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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Jun 28. 2020

파전이 내리니 비를 먹자

내 부산(釜山)한 부엌

 동갑내기 사수 경이와 회사 휴게실에서 만났다.


경 “어제 만덕동에 아파트를 보러 갔어.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엄마가 본가에서 넘어와 봐주셔야 할 테니까.”

나 “어우~ 재밌었겠다. 난 어제 친구들 집에 불렀어. 비가 오니 식용유 지글지글 둘러서 파전이 먹고 싶잖아.”

경 “정말? 맛있었겠다~. 그런데 대단지 아파트 되게 비싸더라. 남자 친구랑 둘이 모은 돈 합치고 신혼부부 대출 껴도 부모님이 약간 도와주셔야 되더라고.”

나 “어휴. 어쩔 수 없지. 참 너 복순도가 막걸리 먹어봤어? 울산에서 누가 가져왔는데 꼭 맛봐. 되게 깔끔해.”


 옆에서 듣고 있던 이대리가 끼어들었다. “너네 서로 무슨 말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감사하게도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십 대 초중반까지는 ‘저도 요리 좋아하는데’ 라거나 ‘스타일이 좋은 것 같아요’ 따위로 호감을 드러내던 남자들이 어느 순간 다른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사실 서울에 집이 한채 있어요’, ‘서면에 브랜드 아파트를 한 채 살 예정이에요’ 라면서.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들으면 AI 스피커 빅스비처럼 아 그러세요? 대. 다. 나. 다…. 했을 텐데. 그러나 선배와 동기들이 부산 아파트 가격이니, 부동산은 학군과 세대수가 중요하다느니 열띤 토론을 듣다 보면 귀가 있는 이상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집에 관심을 갖는 일은 고구마 줄기를 캐듯 집 값에서 차 값으로, 적금 이율로, 주식 투자 성공담으로, 결혼으로, 소개팅으로, 상대편 남자의 직업에 대한 흥미로 줄줄이 이어졌다. 나에게 집은 친구를 불러다 놀고, 요리하고, 글을 쓰는 작업실이면 충분했는데. 어느 순간 학군이 빼어난 2천 세대 이상 브랜드 아파트, 전세를 낀 갭 투자의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부전~마산 복선전철이 생긴다고? 우리 집 값이 오르겠군. 임대 아파트는 애들이 커서 놀림당한다고? 그럼 중소 브랜드는 안되지. 집은 남자가 가구는 여자가? 남자 쪽 집안만 갖춰주면… 무한 루프.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은 파전이 내리니 비가 왔다. 잘못 쓴 거 아니다. 정말 파전이 먹고 싶었던 차에 주말에 비가 온다 했다. 고구마 생김새만큼이나 발랄하고 세상사에 무관심한 친구 다섯 명을 부를 수밖에.



오코노미야끼인지 파전인지 모를 아무튼 맛있는 부침개

. 양배추 1/2통, 양파 1/2개, 쪽파 5대, 달걀 2개, 물 3큰술, 간장 1큰술, 후추, 부침가루 4/5컵

1. 양배추와 양파는 채 썰고, 쪽파도 잘게 썰기

2. 달걀을 깨어 섞고, 물, 간장, 후추, 를 잘 섞은 뒤 부침가루로 반죽 하기

3. 야채와 베이컨을 넣을 뒤 달군 식용유에 반죽 얹어 부치기

4. 돈가스 소스, 마요네즈, 가쓰오부시를 한 줌 얹어 완성


Tip. 베이컨 대신 해물, 닭가슴살을 넣어도 좋은데 맛은 보장 못해



- 야. 이건 파전이 아니라 그냥 ‘파’잖아. 반죽도 거의 없고. 베이컨 하고 닭가슴살은 왜 넣는 건데?

보통 뒷감당을 도맡는 현이가 내 반죽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


- 그러게. 비가 조금만 오니까, 오꼬노미야끼처럼 해 먹으려고.

- 그게 뭔데?

- ….


그러게. 왜 레시피처럼 안 되는 걸까. 왜 먹어본 적도 없는 오꼬노미야끼를 만들겠다고 설치는 걸까. 차라리 고구마를 넣겠다고 할 걸. 가만 보면 사는 일도 비슷해서 계획대로 된 바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시내에서 한 시간 떨어진 산업단지에서 근무를 하지 않나, 현이는 코로나 19 사태에 취업을 준비하고, 요리사로 일하던 진이는 일을 그만두고, 영어유치원에 근무하는 림이는 세 살짜리 애들을 데리고 화상 강의를 하고(자동으로 학부모 참관수업이 되었다고). 입사 2년 차 한이는 명품 운동화를 모으고. 그야말로 정착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구마들이었다.


그렇게 쥐는 거 아니래도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말했다. ‘반대편에서 요란한 외침이 들리더라도 온화하고도 단호하게 자발적 신념과 직관을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은 어떤 낯선 이 가 다가와 따져 물을 것이다. 그대는 항상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왔는가?’


 부동산 투자는 주식과 비슷해서 ‘못 벌면 손해’라고들 하며 있지도 않았던 돈까지 손실로 따진다. 부동산 114에서 수시로 매매가를 확인하고, 주식 차트를 훑고, 채용공고를 뒤적이는 일을 반복한다. 그것은 일종의 중독 현상으로 내가 사회 혹은 자신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을 때 나타난다. 한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소통의 단절을 회복하려는 셈. 그러나 살아본 적도 없는 그 집이 친구나 스스로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종종 까먹는 듯하다. 문득 낯선   찾아와 따져 물을 , 번개처럼 스치는 영감을 발견하고 관찰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초라해져서야.


 물론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은 아니다. (혹시라도 먼 훗날 전셋집을 전전하게 된 독자가 짱돌을 들고 찾아올까 두렵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지금 창 밖으로 차들이 비에 젖은 도로를 훑으며 지나가는 소리, 광대뼈가 얼얼하도록 웃긴 농담, 마무리로 끓인 한우 채끝 짜파구리에 감사한다면. 그리고 최소 6개월 앞의 일에 마음을 쏟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삶이 레시피대로, 정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온화하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집에 놀러 온 고구마들이 언젠가 집을 갖는다면 그게 2천 세대, 역세권, 시내 중심가가 아니어도 지금처럼 요리를 싸들고 놀러 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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