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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Feb 17. 2023

투명인간 라이언

It means a lot to him

지난 2019년 4월의 어느 날. 카페테리아 점심 지도 담당 신 선생은 이날도 역시 넘치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미쳐버린 망아지 같은 틴에이져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며 아까운 중년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아놔, 밥 먹을 때 식판 꼭 쓰라 그랬지!”

“교복 셔츠 다 삐져나왔다! 얼른 고쳐 입고!”

“야야, 너희들 지금 너무 시끄러운 거 알지? 소리 좀 낮추고 얘기해.”

“아니 누가 이렇게 음식을 다 질질 흘려놓고 그냥 갔어? 브랜든이 그랬어? 얼른 가서 잡아와!”


이렇게 정신없는 도깨비 시장 같은 곳에서, 아무 소리도 안나는 빛바랜 흑백 무성영화처럼 테이블 구석에 홀로 고개 숙이고 밥을 먹고 있는 녀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조용하고 존재감이 극한값 제로에 수렴하는 11학년 라이언(가명)이었습니다. 시끄럽고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녀석들은 차라리 눈에 쉽게 뜨이기라도 하겠죠. 하지만 라이언 같은 아이들은 일 년이 다 지나도 마치 투명인간 처럼, 어떤 아이인지 전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공부라도 못하면 그 핑계로 붙잡아 놓고 말이라도 붙여보는데,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뭐 그럭저럭 공부도 적당히 하는 편이라 딱히 문제 삼을 것도 없는 그런 녀석이었죠.


“헤이 라이언!”

“하이 미스터 신…”

“봄방학은 어땠니?”

“굿...”

“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왔어?”

“타이완...”

“너, 타이완 출신이니?”

“우리 엄마아빠가요… 전 여기서 태어났고요.”

“타이완에 아직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나 보구나?”

“네..”

(이 녀석,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네. 말 시켜서 귀찮은가?)

“참, 타이완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며?”

“아, 네.. 뭐 그냥...”

“내 고향 한국에는 가끔 타이완 푸드나 디저트들이 수입되는데 완전 엄청 인기라더라.”

“아, 네...”

(이 녀석이 진짜! 이제 더 할 말도 없는데…)

“그럼 너 혹시 밴쿠버에서 괜찮은 중국 음식점 아는데 좀 있니?”

“밴쿠버 안에서만요?”

“아니 뭐 리치몬드나 버나비도 괜찮고..”

“쏘리... 아이 돈 노…”

“그래 괜찮아. 그럼 또 보자.”


그다음 날 밤 도착한 한통의 이메일. 라이언의 아버지였습니다.

“Dear 미스터 신, 라이언을 통해 선생님이 중국 음식점을 찾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곳들을 뽑아서 리스트를 만들어 봤는데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세상에… 이 아버지… 스크린 가득 레스토랑 리스트를 뽑아서, 웹사이트와 구글맵 링크까지 다 첨부해서 보내셨더군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고마운 마음에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Dear 미스터 챈,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추천해 주신 음식점들은 조만간 꼭 한번 가서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뭐 제가 중국음식점을 찾고 있었던 건 맞지만, 그보다는 그냥 라이언한테 말을 한번 붙여보고 싶어서 나온 얘기입니다. 평소 혼자 있는 모습을 본적이 많은 것 같아서요... 중략… 어쨌든 감사하고 혹시 제가 라이언을 위해서 할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좀 있다 도착한 라이언 아버지의 답장.

“알고 있습니다, 미스터 신. 맞아요, 우리 라이언은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고 늘 혼자 지내는 아이입니다. 그동안 전문가 상담도 받아보고 좋아지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학교생활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라이언에게 관심 보여주시고 말도 붙여주시고 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이언이 집에 와서 정말 좋아했어요. It means a lot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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