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전공도 포기했다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동안 공부한 전공 모두를 포기했다.
학과는 내가 선택했지만, 전공을 살려서 한국에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였다. 전공을 살려보기 위해 대학원을 진학했으나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한국에서 한국어 교사의 현 위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한국인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뭐가 어려워?' 정도이기 때문에 급여가 높지 않다.
졸업 후 진로도, 직장도 꾸준히 바뀌었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생각해 보면 겁이 없었다. 결혼에도 뜻이 없어서였을까. 나 한 몸 먹여 살리면 되는데 뭘 못하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치열한 20대를 보냈던 것도 같다. 가끔, 기간제 교사와 시간 강사를 겸업하던 그때가 좋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잠시 뿐. 평생 그렇게 살 수 있냐고 질문하면 대답은 늘 NO였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디자인과 영상편집을 배우고, 내 적성을 찾았다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막상 1년 정도 회사에 근무해 보니 나는 정말로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회사와 잘 맞아서 다니는 사람이 어딨냐고 하지만, 내가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그 이상이다. 정해진 장소로 출퇴근을 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비슷한 일을 하는 반복적인 행위에 나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들이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세상에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게 만들더라.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지만,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수익 파이프라인이 안정화가 된다면 무조건 다시 나올 생각이다.
어느 날 전공을 포기한 나에게 친한 동생이 물었다.
전공을 포기하면 어떤 기분이야?
대학원까지 20대 중후반이 되도록 공부했던 전공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그간 살아온 이십몇 년의 인생이 몽땅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특히 부모님이 나를 너무 못마땅해하셨다. 비싼 돈 주고 대학원까지 졸업해 놓고 대학 안 가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냐고. 여태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았으면서 아직도 니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를 못하냐고.
이십 대 후반까지 나는 내가 세상에 제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나는 꽤 길게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눈을 감으면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랐다. 지인의 가족상 소식이 들려오면, 내 남은 삶을 차라리 그분에게 다 드리고 내가 당장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올해 초 인스타에서 우연한 알고리즘에 이끌려 유튜브 [짠한형 신동엽]에 출현한 화사에게 신동엽이 해준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멋있을 수는 없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고 성장하고,
진화하면
어느새 멋있는 어른이 되는 거야.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
멋있는 어른이 될 수 없어.
멋있는 척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짜 멋있으려면 별의별 거를 다 겪어야 해.
그 모든 것들이 단단한 나이테를 가지기 위해서라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멋진 어른이 되어가는 자양분으로 삼고 사는 거라고.
당시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 영상을 보고 새벽에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그랬다. 학교와 대학원을 거쳐오면서 어떤 일이 나랑 맞지 않는지, 나와 잘 맞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과거에 내가 해왔던 과정이 없었더면 내가 디자인과 영상편집을 배웠을 때, 이 길이 나와 맞는 길이 맞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수많은 재미있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변화무쌍한 내 인생에 딱 하나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것. 고등학교 이후로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잊고 살았다. 어릴 때 내 꿈은 '작가'였다. 비록 아빠가 80만 원짜리 인생이 되고 싶냐고 해서 포기했지만, 블로그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내가 한 때 작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지금은 작가를 꿈꾸고 있지는 않다).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되어가는 시대. 나는 이제 1/3을 살았다. 중위나이 17살을 빼면 나는 아직 중학생이다. 조금 더 방황하고, 조금 더 헤매도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내 삶은 남이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다.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행복할 수 없다. 이건 내가 7,8년 동안 꽤 우울한 삶을 살아오면서 몸으로 느낀 결과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하루가 행복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늘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내가 생각보다 꽤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가 오늘 배를 굶지 않는 것도, 에어컨을 틀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원하는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보고, 듣고, 말하고, 걸을 수 있는 것조차 나에겐 다 행복이다.
근데, 여름은 참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