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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May 22. 2024

최선과 차선 혹은 차차선

내 선택은 뭐였을까?




내가 인생에 가장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난 망설임 없이 2017년부터 2018년을 꼽는다. 2017년 1년 전체와 2018년 6월까지. 약 1년 반. 이유는 내가 쓰리잡을 병행하며 대학원 논문까지 유예 없이 한 번에 끝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졸업 논문이 몇 번 뒤집어져 막판 2주는 하루 2,3시간만 자고 일과 논문을 썼어도 행복했다. 이 고통이 끝나면 나에겐 분명한 행복이 올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지금 만나는 남친이 언제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건 과거고, 지금은 아니잖아.




그래, 생각해 보면 최선을 다해 살았던 건 이제 과거가 되었더라. 지금은 차선 혹은 차차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 인생은 차차선 혹은 차차차선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졸업 후에도 나는 여전히 어렸고, 대단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어디서 나를 스카우트해 간다거나 대단히 높은 연봉을 받을 만큼의 실력이나 능력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대학(혹은 대학원)을 졸업하면, 대단한 능력이 나에게 생긴다고 믿으며 그 시간들을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졸업도 하고 나니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퍽 암담했다. 방향 없이 열심히 산다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과거의 나를 보며 깨달았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얻은 것이 없던 지난날의 나는 인생을 쉽게 포기했다. 엄마는 “그러려고 대학원까지 보내준 줄 아냐”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거기서 뭐를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왜 삶은 쉽게 갈 수 없는 걸까.




나는 요행을 바란 것도, 놀고먹는 삶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 한 몸만 주변에 피해 주지 않고 살길 바랐다. 근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20대 후반에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어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 인생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렸던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인생을 방향 없이 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대학원 전공으로 커리어를 쌓았지만, 현재 나에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흔한 졸업장뿐. 생각해 보면, 대학원 전공은 내가 미친 듯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는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차선책이었다. 지금 당장은 취업하고 싶지 않아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차선을 선택했으니 결과도 최고가 아닐 수밖에.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는 핑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거였다, 나는.








일을 해도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이러려고 사람들은 18년을 수능을 위해 악착같이 공부하고, 또 대학을 가는 걸까? 내가 원해서 가지 않은 대학에서 한 공부로 평생을 먹고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반복될 때쯤. 나는 처음으로 일하면서 내 기준에 사고를 쳤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는데도 2달 가까이 퇴사 일자가 잡히지 않아서 내일 배움 카드로 무작정 학원에 등록해 버렸다. 그리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으니 후임을 최대한 빨리 구해주면 좋겠다고 회사에 통보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그렇게 그만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나한테 어떤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알아버렸으니까. 이전까지 살아온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아마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던 그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날이 앞으로, 곧 가까운 미래에 닥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생에 제일 잘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때 망설임 없이 내일 배움 카드로 영상편집과 디자인을 배우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건 (현재까지) 내 인생에 가장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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