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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May 05. 2022

10억 집에 살아도 이런 날씨엔 나오고 싶겠지?

초록의 계절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을 넘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어색만 느낌이 든다. 10억이라는 숫자와 평균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아.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평균(average) 단어의 뜻이 맞다. 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20~30년은 햇반에 참치캔만 먹으며 살아야 한다. 아니면 매달 이자 폭탄 맞아가며 평생 은행의 노예로 살던지. 


그렇게 아무것도 안 쓰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가고, 소처럼 일만 해서 대출금 갚으며 10억 집을 가지고 나면 관절통에 힘겨운 환갑이 되어 있겠지. 막상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10억 집이든 1억 집이든 다 똑같은데 말이다. 참 여러 집을 가봤지만, 인테리어만 적당히 되어 있으면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몇 층인지 여기가 빌라인지 아파트인지도 구분이 안된다. 



가끔 운전을 하다가 신호대기하거나 버스 차창에서 밖을 바라보면 흔하게 들어오는 고급 아파트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사업이 대박 나거나, 연예인이 되거나, 100만 유튜버가 되거나, 투자가 대박이 나거나... 어쨌든 하나는 터져줘야 거기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시대도 잘 타고나야 한다. 1990~2000년에 태어난 세대는 그 누구도 겪지 못한 지옥의 역사를 새로 써가는 중이다.



차창을 열어 잠시 풀내음 가득한 초록의 봄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해본다. 


"저런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이런 날씨엔 밖에 나가고 싶겠지? 집에만 있으면 지겹겠지?"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진부한 말이 나는 참 좋다. 10억을 가지진 못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사실 더 많다. 특히 이런 계절의 초록의 길거리와 바람 내음. 돈 조금 못 번다고 길거리에 걷지도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도로는 공공재니깐. 주머니에 한 푼도 없더라도 번쩍한 빌딩 사이를 무료로 걷고, 계절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5천원만 있으면 고급스러운 카페에 한두 시간 머물 수 있다.


주변에 보면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친구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는데, 얼굴에서 느껴지는 행복은 별로 상관관계를 느끼지 못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벌이가 매우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삶에 찌들어가지 않고, 생기가 돌고,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와 행동을 나눈다. 괜찮은 젊음이다. 돈은 알아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사는 연예인은 주변 사람 도움 없이는 흔한 길거리를 편하게 걷지 못한다. 반면에 나는 나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가서 날씨를 느끼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좋다. 내차가 비록 고급 외제차는 아니지만, 롤스로이스나 벤츠랑 비교해봐도 목적지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신호등까지 소득에 따라 차별하지는 않으니깐.





초록의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 창문 밖에 무언가 타는듯한 봄의 냄새가 나는 오후 4시, 여전히 밝고 눈부시며 저녁을 기대하게 하는 차분한 오후 6시, 봄밤의 아득한 수평선으로 별거 아닌 대화를 곁들이며 걷는 저녁 8시, 그리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밤바람과 가로수의 인사를 받는 저녁 10시.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흘러가고.


집에만 있기 아까운 날씨에 마음껏 나갈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언제 저장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의 명언을 되새겨본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인 이유가 있어, 왜냐면 오늘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거든. 그러니깐 우리는 오늘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어. 바로 지금."



-부기.

그래도 누가 10억을 준다면... 참 좋겠다. 당연히 넙죽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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