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보다 히말라야
나는 대학 생활을 제법 오래 했다. 08년에 입학해서 17년에 졸업을 했으니 9년을 대학생 신분으로 보냈다. 졸업 유예를 하고 1년을 취업을 준비하며 보냈는데 생각만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 사이 내 선배들, 친구들, 이젠 후배들까지 하나둘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마이너스 통장을 뚫거나 마마론, 파파론을 땡겨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어차피 개처럼 일할 텐데, 지금 아니면 길게 다녀올 수도 없을 텐데, 월급 받으면 금방 갚을 텐데라며.
지금 생각하면 1년 넘게 준비했는데도 취업은 고사하고 최종 면접 근처에도 못 갔던 내가,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참 건방진 소리였지만, 당시의 나는 근자감에 취해 있었다. 당장은 못했지만, 나도 곧 취업을 할 거고, 취업이 되면 지금 아니면 길게 다녀올 수도 없을 테고, 나중엔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던 선배들의 조언을 핑계 삼아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번에는 유럽도, 미국도, 네팔도 아닌 몽골이었다.
하고 많은 여행지 중에 왜 하필 몽골이었을까. 당시 취업 스터디를 같이 하던 B의 경마 에피소드의 영향이 가장 컸다. B는 경마를 배우고 싶어 경마장에서 말똥을 치워가며 알바를 했다고 했다. 남자들도 흔치 않은 경험인데 여자분이 소위 말하는 3D 일을 몇 개월씩 했다는데 일단 놀랐고, 평범하지 않은 취미 생활에 도전하는 행동력에 두 번 놀랐다. 몇 달을 서로 모의 면접을 보고, 자기소개서 첨삭을 하다 보니 B의 경마 이야기는 외울 정도가 되었고, 나도 모르게 다시 말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승마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지만, 아주 어릴 적에 제주도에서 즐겼던 승마 체험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나 스노보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속도감과 말이라는 동물과 함께하는 교감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안타깝게도 두 번 다시 승마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점 몸무게가 불어난 끝에 0.1톤을 넘나드는 내 거구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승마는 인연이 아니라고 접어두고 있다가 몇 달 내내 승마 아르바이트 얘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말을 타고 달리는 꿈을 꿀 정도로 승마 생각이 샘솟았다. 상반기 취업 시장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었고, 멘탈 관리라는 좋은 핑계로 여행 한 번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타이밍이 딱 맞았던 것이다. 원 없이 버킷리스트였던 승마도 즐기고, 여행하면서 머리도 식히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지르고 봤다.
여행사에 몇 번이고 문의한 끝에 곰 같은 덩치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고 계약금을 이체했다. 몽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나이망 호수에서 진행되는 승마 트래킹 패키지였다. 드디어 원 없이 말을 탈 수 있겠구나.
설렌 마음을 안고 울란바토르에 내린 우리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승마 가이드가 되어줄 유목민 아저씨를 찾아 계곡으로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왜 나이망 호수를 ‘몽골의 알프스’라고 불렀는지.
몽골에서의 ‘승마 패키지’라고 한다면 누구나 몽골의 푸른 대초원에서 시원하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호수에서의 승마 트래킹이라고 하면 대초원은 아니더라도 한적한 호숫가에서의 말을 타고 하는 이색적인 산책 정도를 상상할 것이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초원을 지나, 우거진 숲을 지나, 뾰족한 암벽 투성이의 절벽을 지나, 말을 도저히 탈 수 없어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가야 하는 가파른 언덕을 지난 끝에 나이망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몽골의 알프스라고 불렀구나...
길도 험했지만, 문제는 비였다. 건조하기로 유명한 몽골이지만, 하필 우리가 여행하던 시기에 비가 계속 내렸다. 급기야는 길 곳곳에 웅덩이가 생겼고, 결국 일행 중 한 분은 웅덩이에 빠진 말이 놀라 날뛰는 바람에 낙마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천만다행으로 뾰족한 바위에 머리를 부딪힌다거나 어디를 찔리지는 않았으나, 말에서 내려 부축을 받으며 걸어야 했다.
이정표도 없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바위투성이의 길, 평소 걷던 내 두 발이 아니라 말에 의지해서 걷는 길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힘들었다. 게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게르도 아니라 정말 텐트를 치고 생노숙을 했으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대신 힘들었던 만큼 눈앞에 펼쳐진 나이망 호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국의 충주호니 소양호니 하는 호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컸고,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덮여있는 호수 너머의 산꼭대기는 북유럽의 빙하를 보는 듯했다.
텐트 치고 노숙해야 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트래킹 코스로 도전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 산을 지나긴 했지만, 솔직히 익숙하지 않은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해서 힘들었지, 혼자 걷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험한 코스도 아니었다. 오히려 트래킹 코스가 너무 밋밋해도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차라리 어느 정도는 굴곡이 있는 코스가 좋다고 생각한다.
트래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나 저러나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고, 아버지이기 이전에 나에게 등산과 트래킹의 매력을 알려주신 분이기도 했다. 걷기 좋은 코스를 발견할 때면 아버지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몽골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취준생이 어딜 싸돌아다니냐며 못마땅해하셨지만, 분명히 이 트래킹 코스는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거의 매일 남산을 한 바퀴씩 돌고 오 실만큼 아버지는 걷는 걸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여태 효도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비루한 취업준비생 백수 나부랭이였지만. 계산을 해보니 때마침 아버지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께선 1960년생이시니 앞으로 3년 후이면 환갑이셨다.(2017년 기준) 그 안에는 취업에 성공할테고, 여행을 모시고 갈 돈 정도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몽골 같은 곳은 더 늦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