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금 늦게 눈을 떴다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의 경우는 ‘아 오늘 출근하지 말까?’하며 순간적으로 스치는 고민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 보통은 머지않아 몸을 일으키는 게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반차를 급히 쓰고 더 잔 날도 있다. 생각보다 극단적인 편이다.
나에게 잠은 먹는 것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자도 언제든 또 잘 수 있고 낮잠을 3시간이나 잤어도 밤에도 잘 잔다. 가끔 카페인의 공격으로 밤을 꼴딱 새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난 정말 잘 자는 편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만큼 말도 안 되는 완벽을 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충분히 쉰다면 완벽히 피곤하지 않은 상태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하는 거다. 나는 정말로 잠을 많-이 자고 힘들이지 않고서 집에서만 하루 종일 쉬었다면 몸 어느 한 군데도 쑤시지 않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기대했다.
나의 20대 초중반은 일 년 중 집에 있는 날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었고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지만 집에 있는 걸 심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약속을 만들어서든 혼자서든 무조건 나가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하루도 빠짐없이 피곤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쉼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 그때 체력을 다 써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몇 년 전, 혼자 만의 쉼과 집에서의 휴식을 진-하게 경험하게 되면서 그런 시간을 사수하기 시작했다. 정말 사람은 변한다.
그 때문일까, 쉬는 날엔 열심히 쉬기만 했으니 피곤하지 않아야 하는데 도대체 이 피곤한 느낌은 뭐지? 주말을 잘 보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 쉬었는데도, 모든 걸 절제하고 쉼에만 집중했는데도 내 몸은 왜 피로를 느끼는 거지? 의문으로 가득했다.
이제는 시간을 지나 의문이 마침표에 다다랐나 보다. 나는 완벽한 쉼은 없다고, 온전히 피곤하지 않은 상태는 아마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왠지 지친 기분에 어깨가 뻐근한 그 느낌이 항상 불쾌했던 나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가뿐한 상태에 닿기를 바랐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바랬다. 하지만 이 육체 몸뚱아리를 갖고 사는 동안에는 아무리 바쁜 날에도, 바쁘지 않은 날에도, 하다 못해 쉼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도 인간은 피곤할 수밖에 없구나. 이 피곤함은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지만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시 배가 고파오듯이, 아무리 쉬어도 결국 완전한 채워짐은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내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나 보다.
오늘도 나는 또 다른 이뤄질 수 없는 나만의 온전함을 꿈꾼다. 피곤하지 않은 상태를 바라는 거야 어쩌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직 나에겐 내가 꿈꾸는 수많은 섬들이 많이 남아있다. 언젠가 내 스스로가 완벽과 온전함을 좇다가 혼자 지쳐 주저앉지 않도록 오늘도 조금씩 받아들이고 내려놓으며 살고 있다.
작가의 안부
그 일련의 과정으로 평소처럼 공을 들여 글을 써 내려가기보다 목요일의 퇴근길, 치열한 지하철에서 후딱 적어보았다. 이 또한 온전함을 내려놓는 나만의 도전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서 내놓은 글은 아닐지라도 기록은 소중하다. 비록 꽉 찬 지하철에 신발이 밟히는 퇴근길이었지만 나의 다짐을 담아 오늘 밟혀버린 나의 신발을 커버 사진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