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불부(流水不腐)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아니한다.’라는 뜻이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는다. 썩지 않으려면 비워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다.
농구 공격 전술도 유수불부와 비슷하다. 선수들이 물 흐르듯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고여 있는 물처럼 썩게 된다. 이를 농구 용어로 ‘오프 더 볼(off the ball)’이라 한다. 오프 더 볼은 자신 또는 마크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즉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선수를 지도하다 보면 농구를 서서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여기서 서서 농구를 한다는 거는 볼을 잡을 때 움직여서 잡지 않고 제자리에서 볼을 잡는다는 이야기다.) 비장애인 농구뿐만 아니라 휠체어 농구도 마찬가지 서서 농구를 하면 안 된다. 5명이 물 흐르듯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슛 찬스가 생긴다. 농구 코트의 규격은 엔드라인 15미터 사이드라인 28미터다. 코트가 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농구선수 10명이 코트에서 플레이를 하면 굉장히 좁다. 특히 휠체어 농구는 휠체어를 타고 플레이를 하기에 코트는 더 좁다. 코트를 넓게 사용하려면 동료와의 거리를 4~6미터의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플로어 밸런스(같은 팀 선수 사이에 일정한 간격)가 맞는다. 플로어 밸런스가 맞아야 공격하기도 쉽다.
휠체어 농구 A팀의 공격을 본 적 있다. A팀의 공격은 왼쪽, 오른쪽에 각각 2명씩 하이 포스트와 45도 3점 라인 사이에 가만히 서있으면서 탑의 있는 가드가 공만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가드가 왼쪽 45도 선수에게 볼을 주면 볼을 잡은 선수는 2대 2 픽 앤 롤(골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센터가 가드의 패스를 받아 슛을 하는 일)을 하다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코트를 가르는 패스를 했다. 볼을 잡은 오른쪽 선수는 왼쪽 선수와 똑같이 2대 2 픽 앤 롤을 하다 공격이 원활하지 않자 시간에 쫓겨 슛하는 경우를 보았다.
움직임이 없는 농구를 하다 보니 24초 시간만 허비하다 시간에 쫓겨 슛을 하는 거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농구란 종목은 공이 없을 때 선수의 움직임에 따라 승패가 크게 갈리는 종목이다.
나는 우리 팀이 시합 중에 볼 없는 움직임이 좋아지게 하려고 훈련을 1~2단계를 나눠 지도한다.
1단계. 왼쪽 코너 A, 왼쪽 45도 B, 탑 C, 오른쪽 45도 D, 오른쪽 코너 E라고 명칭을 정해 콘을 세워 놓는다. 선수들은 각 콘 위치에 선다. 시작은 C선수가 볼을 가지고 시작한다. C선수는 D 선수에게 볼을 주고 D 선수 방향으로 골대 쪽으로 컷인(자르다)을 한다. 그러면 왼쪽에 있던 B와 A 선수가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옮겨 빈 공간을 채워주면 C선수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골대를 지나 왼쪽 코너 A 선수가 있던 자리에 서면 된다. 이 훈련을 하면 1차적 슛 찬스는 컷인을 한 C선수가 되고 2차적 슛 찬스는 B선수가 된다. C선수가 컷인을 하면서 수비를 골대 방향으로 끌고 들어갔기에 탑에 공간이 생겨 슛 찬스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 C선수와 B선수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슛 찬스는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항상 고개를 들고 우리 팀 선수와 상대 팀 선수의 움직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손대범 기자의 저서『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농구전술』에서 전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코치 정선민은 공간 창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진 출처-https://www.google.co.kr/search?biw=1920&bih=962&tbm=isch&sxsrf=ACYBGNQ3QmnFPu_hjVXUvELqY9T-2_
“나로 인해서 공간을 확보하고 찬스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돼요. 그러려면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돼요. 공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되고, 전체적인 공의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하죠. 수비는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파악하고요. 우선은 내 앞의 수비자를 잘 알아야 해요. 결국 수비도 공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니까요. 또 수비를 확실히 떼어놓을 수 있어야 해요. 여러 속임 동작으로 수비를 반응하게 만들어야죠.”
정선민 코치가 말한 것처럼 선수들이 컷인 동작을 통해 공간 창출을 할 수 있게 됐으면 그다음은 똑같은 훈련에 응용만 해서 지도하면 된다. 볼을 주고 컷인이 아닌 백도어(수비 앞이 아닌 뒤로 잘라 들어가는 방식)나 반대 스크린 후 골밑으로 빠지는 훈련을 하면 된다. 반복해서 훈련하면 어느 정도 몸에 익게 된다. 그러면 바로 2단계 훈련으로 넘어간다.
2단계. 5대 5 패스 게임(공이 바닥에 닿으면 안 됨). 룰은 정말 간단하다. 5대 5 시합 정식 룰에 드리블만 없다. 앞으로 전진하여 골을 넣으려면 패스(1포인트 신체적 특성상 바운드 패스 허용)를 한 후 움직여 볼을 다시 받아야 한다. 볼을 잡은 선수는 한 발자도 움직일 수 없으니 처음에는 모든 선수가 답답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룰에 적응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볼 없는 움직임이 좋아진다.
내가 이 훈련을 지도하는 목적은 모든 선수가 볼 없는 움직임이 좋아지게 하려는 거다.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팀은 항상 상위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축구 감독 요한 크루이프는 볼 없는 움직임에 대해 "선수는 통계적으로 경기 중 3분만 볼을 소유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머지 87분 동안 무엇을 하느냐다. 그것이 좋은 선수와 나쁜 선수를 가른다."라고 말했고, 박지성 또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든 무너뜨려야지 공간이 나고 또 공간이 나야 좋은 공격 찬스를 만들 수 있는데 결국에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선수가 움직여야 되고 어떻게 수비가 막기 어렵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그 조그마한 공간이 열리고 그 공간을 우리 팀이 공격해서 찬스를 만들어내는 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움직임이 중요하죠.”라고 재차 선수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https://www.google.co.kr/search?biw=1920&bih=962&tbm=isch&sxsrf=ACYBGNTbZXCQoOnd4VWin849HgBSnK
우리나라 KBL(한국 농구 연맹, Korean Basketball League)에서도 오프 더 볼을 잘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창원 LG 세이커스의 조성민 선수다. 우리는 조성민 선수를 ‘조선의 3점 슈터’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오히려 3점 슛보다 볼 없는 움직임이 더 좋은 선수다.
조성민 선수가 볼 없는 움직임을 통해 역전 승한 일화가 있다.
2013년 부산 KT 소닉붐 소속이던 조성민 선수는 데드 볼(아웃된 공) 상황 오른쪽 사이드 라인에서 전태풍 선수에게 패스를 하였다. 패스를 한 조성민 선수는 커티스 위더스의 스크린을 받고 왼쪽으로 가는 척하다 다시 커티스 위더스의 스크린 받고 오른쪽 45도 3점 라인 위로 올라와 3.3초를 남기고 3점 슛을 던졌다. 조성민 선수를 수비하던 LG 세이커스 박래훈 선수는 조성민 선수에게 파울까지 하였다. 조성민 선수는 보너스 원샷까지 집어넣어 87대 85로 역전승하였다. 이 일화는 농구계에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농구 경기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는 그런 것 같다. 고인 물은 썩게 되어 있고 술잔에 술이 비워 있어야 술을 따랐을 때 넘치는 않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공간을 비워주고 공간을 채워줘야 팀은 승리하고 사람은 성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간명한 이치라 쉽게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