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에서의 안정된 호흡은 매우,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이므로 일단 제쳐두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먼저 조절하는 호흡을 살펴본다.
처음 호흡 조절을 배울 때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다. 신경 안 써도 절로 이루어지는 호흡을 굳이, 왜, 조절할까. 하지만 감정적 급발진을 자주 겪는 나에겐 나름 유용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영향받지 않고 매사에 평온하고 여유로운 분이라면 몰라도 괜찮다. 다만 세상만사 거슬리고 작은 일에도 불쑥불쑥 화가 솟아오른다면 해볼 만하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평소보다 호흡을 더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데, 핵심은 들숨보다 날숨을 두 배 길게 하는 것이다.
먼저 들숨. 속으로 ‘하나, 둘’ 센다.
날숨은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하면서 몸속의 공기를 다 빼낸다.
다시 들숨.
‘하나, 둘.’
날숨.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면 활활 타오르던 감정에서 조금은 거리가 생긴다. 상대에게 다다다다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 혹은 절친에게 전화해서 구구절절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미세하게나마 진정된 걸 느꼈다면 좀 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속으로 하나, 둘, 셋. 넷), 내쉰다(하나, 둘… 여덟까지 센다).
다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어지럽게 날뛰던 생각과 감정이 점차 멀어진다. 해보면 알 수 있다.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유가 좀 거시기한데, 금세 지루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색깔은 시뻘건 분노에서 푸르죽죽한 지루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수업 중 이러고 있으면 나의 금쪽같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다는 각성이 찾아온다. 그러면 곧바로 정신을 차리게 되고 화의 에너지는 아사나를 더 잘 배우겠다는 의욕으로 변한다. 좀 전까지 괴롭고 성가셨던 일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로 바뀐다. 덩달아 복식호흡이 절로 되는 장점이 있는데, 나만 그런가? 해보신 분은 후기를 남겨주시라.
위의 호흡법은 쉬이 지루하니 색다른 호흡법도 알아보겠다. 그것은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정뇌호흡(Kapalabhati)이다.
정뇌호흡은 숨을 내쉬는 방식이 독특하다. 아랫배를 당기며 코로 강하게 숨을 내뱉는다. 마치 코를 푸는 것처럼 한다. 내쉬기만 잘하면 들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숨 쉬는 사람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요가학원에 방문했을 때 정뇌호흡을 하고 있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어둑한 수련실에 홀로 앉아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모양만으로 섬뜩한데 기이한 숨소리까지 들리니 여기가 말로만 듣던 사이비 종교집단인가, 하는 두려움이 올라왔다. 요가에 문외한이라 생긴 오해였다.
무서워 보였던 숨쉬기는 알고 보니 이름(kapala는 머리를 뜻하고, bhati는 빛나게 하다를 의미한다)처럼 머리를 밝게 해주는 호흡법이었다. 그렇게 호흡을 하면 자율신경계가 조절되어 뇌가 맑아진다고 한다. 나로선 그닥… 머리는 모르겠다. 여전히 흐리멍덩한 상태다. 다만 소화가 잘되는 효과를 보았고 아랫배 당기기로 복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몽상에 빠지곤 한다. 머리가 맑아지는 건 언젠가(과연 그런 날이 오긴 할까?) 가능하리라 기대 중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숨을 조절하는 두 가지 호흡법은 다양한 이점이 있으나 귀찮기도 하고 타인이 있을 때 하긴 불편하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호흡 수행 소개로 호흡 이야기를 끝맺겠다.
매우 손쉬운 방식인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의식의 초점을 호흡에 둔다. 간단히 말해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들숨! 날숨! 배가 나왔다 들어가는 것을 살펴본다. 숨이 깊은지 얕은지, 빠른지 느린지, 안정되었는지 들쭉날쭉한지 관찰한다. 겉보기엔 이게 수행인가 싶겠지만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기만 해도 과거와 미래를 헤매던 마음은 현재에 머물러 휴식을 취한다. 정말 놀라운 효험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매 순간 숨을 쉬고 있으니 호흡을 바라보기란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2만 번의 호흡 중 몇 번은 가능할 것이다. 그 몇 번으로도 마음이 쉴 수 있다니 호흡에 관심을 가져볼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