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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18. 2021

나는 차라리 배부른 돼지개가 되겠다.

식탐, 그것은 삶의 원동력

너무나도 다른 우리 집 녀석들에게도 공통점이 몇 개 있다.


‘네 발로 걷는다.’와 ‘식탐이 쩐다.’


특히 푸코는 가끔 먹기 위해 태어난 것 마냥 엄청난 식탐을 지녔다. 어릴 적부터 길거리를 배회하며 고생한 탓에 측은히 넘긴다. 지나친 식탐 덕에 녀석을 훈련하기 쉽지만, 간혹 먹는 것 앞에서 주인도 못 알아보는 푸코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광고에 나오는 여유로운 햇살 맞는 개와의 산책은 환상이라는 걸 깨다르며   혹시나 무얼 주워 먹진 않을지 매의 눈으로 녀석의 주둥이를 감시한다. 녀석이 5초 이상 코를 처박고 있으면 필히 무언가 흥미로운 물체가 존재한다. 썩은 개구리 사체라든지, 말라비틀어진 다른 집 개똥이라든지, 그리고 닭뼈라든지. 선선한 날씨의 주말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이 먹다 버린 치킨(닭뼈)이 공원 여기저기에 은신하고 있다. 개에게 닭뼈는 치명적이라서 기겁하고 뺏으려다 녀석에게 물릴 뻔한 적도 있다. 그저 없이 자란 유년기에 대한 원망에 원망을 더하며 간신히 넘기지만 말 나온 김에 묻는다. 공원에서 치킨 먹고 왜 그냥 버리고들 가는가.


푸코의 식탐은 다른 경쟁자(?)가 있으면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한다. 친구 스카(래브라도, 남, 45kg의 검은 털)와 있을 때 둘 앞에 간식을 놓아주면 푸코는 스카 것을 먼저 먹고 자기 걸 먹는다. 덩치만큼이나 착한 스카는 푸코에게 간식을 뺏기고도 얌전히 기다린다. 푸코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풍족하게 자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스피츠 류인 푸코와 달리 래브라도라는 순한 종이라 그런 걸까. 녀석은 반려인의 부름을 못 알아듣는 '척' 하다가도 '맛있는 거', '간식', ‘먹을까?’라는 말에 반응한다. 평소엔 아무리 열심히 불러도 오지 않는 개푸코.


얌전히 먹을 걸 기다리는 편.


언젠간 그의 식탐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려고 벼르던 중 사건이 터졌다.


푸코가 짖으며 두부를 괴롭히는 못된 순간이 찾아왔다. 다행히 푸코와 두부 둘 다 마음 넉넉하고 느릿한 녀석들이라 별 탈 없이 합사 했다고 생각했건만 두부가 캣타워에서 내려오려고만 하면 (두부는 오전 중에 거실을 돌아다니고, 소파에 누워서 잔다.) 푸코가 두부에게 입질을 하며 두부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두부도 마냥 당하고 있는 성격은 아닌지라 발톱을 잔뜩 세우고 푸코 콧등을 휘갈겼다. 오 마이 갓.


경계하고 짖는 푸코의 낯선 모습이다. 이전에 공동주거지에 살았을 때 이웃들이 개를 키우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조용한 푸코가 그렇게 온 몸통으로 짖는 일은 흔치 않다. 쫄보 김푸코가 남을 공격하다니. 며칠간 푸코는 이름에 걸맞게 캣타워 앞에서 두부를 감시했고, 덕분에 두부도 푸코도 나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마 자기 영역을 자유로이 오가지 못한 두부의 스트레스가 무지막지했을 것이다. 원인을 파악해야 했다.


두부를 감시하는 푸코


인간의 시선에서 두세 가지 가설을 세워보고 두부의 캣타워를 옮겨봤다.


가설 1. 푸코는 두부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걸 싫어한다.
가설 2. 푸코는 두부의 방이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두부가 영역을 침범하는 걸 싫어한다.
가설 3. 푸코는 두부가 밥을 먹는 걸 질투한다.


첫 번째 가설 ‘푸코는 두부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걸 싫어한다.’ 갑작스러운 합사로 인해 푸코가 스트레스를 받은 건지 걱정됐다. 가장 유력한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두부의 캣타워는 거실 베란다로 옮겼고, 두부는 푸코를 피해 소파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푸코의 감시 때문에 활동성을 잃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푸코를 가소로이 여기며 집을 조용히 잘 돌아다녔다. 푸코가 집착한 것은 두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됐다. 다시 우리의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물론 하루 정도.


정작 문제는 푸코였다.

침묵을 좋아하는 원래의 푸코대로 돌아가 더 이상 짖는 행위는 멈췄으나 두부 없는 두부 방에서 도저히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잠도 두부방에서 자고, 반려인을 졸졸 쫓아다니다가 반려인이 거실에 자리 잡으면 다시 두부의 방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가설이 세워졌다. ‘푸코는 유독 두부의 방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우선은 푸코와 두부가 각자의 영역이 정리된 것 같아 관찰을 재개했다.


마침내 분리 후 첫 식사시간이 되었고, 모든 상황이 이해되며 두 번째 가설도 틀렸다는 걸 확인했다.


진실은 이러했다. 하루에 두 번 듬뿍 식사를 하는 푸코와 달리 두부는 소량 여러 번 식사를 한다. 두부는 자율급식을 하는 여타 고양이들과 달리 꽤 살이 쪄서 한꺼번에 많이 주면 주는 대로 다 먹어버리기에 횟수를 나눠줘야 했다. 푸코는 한동안 이를 지켜봤고 참았나 보다. '언젠가 나도 주겠지?'라는 푸코의 기대와 달리 반려인은 두부에게만 급여하는 횟수가 잦았고, 식탐 많은 우리 개는 여기에 단단히 뿔이 났던 것이다.

반려인에 대한 애정 어린 질투라고 포장하기엔, 다른 상황에선 전혀 질투하지 않는 걸로 보아 아마 먹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푸코 삶 최고의 역린, 먹을 거.


'왜 쟤만 먹을 거 줘?'


밥통을 지킨다


마지막 가설을 입증하고자 푸코에게 먼저 밥을 주는 순서로 바꾸자 문제의 실타래가 풀려나간다. 푸코의 새로운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이 해프닝을 들은 제야는 '어렸을 때 읎이 자라서 그래.' 라며 푸코를 안타까워했다. 이건 마치 첫째에게 예상치도 않던 둘째가 생긴 기분이랄까. 어릴 적 엄마가 어쩌다 가끔 용가리 치킨을 튀겨주면 동생 몰래 재빠르게 몇 개를 밥 밑에 숨겼다. 남동생은 나보다 6살이나 어렸음에도 나 못지않았던 식탐을 갖고 있었기에, 우리는 식사시간마다 경쟁하듯 맛있는 반찬을 쟁취했다. 외동으로 자란 친구들에게 유년기의 밥상머리 경쟁 이야기를 해주면 이런 데서 성격 형성이 되는 것 같다며, 6살 어린 동생 껄 굳이 뺏어야 했냐는 핀잔과 함께 혀를 끌끌 찼다. 첫째가 아닌 사람은 평생 알 수 없다. 용가리 치킨을 더 먹으려는 어처구니없는 욕심은 홀로 받던 애정이 어린 동생에게 더 흘러간다는 묘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식탐이다. 오롯이 혼자 차지했던 애정과 맛있는 시간을 푸코는 왠 낯선 뚱뚱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털덩이와 나누려고 하니 그저 억울하고 속상했을 터.


이렇게 두 자식을 키운 엄마는 마음 따뜻한 엄마답게 푸코의 지나친 식탐이 안쓰럽다며 전문 행동교정치료를 권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동생을 처음 집에 데려올 때 나(첫째)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공감 아닌 공감을 해주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푸코의 식탐이 온전히 조절되면 좋겠지만 나는 녀석의 식탐이 강아지로써 적당한 범주 안에 있다고 본다. 반려인의 밥상에 달려들지 않고, '기다려.'를 할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의 식욕 혹은 식탐은 그의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삶의 동력이 푸코에겐 ‘먹는 거’일지도. 산책 후 먹는 간식을 위해 푸코는 하네스를 보며 꼬리를 흔든다. 산책 시간보다도 산책 후 먹는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 유기견 보호소의 충격 때문에 물을 싫어하면서도 간식을 위해 목욕을 꿋꿋이 참는다. 산책이 마무리될 때쯤 특유의 개 고집을 부리다가도 '집에 가서 간식 먹을까?'라는 소리에 뱅글뱅글 돌며 꼬리 치는 녀석 덕에 생의 활기를 느낀다. 매번 유0브에서 나오는 우아하게 식사하는 개와 고양이와 사람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음을 여실히 느낀다. 살찌면 늙어서 고생하니까 적당히 먹기를 시도해보자 녀석들아.




덧.

추후에 두부는 푸코 못지않게 엄청난 식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식탐 넘치는 두 녀석들 덕에 반려인은 매번 식사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고 한다. 식탁 밑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푸코와 달리 두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식탁 위로 올라와 집사의 손동작에 집중한다. 고기 냄새에 온갖 다급한 냐옹, 멍 소리를 내는 두 녀석으로 인해 반려인은 집에서 육류를 소비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두부는 가끔 훔쳐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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