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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Oct 10. 2020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닐지언정

충분히 달콤하다, 허니버터 갈릭 새우

-그래. 다음 달에 결혼한다니까. 이미 눈치는 챘지만, 회사에서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회사를 옮긴 뒤 가까웠던 사수 경이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옆 팀 동료의 결혼 발표를 전해줬는데, 그 상대가 위층 선배였다.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아래층 후임과 연애를 했었고, 옆 팀 동료는 경이에게 마음이 있었고, 경이는 다른 과장님께 마음을 전한 상태였고…. 경이는 사태를 모두 수습하고 내가 회사를 나간 뒤에야 그간의 얘기를 들려주며 한마디로 정리했다.


-너도 나가길 잘했어. 여긴 완전 정글이야, 정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이었… 잠깐 있어봐. 그 정글에서 나는 왜 모기 한 마리 건드리지 않은 거냐?



 만약 대기업에 입사를 지원했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옥상 때문이었다. 광고를 보면 청춘 남녀가 늦게까지 남아 잔업을 마친 뒤 옥상에 올라와 캔커피를 나누며(크!) 내일을 기약하는 모습. 그게 그렇게 멋져 보였고 도시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옥상을 가진 회사는 대기업일 테니까. 물론 옥상은 냄새로 찌든 흡연 구역이며, 캔커피를 트럭 채로 갖다 바친데도 야근이 싫다는 사실은 입사 1달 만에 파악했다. 사실, 같이 할 친구가 없었다.


 어떤 동기는 항상 무리의 중심에 있는데, 나는 같은 팀 동료하고 3년을 보내고도 데면데면하다. 내 죄도 있음을 인정한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 궁금하거나 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니까. 근무 시간에 바짝 집중해서 야근은 되도록 안 한 것, 그것도 죄라면 인정하겠다. 그러나 왜 누구는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누구는 같이 힘내서 잔업할만한 사람 하나 사귀기도 어려운 거냐?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9월 첫째 주, 친구들을 불렀다.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달고 맵고 짜게, 허니버터 갈릭 새우를 만들 테다.




. 허니버터 갈릭 새우

- 재료: 냉동새우, 버터, 마늘, 올리고당, 카이옌 페퍼(고추), 바게트(선택), 레몬즙, 파슬리

 

1.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를 1 숟갈 넣은 뒤 채 썬 마늘, 고추를 볶는다.


2. 손질한 새우를 팬에 올린 뒤 레몬즙, 올리고당, 소금과 후추로 간 한 뒤 뚜껑을 덮어 익히기


3.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




 어디 가니? 하고 묻는 엄마의 질문에 늘 만나는 상대가 바뀌곤 한다. 이번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도 마찬가지고. 너는 왜 제대로 친구를 안 사귀니, 엄마는 걱정했다. 여기서 제대로 된 친구란 나와 비슷한 사람, 오래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직업, 사는 환경, 성격, 나이, 성별 어느 것 하나 같을 게 없는 오늘의 친구들. 엄마의 걱정처럼 깊은 우정은 나눌 수 없을지 모른다.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성향도 일도 다른데도 저녁식사가 즐거운 이유는 우리가 모두 자유롭고 강인한 멘털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이 언니는 반차 휴가도 반려하는 그야말로 ‘사장님이 미쳤어요’ 회사에 2년째 근무 중이지만 밤에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진이 언니는 코로나 19가 끝나 승무원으로 복직할 때까지 근처 구청에서 아르바이트. 네이선은 평일에는 나이스 투 미츄를 부르다가 내가 죽을 영어 강사이고 주말에는 보드게임을 개발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S. 루이스는 우정이 가장 덜 본능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종종 그 의미를 헷갈리기 쉽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이나 회사 동료처럼 무던히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해서 생기는 동료 의식과는 사뭇 다르다. 어떤 두 사람이 다른 이에게는 없는 공통된 본능이나 관심사, 자기에게만 있는 보물이나 짐이라고 생각했던 취향을 서로 발견할 때 우정은 싹튼다. 루이스에 따르면 우정이란 당신도 같은 진리를 보고 있나요?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회사 동료들과 마음이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일까? 궁금하지 않은 일에 대해 물어보는 것(지난 주말에 뭐하셨어요?)은 아직도 내겐 너무 고역이다. 나는 좋은 동료지만 사귀고 싶은 친구는 아닐지 모른다. 내 삶을 관통하는 주제, ‘너무 진지하지 말자. 꼭 그래야 할 때를 빼고’라는 진리를 같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다지 인기있는 주제는 아닌지라 가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을 줄 때도 많고. 나와 동료는 결국 목적만 공유하는 사귐이 되고 만다.



 어쩌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친구가 될 동료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쓸쓸할 때면 나처럼 진지하지 않지만 튼튼한 영혼을 가진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할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세상과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게 우리 마음에서 밝게 빛날 때, 식탁에 올려둔 캔들이 사르르 무너져 내리며 밝게 타오를 때, 술은 한잔만 해도 좋을 때 삶에서 이보다 좋은 선물을 받을 수는 없을 거야. 더 많은 사람이 더 적은 사람들과 모임을 만든다면 야근을 자처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 그대들, 새로운 사람을 집에 초대하시라. 결혼식에서 나 혼자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준비하시라. 그리고 야근은 되도록 하지 마시라.



At the table

-은(30, 퇴사의 끝엔 파워블로거)

-진(29, 새싹 블로거)

-현(28, 밥은 내가 다했는데)

-훈(25, 밥은 됐고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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