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를 넣어둔 작은 방에서 겨울 이불을 꺼내는데 쿰쿰한 냄새가 난다. 이불 팩과 맞닿은 벽에 곰팡이가 피어 있다. 동그랗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곰팡이들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다 그만뒀다. 쿰쿰한 냄새가 폐에 가득 들어오는 기분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열이 나면 항생제를 썼었다. 항생제로도 안되면 항진균제를 썼었다. 곰팡이를 보니 지금은 쓰지 않는다는 항진균제 암포테라신B가 생각났다. 발끝까지 기력을 모두 빨아먹는 약이었지.
화장실에서 락스와 물을 섞어 분무기에 담았다. 벽에 뿌리니 검은 물이 흘러내린다. 내 몸안에 곰팡이균도 저렇게 흘러내렸을까. 암포테라신B의 부작용 중에 심한 몸 떨림이 있다. 검은 물을 보니 몸 떨림이 이해 간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말처럼. 몸은 괴로운 마음보다 검은 물을 한시라도 빨리 털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연다. 바람이 차다. 올해는 가을이 없는 것 같다. 낙엽도 서서히 떨어지지 않고 한 번에 떨어질까. 뭔가 결과만 남고 과정을 잃은 기분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라 하지만 계절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멀어지는 락스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기억은 남겨놓고 간다. 나도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 뜬금없이 생각난 생존의 과정처럼 헐레벌떡이라도 좋으니 가을이 오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