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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Aug 27. 2022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제주도 금능해수욕장 스노클링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1.

 땀으로 겨드랑이가 얼룩지는 게 느껴졌지만 차량 상태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1년을 갓 넘겨 초보운전 딱지를 겨우 뗀 참이니 렌터카를 빌리는 일이 비행기 이륙보다 더 걱정이었다. 내가 빌린 차는 스파크 2021년형 모델로 후방카메라가 없어서인지 뒷 범퍼에 찍힌 자국 몇 개 말고는 멀끔했다. 친구 윤호의 초대로 3년 만에 찾는 제주였다. 그는 내가 오픈워터 수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스노클링을 몇 번 권했다. 바다 밑은 깜깜하던데? 나는 시큰둥했다.


 여기는 머리만 박아도 물고기가 보여. 나를 꼬드기는 윤호는 제주 생활 6년 차에 접어든 회사원이자 다이버. 나도 물고기가 보고 싶기는 했다. 거제도에서 몇 번 물아래로 헤엄쳐 회색 물고기(송사리, 노래미)를 실컷 본 참이었다. 면허가 있는 나를 꼬드겨 여기저기 놀러 다닐 심산인 듯했다. 그렇다면야, 넘어가 줘야지.


 제주도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지질공원이다. 용암이 흘러나와 바닷물을 만나 굳으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까만 바위가 해안을 이루었다. 따끔따끔한 돌부리에 몇 차례나 긁히면서도 친구와 나는 더 깊은 물을 찾아 헤엄쳤다. 몇 만 년 전 용암으로 만들어진 바위일 텐데 어쩐지 아직도 뜨끈했다.


 까슬한 화강암 양식장을 가로지르며 지난주의 일이 떠올랐다. 과분한 상대와 소개팅을 했던 일이. 상냥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분은 세상만사가 평탄한 일처럼 보였다. 반면 나는 전날까지도 울고, 수영하고, 돌아와 죽은 듯 잠을 자는 일상의 연속이었고. 그 사람은 다정하고도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바다수영이요? … 왜요?’


 피츠제럴드가 쓴 「헤엄치는 사람들」의 구절이 떠올랐다. “바다에 들어가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사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그 사람도 어떤 대답을 바라고 물은 말은 아니겠지.




2.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마리아나 해구로 수심 11km로 관측된다. 하지만 정작 90%의 해양 생물은 연안 바다에 서식한다. 이유는 햇빛 때문이다. 햇빛이 광합성을 일으켜 플랑크톤과 산호가 생기면서 먹이사슬이 시작된다. 마리아나 해저를 관찰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해저 8km까지 실험카메라를 내려보내니 압력이 지상의 8배에 달했다. 도대체 어떤 강철 같은 생물이 여기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지? 하지만 심해 생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빛을 뿜거나 거대한 눈으로 시야를 확보해 살아가고 있었다.


 내게는 지금 머리를 박고 있는 이곳, 금능 해안의 생태계 만으로도 벅찼다. 노랑과 검정이 섞인 작은 범돔, 크거나 작은 게,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쥐치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가 나를 피해 달아났다. 시큰둥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몇 시간째 물 밑 아쿠아리움을 관찰하고 있었다. 깊이 잠수하면 게나 소라가 바닥 구멍 속으로 꽁무니를 감췄다.


 윤호와 나는 이틀  제대로  점심을 먹지 않았다. 나는 원래 밥 챙겨먹는 재주가 없고, 윤호는 맛있는 커피만 있으면 그만인 소식가였으므로(하지만 커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몇십 분이고 운전해서 제대로  집을 찾아야 했다). 바다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먹은 현무암 샌드만 기억난다. 먹물로 만든 모닝빵 사이 계란 샐러드가 두툼해 수영  요깃거리로 그만이었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친구는  한잔의 커피를 떠올리며 정처 없이 바닷길을 달릴 때였다. 내가 길가 어디쯤 속도를 낮추고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서 수영할까?’ 두루미가 물가에 비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즈넉한 웅덩이였다. ‘안돼.’ 윤호는 단호했다.


 ‘두루미가 있는 걸 보니 뭔가 주워 먹을 게 있는 모양이야. 저기 바위틈에서 물 솟아나는 거 보여? 근처 양어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일걸.’


 과연 길 맞은편을 돌아보니 금속 구조물로 이루어진 오래된 양식장이 있었다.


가자. 출발을 지시하는 친구가 그 어느 때보다 멋있었다. 화가 세라 루커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행복은 그냥 왔다 가버리는 거예요. 반면 나는 어딘가 신비로운 곳을 향하고 싶은데 아직 나만을 위한 그런 마법의 공간을 완전히는 창조하지 못했죠.’ 윤호와 나의 신비로운 공간을 좇아, 나는 피로하고도 활기찬 몸짓으로 핸들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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