말했다.
“우리요?”
혀가 반쯤 꼬인 정은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응. 우리. 글이 잘되면 봄인데, 안되면 겨울이니까. 딱 오늘이랑 같잖아요.”
“그런가. 아후. 몰라. 아침까지 글 올려야 되는데. 푸아. 어쩌지.”
“정신 차려요 정은언니. 마감해야지.”
정은은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몰라, 몰라 몰라. 잘 거야. 잘…”
서주는 쓰러지려는 정은을 간신히 붙잡았다.
“안 되겠다. 정은 씨 수면실에서 좀 재워야겠어. “
아린과 서주는 정은을 부축해 수면실로 옮겼다.
“저도 좀 잘래요 언니.”
정은을 옮겨 놓은 뒤 힘이 다 빠졌는지 서주도 옆 간이침대에 누워 버렸다.
“둘 다 이러면 어떻게 해. 정우 씨 곧 올 텐데.”
아린의 말에 서주는 손을 휘휘 젓고는 이내 얕은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아린도 취해 휘청거리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이대로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린은 겨우 몸을 움직여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언제 왔는지 정우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 선배님 가신 거 아니었어요?”
정우는 세 사람처럼 취하지 않았다.
“서주랑 정은 씨는 자러 갔고. 저도 가려다 인사는 하고 가려고 왔어요.”
아린은 남은 정신을 부여잡고 테이블로 걸어갔다.
“선배님도 많이 취하신 거 같던데. 맥주 말고 음료수 드세요. 이거 숙취에 좋아요.”
음료 한 캔을 따서 아린에게 건네준 정우는 다시 맥주를 집어 들었다.
“또 둘이 남았네요.”
아직 취기도 없는지 정우는 또렷한 목소리로 아린에게 말했다. 아린은 받아 든 음료를 마시며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 말도 없이 새벽 야경만 바라보던 두 사람의 정적을 깬 건 정우였다.
“고민 있으세요?”
얼굴에 드러났나. 아린은 갑작스러운 정우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뜻 대답하기도 어려웠고 취기에 혹시 혀가 꼬여 말이 어눌해질까 봐도 걱정이 되었다. 이런 걸 생각하는 걸 보니 아직 덜 취했구나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아서. 오버였나요?”
“아니요. 맞아요. 아까 정우 씨랑 한 이야기가 끝이 안 났거든요.”
“음. 갈피를 못 잡고 계시는군요?”
아린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게만 쓰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공모전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생각의 끝은 소설가의 꿈을 포기해야 하나였다.
하지만 정우는 아린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왜 포기해요. 저 선배님 글 조금 전에 읽어봤어요. 공모전에 당첨된 글이요. 작업실 책장에 있다고 서주씨가 말해줬거든요. 글 실력이 좋으시던데요? 시건방지게 보이시겠지만 평가라기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아린 선배님의 글에 대한 의견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왜 그런 글 실력을 두고 글을 포기하세요.”
자신의 글을 읽었다는 정우의 얘기에 아린은 조금 놀랐다. 한 작업실에 있지만 아린은 다른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어보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워요. 그래도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겠어요. 어떤 글을 써야 할까요. 공모전 도전글? 웹소설? 아니면 연재 플랫폼?”
“투고는 어떠세요?”
불쑥 정우의 입에서 나온 투고라는 말에 아린은 정우를 바라보았다.
“투고요? 당연히 해봤죠. 번번이 까여서 그만뒀고요. 할 건 다 해봤다고요. “
“몇 군데 해보셨어요? 메이저 출판사만 해보셨어요?”
메이저 출판사?
“유명한 출판사에만 투고하신 거 아니에요? 중소 출판사나 신생 출판사 이런 곳에도 투고해 보셨어요?”
아니 전혀. 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메이저라는 말이 붙는다는 건 몰랐지만 꽤나 유명한 곳에만 투고를 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래야 광고 효과도 크고 중소나 신생 출판사보다 판매도 잘될 테니까.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들어보셨죠? 저는 이 바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그거 같아요. 저도 웹소설 쓰면서 처음에 50군데 넘는 곳에 보냈다가 한 군데 빼고 다 퇴짜 맞았어요. 그래도 계속 도전했죠.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계속 두드렸어요. 처음엔 초단편, 그리고 단편, 나중엔 장편으로 한 두권 책을 내다보니 이제는 컨택도 많이 오고요. 선배님이 글을 써오신 시간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이 현저히 초라하다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그렇죠?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기엔 이르잖아요.”
정우는 랩을 하듯 다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글을 써온 시간에 비해 보상이 현저히 초라하다는 말. 아린은 자꾸만 입에서 맴돌았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나 마찬가지죠. 출발선에서 어슬렁 거리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럼 내가 글을 포기하지 않고 초라한 보상이 아닌 내 글에 대한 만족하는 보상을 받으려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우 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솔직히 부끄러워요. 아까 다 같이 있을 때 조언을 얻어보려고 했거든요.”
“제가 어려서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자꾸만 주눅 들어요. 난 뭘 했을까. 만약 공모전에 당선되고 싶었다면 그들에게 가서 배워야 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웹소설을 계속 써볼걸 그랬나. 이도저도 아닌 말만 글쟁이가 된 건 아닐까. 자꾸 이런 생각만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