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이야기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마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까지 세 번에 걸쳐 확인하는 것을 어떤 절차로 정해두고 있다. 정말 맘에 드는 소설을 만나면 그 작품을 세 번 읽어본다. 그래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정말 좋아하는지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까지 오래 걸렸고,지리산을 좋아한다 확신하기까지도 삼 년이 걸렸다. 일 년에 한번씩 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달리기에 대해서도 좋아한다는 내적인 확신 내지는 모종의 안정감 같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 번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는 세 번이라는 경험을 정하기가 다소 애매한 감이 있었다. 그냥 세 번 달려보고 말하기엔 좀 짧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고 세 달 달려보고 생각해 보자니 그 기준도 애매하다고 여겨졌다. 나는 늘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셋'을 세어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내게는 세 번이라는 '횟수'가 늘 기준이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세번째 10km를 앞두고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달리는 와중에 언젠가부터, 은근히 마음 속으로, 10km 달리기를 세 번 정도 하고도 달리기가 맘에 든다면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고 여겨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5월이 되어 세번째로 10km를 달렸고, 알게 됐고, 말하게 됐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몹시 천천히 달린다. 이것은 전혀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정말 천천히 달린다. 나로서는 빨리 달리고자 하는 욕심은 아직 없고 빨리 달리려고 욕심을 내면 무릎이 아프기 때문에 더더욱 무리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세번째 10km는 지금까지의 10km중에서 가장 빨랐고, 보호대 착용 없이 달렸는데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말로 천천히 꾸준히 달리면 계속 조금씩 빨라진다는 말은 정답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달리기였고, 또 무릎이 튼튼해지는 걸 확인한 달리기였고,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확신을 가진 달리기였다. 이런 점에서 여러모로 세번째 10km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빠르고 멋있게 달리는 분들을 보면 정말 “간지 난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달릴 수 있겠지. 아마 3-5년은 걸릴 거라고 본다. 한국인이 좋아하지 않는 속도지. 괜찮아, 나는 그런 속도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뭐 설령 그렇게 간지나게는 못 달려도 내가 달리면서 나 나름의 최선이 있다. 내 육신은 내 육신이 가진 한계가 있으니까. (나의 스승) 빙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 자신의 최대한이 되라고. 나는 그거면 된다.
아무튼 이번 10km, 세번째 10km를 마치고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무릎 보호대를 하지 않고 2분 정도 빨라진 기록과 끝나고도 남아있는 에너지와 아프지 않은 무릎! 그렇게 마친 10km! 아 나는 멋져! 라고 생각했던 날의 기쁨. 앞으로도 이렇게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