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라해수욕장, 수영대회부터 해루질까지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참입니까?”
“오빠와 함께 안티브로 갈 거예요. 거기는 10월 내내 수영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다음 플로리다로 가요.”
“그리고 수영을 하나요?” 가볍게 놀리듯이 그가 물었다.
“그래요. 수영을 해요.”
“왜 수영을 합니까?”
“더러움을 지우기 위해서요.” 아가씨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무슨 더러움이요?”
아가씨는 이마를 찌푸렸다. “왜 그런 말을 했지? 하지만, 바다에 들어가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 F. 스콧 피츠제럴드, 「헤엄치는 사람들」
주최 측에 전화를 걸어 따져봤지만 규정상 생일로 나이를 나눌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왔다. 지난주 제현의 권유로 거제시 구조라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장거리 핀 수영대회 참가 신청을 할 때 일이었다. 나는 생일까지 한참 남은 엄연한 29세인데 1992년생부터 30 대부로 참가해야 한다는 안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듣던 제현은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겠지만 내 이름이 30대 일반 2부로 분류된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저항해봤자 나는 곧 그 이름도 지루한 ‘삼십 대 일반부’로 접어들 테지.
“좋게 생각해요. 저는 스무 살 체대생 하고 겨뤄야 한다고요. 언니는 삼십 대 중 제일 어리니까 유리할 거예요.”
제현이 맥락은 맞지 않지만 넉살 좋은 위로를 건넸다. 수화기를 붙잡고 한참 입씨름을 하고 보니 내가 아직 이십 대를 보내줄 준비가 안된 모양이었다. 나는 쥐어뜯어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맞아, 난 삼십 대 중 최연소인걸.
그다음 주 대회에서 나는 13명 중 뒤에서 두 번째로 들어왔다. 물론 제현은 3등 동메달을 땄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매주 쉬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오픈워터 수영은 나를 너무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어서 주말이면 시달렸을 잡생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혼자 있고 싶었지만 결국 친구도 생겼다. 새 바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뭍에서는 인연이 없었을 어딘가 특이한 인물들이었다. 사무실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와 개성을 가진 인물이었고 물론 모두 사무직이었다(달리 무슨 밥벌이가 있겠어?)
우리의 대장 격인 언니야는 제조사 회계팀 과장인데, 이름도 못 들어본 경상남도 바닷가 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중학생 때까지도 발가벗고 바다로 나가 놀다가 취직을 하기 위해 부산으로 왔다고 했다.
언니가 어릴 적 얘기를 해줬을 때 우리는 구조라해수욕장부터 윤돌섬까지 헤엄쳐서 돌던 중이었다. 윤돌섬은 구조라해수욕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3천 평 남짓한 무인도다. 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상록수림으로 구실잣밤나무, 호두나무, 후박나무가 사시사철 섬을 푸르게 밝히고 있다. 섬 근처는 홍합이니 소라고둥이니 해루질 거리가 많다며 삼촌이 갑자기 나와 제현을 불러 세웠다.
“숨을 한번 참고 몸을 기역자로 꺾어서 고개를 배꼽으로 당기는 거야.”
“네? 갑자기 왜요?”
“고개가 배꼽까지 내려간 다음은 숨을 코로 뱉어서 끝까지 내려가고.”
갑작스러운 강습에 어리둥절한 나와 달리, 제현이 바로 말을 알아들었다. 주저 없이 물 밑으로 고개를 박더니 이내 엉덩이가 떠올랐다 다리까지 직선으로 펼친 채 물 밑으로 꽂혔다. 바닥까지 잠수해야 조개를 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뒤따라 잠수 태세를 갖추는데 언니야가 멀리서 소리쳤다. ‘우아해야 돼. 엉덩이만 떠올라도 안되고 우아한 인어공주처럼 직선으로 내려가야 돼.’
고둥 하나를 캐더라도 공주처럼. 나도 초짜 공주가 되어 우스꽝스러운 몇 번의 시도 끝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수면을 뚫고 나오면 섬 위 울창한 숲 너머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윤 나는 돌, 그 이름처럼 섬 전체가 빛이 났다.
같이 수영을 갔던 삼촌이 끊어진 어망을 발견해 끌어올렸다. 언니는 그런 걸 왜 주워 오냐며 질색을 하더니 어망에 갇혀있던 노래미, 손바닥만 한 게, 크기는 작지만 통통한 장어를 보고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딱 매운탕 한 상차림이네!’ 노래미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팔딱거렸다. 나는 이미 두 시간이 넘는 섬 탐험 코스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는데 언니는 묵직한 어망을 끌고도 헤엄쳤다.
“너희 10월까지 연습해서 울릉도로 가자. 거기는 더 깊은 동굴도 갈 수 있고 높은 바위 절벽도 볼 수 있거든.”
“동굴이요? 동굴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언니는 고기가 빠져나가지 않는지 보느라 바빴다. “뭐 없어. 가서 라면 먹고 쉬다 오는 거야.”
10월이면 곧 내 생일인데. 울릉도까지 가서 3㎞를 헤엄치려고?
그때 물속 노래미처럼 한 가지 소망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언니. 그럼 거기서 생일 파티해주세요.”
“?”
네. 거기서 다시 태어나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