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세계는 항복하라
뿌리는 땅 속에 있다 보니 우리 시야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햇빛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중요한 건 균형의 문제이다. 햇빛 세계의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해져서, 뿌리 세계의 영역마저 침범하고 있다. 하지만 뿌리가 햇살에 노출된다면 얼마 못 가 타버릴 뿐이다. 반대로 잎새가 흙 속에 파묻힌다면 조만간 썩어 없어질 것이다. 뿌리에게는 뿌리의 자리가, 잎새에게는 잎새의 자리가 알맞다.
세상에는 로켓을 우주로 날려보내는 일처럼 최고의 효율, 높은 정확성, 완벽한 예측을 추구해야 하는 분야도 많다. 특히 직업적, 전문적 분야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삶이 그러할 수는 없다. 특히 약하고 불완전한 영유아기, 노년기, 아기를 낳고 기르는 시기에는 함부로 최상의 성과를 계량하는 것도, 최적 지향의 단일 방안을 도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때로는 그러한 시도가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다. 애 낳고 기르는 일에는 채점관도 없고 등수도 없다. 불확실성 속에서 악결과를 최대한 피하고, 뿌리 세계 특유의 역동적인 속성을 유연하게 포용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무사히 성장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어느 새 어른이 되어서 햇빛 세계의 아름다움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햇빛 공세의 증거 중 하나는 제왕절개 비율이다. 최근 우리 나라의 제왕절개 출산율이 2/3에 육박할 만큼 엄청나게 증가했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왕절개 수술은 꼭 필요한 산모에게만 권고하는 것이 교과서적 접근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제왕절개술 비율은 WHO(세계보건기구) 권고 기준인 15%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며, 세계에서 2번째로 높다. 물론 그 원인은 다양하다. 임산부의 연령이 급격히 높아져서 제왕절개 수술이 필요한 고위험 산모가 많아진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더불어 보조생식술이 증가하며 다태임신(쌍둥이 등)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제왕절개술 증가의 원인은 불확실성 기피이다.
요즘 산모들이 하도 나약해서, 모성애가 없어서, 그저 산통이 싫어서 필요도 없는 제왕절개술을 요청한다고 간편히 넘겨짚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통주사가 등장하면서, 질식 분만과 제왕절개술 양쪽에서 고통의 총량은 별 차이가 없다. (물론 둘 다 고생스러운 일이니, 쓸데없이 제왕절개 산모를 폄하하거나 질식 분만에 지나친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 예비 엄마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통증을 피하겠다고 제왕절개술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질식 분만 특유의 높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제왕절개술은 상대적으로 햇빛 세계에 가깝다. 날짜를 지정할 수 있고, 소요 시간을 비롯하여 많은 변수를 비교적 통제할 수 있다. 마취를 하고, 의사가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면, 아기는 틀림없이 태어난다. 물론 여기에도 돌발 상황이 끼어들 여지는 있지만, 대체로 전문가가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 질식 분만은 그와 반대이다. 개인에 따른 편차가 크고, 경과를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가 알아서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주는 수술과 달리, 질식 분만은 산모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데 이 점도 크게 가변적인 요소이다. 때로는 실패해서 도중에 제왕절개술로 전환되는 것도 분만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통증을 떠나서, 이 애매함 자체를 대단히 괴로운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어남을 체감하고 있다.
산모가 원해서 제왕절개술을 선택하는 것은 조금도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재생산 여정의가장 중요한 분기점에서, 단지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우리의 결정을 치우치게 만든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햇빛 세계가 우리 정신세계의 상당 부분을 틀어쥐고 있다는 방증이다. 평이하고 일상적인 과제까지 전문가에게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아기의 성장 지표에 일희일비하며 경쟁하거나, 아주 작은 요소까지 부모가 사사건건 관리하는 육아 경향도 햇빛 세계의 그림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