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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09. 2020

이 애들이 다 그 집 애들이에요?

내 두 손은 2살 막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끈다. 입으로는 까딱하면 경로 이탈을 하는 5살 난 셋째에게 쉴 새 없이 경고 멘트를 날린다. 심지어는 별일없이 잘 걷고 있는데도 자동적으로. 9살 첫째와 7살 둘째는 이제 제법 든든하고 의젓하게 내 양쪽에서 걷는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나란히 길을 걷다 보면 아무리 넓은 길이라도 마주 걸어오는 사람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앞뒤로 나눠 걷곤 했다.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을 놓치는 순간 다치거나 사고가 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 진이 빠졌던 나는 간혹 멍해지려는 찰나에 번뜩번뜩 그렇게, 입으로는 자동적으로 경고 멘트를 날리고 아이들이 잘 따라 걸어오는지 살핀다.
 
그러다 보면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스윽 옆에 따라붙는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도, 신경 쓰지도 못했지만 아마도 몇 걸음 뒤에서 우리를 지켜본 사람 이리라. 그냥 그렇게 지나가면 좋으련만 으레 말을 걸어온다.
 
"이 애들이 다 그 집 애들이에요?”




벌써 손가락, 발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들은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은 건 막내가 백일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때도 역시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밀며 걷고 있었고 킥보드를 탄 첫째, 둘째, 셋째가 마치 학익진을 펼치듯 내 주위에서 씽씽 지나갈 때였다. 우리 동네는 아이들이 참 많은 동네라 셋 정도까지도 딱히 놀랄 수준은 아니다. 하필 이 곳이 초행이신 분인 건지 그리고 하필 그분의 눈에 아이를 넷이나 주렁주렁 달고 걸어가는 내가 띈 건지. 세상 신기한 것을 보는 듯 가까이 다가와서 묻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버버 했다.


이 집 아이들이 아니라고 하기엔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처럼 닮은 아이들은 신이 나게 지나가다 일제히 멈췄다. 셋에서 넷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들은 한참 막냇동생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적응해가고 있던 때였고 우리는 4형제라는 연대감에 취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이라도 할 판이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말을 걸어온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처럼 상황판단을 할 겨를 같은 것도 필요가 없는지 이내 저마다 나서기 시작한다.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왔어요!”
“저는 둘째예요!”
“저는 셋째예요!”
“제가 제일 큰 형이에요!”
 
아이들의 외침에 정신이 사나워지며 셋을 낳았을 때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들이 물밀 듯 밀려왔다. 분명히 들어봤던 것 같은 말들이지만 이번엔 두 배는 세진 강도로 호들갑에 가까운 질문들이 계속된다.
 
“딸을 낳으려고 이렇게 많이 낳았어요?”
“어떻게 아들만 넷을 낳았어요?”
”우리 딸은 하나만 낳고도 힘들어하던데.”
“대-단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굳이 그렇게 말을 걸어오지 않아도 아이들을 대동하고 길을 나서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나를 찬찬히 또는 뚫어지게 보다가 커지는 눈들이 신경 쓰였다. 나이 든 사람의 눈길이나 젊은 사람의 눈길이나 매 한 가지이다. 저 아이들이 정말 다 저 집의 아이들이 맞나, 왜 저렇게 많이 낳았나.


그 눈길들이 나에게 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눈길을 피하고 싶었고 괜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그럴 수도 없다. 아이들이 잘 따라 걸어오고 있는지, 어디에 부딪히거나 넘어지지는 않는지 눈을 떼면 안 되니까.
 
결혼을 하고 두 달 만에 첫째가 생겼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삶이 홀딱 뒤집혔다. 자고 싶을 때 잘 수도,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갈 수도 없었다. 자라 가는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또 해낼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첫 아이가 돌이 될 때쯤 둘째가 생겼다. 이번엔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힘이 들었다. 아이가 하나일 땐 키우고 배우는 데 급급해서 예쁜 줄도 몰랐더니 둘째는 정말 예뻤다.


그렇게 멈추는 줄 알았더니 아차 하는 순간 셋째가 생겼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도 했다. 낳아도 될까라는 생각은 말 그대로 낳을 때까지 했다. 셋째가 생겼다고 말해야 하는데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축하보다 염려를 더 받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인데도 아이를 셋 낳은 것이 떳떳하고 자랑스럽기보다 애만 (미련하게) 많이 낳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들 셋의 엄마로 사는 것이 겨우 익숙해졌을 즈음 넷째가 생겼다.


덜커덕이나 한방에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냥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축복받지 못하는 임신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셋째를 가졌을 때부터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번엔 정말로 나쁜 생각을 했다. 뱃속의 아이를 어쩔 수 없다면 내가 어떻게 되어버리는 게 어떨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그저 꿀꺽 삼켜버리고 말 뿐이었다.


아이를 셋이나 돌보면서 배가 불러오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도 힘든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이미 책임져야 하는 생명이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닌 넷이었다. 축하 대신 날아오는 염려의 말들도 기꺼이 감수해야 했다.


자녀계획에 완벽하게 실패한 부모라는 자조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 생기는 족족 그냥 낳아서 키우는구나,라고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한 적 없는데도 그렇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신기한 눈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의 말이 곱게 들리지가 않았다. 불편하지만 싫은 티를 내지도 못했다. 그럴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어버버 하며 어서 그 순간이 끝나기만 바랬다. 아이들을 챙기는 척, 갈 길이 마침 무척이나 바쁜 척을 하면서.
 
어느 명절, 친정 집에 식구들이 다 모였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그래서 내가 아이를 몇이나 낳고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촌동생이 임신을 했다. 사촌동생의 모친인 작은 엄마는 내게 말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하나만 낳으려고 하지 많이 낳으려고 하지 않더라. 우리 딸도 하나만 낳아 잘 키우게 하고 싶다.”
 
나도 많이 낳으려고 많이 낳았던 건 아니었는데 하며 볼멘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헤헤거릴 수 밖에는 달리 없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친정엄마가, 사촌동생이 너무 말라서 자연분만이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병원에서 들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도 얘는 아이들 다 건강히 자연분만했잖아. 자연분만하는 게 회복도 빠르고 좋지.”
 
아이고, 어머니. 자연분만한 것이 뭣이 그렇게 대단히 자랑이라고. 자칫 요상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여차저차 무마시키고 넘어갔던 것이 기억난다.


엄마는 신혼을 즐기다가 여유 있게 임신을 한 사촌동생과 몇 년째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시들고 찌들어가는 본인의 딸이 비교되었으리라. 그래서 자칫 밉살맞아 보일, 고나리 비슷한 것이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으리라.


엄마의 그런 심정이야 내가 왜 모르겠는가.


넷째를 가진 것을 알고 한참 후에 엄마에게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단호했다. 내게 모진 말도 처음으로 했다. 그러나 넷째를 낳기로 마음을 바꿔먹은 내게 며칠 후에 전화를 해와서는, 담담한 말투로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입덧은 어떠냐. 입덧에 오미자가 좋대서 보냈어. 입맛 도는 게 있으면 말해. 보내줄게.”
 
그렇게 낳은 넷째의 사진과 동영상을 하루가 멀다 하고 요구하는 엄마는 애를 어찌나 들여다봤는지 얼굴에 모기 물린 자국까지 발견하고는 모기장을 사주네 마네 호들갑을 떨곤 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다 데리고 병원에 가서 예방접종을 하고 왔다. 첫째를 필두로 진찰실에 넷을 다 데리고 가서 접종을 하려는데 의사 선생님이 뒤에 쪼르록 앉은 아이들을 보고 깔깔 웃으신다.


“어머니, 얼른 사진 한 장 남겨두세요. 4형제가 너무 예쁘네요.”
 
혹시나 뭐라도 잘못 만질까, 다칠까 오만 신경을 쓰며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진땀을 빼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서는 얼른 핸드폰으로 주사 맞기 전 기합이 잔뜩 들어간 아이들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접종을 끝내고 병원을 나서는데 왠지 오늘은 누군가가 저기 멀리서부터 입을 떡 벌리며 야단을 떨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말을 건넬 수도 있겠지.
 
“맑고 밝게 크고 있는 요 예쁜 아이들이 모두 우리 집 아이들이 맞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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