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 두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위클리 매거진 <한밤의 미술관> 5화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 - 불타는 초록빛 희망'의 두 번째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고흐가 그림 하나에만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던 데에는
동생 테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테오의 경제적 지원과 정신적 지지를 바탕으로 고흐는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길을 갔다.
전시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당대 이름 높았던 화가
고갱(Paul Gauguin, 1848-1903),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 등과 교류하며
자신의 화풍을 확립해 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고흐에게는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그림 전시와 판매로 얻는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
1888년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에 정착한 고흐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란 집(Het gele huis)’이라 이름 붙인 공동체 화실을 꾸리기도 했다.
그해 9월, 고흐는 ‘노란 집’을 그림으로 남겼다.
짙은 녹색 덧문이 노란색 외벽과 잘 어울리는,
소박하지만 아늑해 보이는 집 한 채.
그 공간에 대한 고흐의 애정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 때 이 집에 고갱과 함께 머물기도 했으나
두 사내는 애초부터 함께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고갱과의 다툼 때문에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사건은 유명하다.
높은 이상과 강한 의지.
그러나 이것들도 엇나가기만 하는 그의 삶을 제대로 붙잡아주진 못했다.
공동체를 꿈꾸며 단장했던 그 노란 집에 고흐는, 홀로 남겨졌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희망’만은 끝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했던가.
낙담과 좌절의 구덩이 속에 갇힌 고흐의 눈앞에
희망은 여전히 손만 뻗으면 잡힐 듯 어른거렸다.
그의 그림 속 노랗게 불타는 해바라기는
생에 대한 그의 애착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끊임없이 해를 쫓아 온몸을 비틀어대는 해바라기는,
자신의 어두운 생애를 환히 밝혀줄 단 하나의 해를 찾아
평생을 몸부림쳤던 한 남자의 얼굴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