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말하우트 Nov 15. 2019

별 쟁이 러너 4개월 입문기

시작부터 10km 대회까지..

다이어트 결심

7월 어느 날. 문득 사랑니를 뽑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스케일링을 받으며 사랑니가 썩고 있단 이야기를 들었다. 뽑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내 치아는 어릴 때부터 그 소위 지랄 맞은 형태로 나서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는데 그나마 사랑니 하나만큼은 눕지도 않고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 사랑니가 썩고 있었다. 고통을 주지도 않은 채… 


그때였다. 사랑니를 뽑으면서 겸사겸사 다시 미뤄왔던 다이어트를 시작하자고 결심을 한 게.. 사랑니를 뽑아 아픈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뽑기 일주일 전부터 금주를 했다. 병원에서 시킨 대로 소염제도 미리 복용했다. 절차대로 유일하게 내 입에서 제일 멀쩡했던 사랑니를 뽑고 약간의 아픈 기간을 거쳐 상처가 아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니를 뽑는 이벤트를 다이어트의 시작점으로 삼은 이유는 먹는 것 때문이었다. 금주로 치면 1주 넘게.. 식이로 치면 사랑니를 뽑고 나서 며칠 사이 틈을 타서 꾸준히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남들처럼 하루 식단을 딱딱 짜 맞춰서 먹는 건 성격상 못해먹지만 나름대로의 룰은 정했다. 

아침 점심 저녁은 어떤 형태로든 챙겨 먹기.

유행하는 LCHF(저탄 고지) 나 원푸드 다이어트 등은 지양하기. 

퇴근 이후에는 웬만하면 칼로리가 있는 음식은 먹지 않기.


이렇게 소담이와 퇴근하면 소담이 씻기고 헬스장을 가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웨이트를 하고 트레드밀을 뛰거나 걸었다. 


그러다 문득 내 발을 보고 ‘본투런’ 이란 책이 생각났다. 왜 하필 발이냐면 나는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딱 두 가지 신발을 신는다. 역도화라 부르는 스쾃 할 때 신는 ‘웨이트화’ 그리고 그 나머지 상황에 신는 ‘비브람 파이브핑거스’ 일명 발가락 신발이다. 운동화의 쿠션이 현대인의 발을 잘못 길들였고 다시 맨발로 돌아가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얼핏 들으며 떠올렸던 책이 ‘본투런’이었다. 


내가 러닝 및 오름 트래킹 때 신는 '비브람 파이프핑거스' 헬스장에서 신는 신발도 이거랑 비슷한 신발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조차 다람쥐가 스스로 돌리는데 난 전기모터가 돌려주는 쳇바퀴에 다리를 맞추고 뛰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트레드밀에서 러닝 하는 것도 사람의 하체에 썩 긍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였다. 


그럼 나가서 뛰어보자. 마침 해가 길 때라 예전 동네 오름을 다니던 길을 위주로 뛰어봤다. 트레드밀 위에서 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고 힘들면 기계에게 허락을 구하고(트레드밀 조작) 페이스 다운을 해야 하지만 로드웍에서는 내가 그냥 다리를 천천히 구르면 되었다. 좋은 페이스는 아니었지만 한 바퀴 돌고 나니 성취감도 생겼다. ‘뛸만한데?’


중간에 러닝을 일시 정지해야 하는 상황. 예를 들면 횡단보도 등의 장애물이 없는 러닝 코스를 찾아봤다. 운동장 트랙도 있었지만 400미터 트랙을 빙글빙글 도는 건 왠지 재미없어 보였다. 차를 몰고 10분쯤 나가면 해안도로가 있는데 해변을 끼고 달리면 중간에 달리기를 멈춰야 하는 요소가 없다. ‘당첨’ 


운동 스케줄을 다시 잡았다. 월/수/금 은 내 돈 낸 헬스장을 가서 웨이트를 하고 화/목/토/일 은 야외에서 러닝을 하기로 했다. 절대적인 스케줄은 아니고 만약 헬스장을 가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그냥 그날도 나가서 뛰기로 했다. 우선 4 - 5 키로 남짓 코스를 뛰었다. 핸드폰에 런타스틱을 실행하고 손목에는 애플 워치로 기록을 했다. 런타스틱이 좋은 점은 이어폰을 끼면 매 1km 스플릿마다 음성으로 안내해준다. 이 당시 평균 페이스는 7:10/km 였다. 


4.8km 7:17/km

지금 보면 걷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중간 어딘가의 페이스이지만 이때 헉헉대면서 출발점으로 들어와서 미리 준비한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짜릿함으로 달렸다. 그렇게 나는 소위 도착해서 마시는 물의 ‘물뽕’(GHB 아니다)에 취해 러닝을 시작하고 있었다. 

relive 란 앱으로 뛴 경로를 이렇게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페이스에 욕심을 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페이스가 안정화되면 점진적으로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는 식으로 뛰었다. 페이스가 6분대에서 일정하게 유지가 되면 1km씩 늘려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5km로 시작한 거리가 6km가 되고 7km가 되고 8km가 되었다. 1km씩 늘리는 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왕복을 해야 하는 코스라 지금 가는 길에서 500m만 더 뛰면 왕복 1km가 되는 셈이었다. 여러 번 달리다 보니 각 포인트가 몇 km 지점 인지도 감이 생겼다.


하지만 의외의 장벽이 생겼다. 결과적으로는 500m 정도쯤 더 앞으로 가면 되는 것인데 평소 달리는 일에 자신이 없는 내겐 그 500m 앞을 더 가는 것이 도전을 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여기를 넘어가면 평소보다 더 뛰는 건데.. 그러면 이 거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더 뛰어도 무리가 없을까?’ 하는 장벽이 생기려 하는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내가 sns에 기록하는 내용을 본 모양이다. 앞으로 있을 두 번의 마라톤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본인은 각각 5km 10km 신청을 했단다. 이때 평균 8km를 뛰고 있을 때였다.


‘ 5km는 가능한데 10km라..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답은 피하고 일단 내친김에 10km를 달려봤다. ‘힘들면 걷지 뭐’ 하는 생각으로 10km를 달려봤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8km 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10km로 늘리면서 언덕길이 추가되긴 했다..) 가까운 시일 내의 마라톤은 패스하고 11월에 있는 마라톤에 10km 등록을 했다. 그렇게 첫 단축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7월부터 11월까지 단 4개월 내에 일어났다. 7월 말 실내 트레드밀이 아닌 야외에서 4.8km를 35분 정도에 평균 페이스 7’ 18”/km 평균 케이던스 161 spm로 달렸다. 4개월이 채 안 되는 11월 초 마라톤 대회 기록은 10km를 54분 정도에 평균 페이스 5’ 29”/km 평균 케이던스 179 spm으로 달렸다. 


마라톤 대회 때의 기록. 코스 고저차가 크지 않은 덕분에 기록이 잘 나왔다.


4개월이나 달렸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7월 때의 몸무게와 지금의 몸무게를 비교하면 12 - 13kg가량 차이가 난다. 그간 숱하게 다이어트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국 지속되진 못했다. 남들처럼 원푸드 다이어트 이런 건 시도를 안 해봤지만 살을 빼는 데는 운동보다 식이가 중요하단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식이와 웨이트 유산소 운동 삼박자가 맞아 들어가니 살이 제법 잘 빠졌다. 앞으로도 뺀 만큼을 더 빼야 건강체중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체중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최저 몸무게다. 군대 전역할 무렵의 체중인 셈이다.


평소 건강 지표 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이 혈압이었는데 (콜레스테롤 등의 지표는 피검사를 해야만 알 수 있으니..) 근래 들어 혈압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약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진료 가면 (긴장감이 더해져서) 평소보다 혈압이 높게 나오곤 했는데 지난 진료 때는 시작부터 정상치를 보여주었다. 문진도 간단히 끝냈고 다음 달 초에는 지난 진료 때 한 피검사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달리기의 긍정적인 면은 이런 신체적인 건강도 있지만 정신적인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 같다. 아무리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상하게도 10km를 달리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달리면서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되지만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에 도착하면 오늘도 뛰었다는 성취감 하나만 남는다. 아마도 이건 ‘러너스 하이’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싶다.


‘10km를 안 쉬고 어떻게 계속 뛰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젠 ‘달릴 수 있어’로 바뀌었다. 친구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단축마라톤 대회 기록이 생긴 지금은 봄 전까진 현재 컨디션을 유지하고 날이 풀려가면 다시 거리를 차츰 늘려 가을까지 21km를 달릴 수 있게 되면 내년 이맘때쯤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려 한다.


유산소 운동이라면 걷기 말고는 몰랐던 심지어는 숨찬 걸 싫어했던 나는 이 4개월의 터닝포인트를 기점으로 취미에 ‘러닝’이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더 넣게 되었다. 러닝이란 운동은 다른 장비가 필요 없는 게 강점이다. 러닝화 (심지어 나는 쿠션이 없는 신발을 신고 뛴다!) 그리고 적당한 옷만 있으면 언제 어디든 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제주의 은하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