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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시간이 어떻게 돈이 될 수 있어요

나의 시간은 절망의 연속이었는데...

남한사회 정착 초기, 낯선환경 앞에서 온 몸의 신경이 가시나무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약속이 법이라니요? 시간이 어떻게 돈이 될 수 있어요.


“언제, 어디에서, 몇 시에 만납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일을 할 때나 친구를 만날 때 약속과 시간엄수에 민감한 편이다.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가족을 만날 때도 먼저 상대의 의사를 묻고 약속을 잡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있다. 처음 정착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정착 초기 만나는 남한사람들에게서 ‘약속이 법’ ‘시간이 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데 조금 긴,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정착 초기였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전도사가 여름수련회에 같이 가자고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수련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거절하는 것이 어려워 그냥 ‘네,’라고 대답했다. 날짜, 장소, 시간이 문자로 날아오고 만남을 기대한다는 응원도 달렸다. 하지만 약속한 날자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보통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대부분이 남한사람이고 탈북자는 한 두 명뿐이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탈북자를 처음 본다’는 말로 운을 떼고 난후 북한소식을 묻는다. 

북한사람들이 굶주린다는 게 사실이냐? 사람잡아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 터진 남북문제 어떻게 생각하느냐, 통일이 언제 될 것 같으냐, 등... 한국어인지 외국언지 모를 단어를 쏟아내며 ‘바나나(귤) 먹어봤어요? 이것도 못해봤어요?’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입장에서야 처음 보는 북한사람이 신기해서 던지는 사소한 호기심이라고 하지만 가난과 무식밖에 내세울 게 없는 자는 자존감이 지하로 곤두박질한다. 그들의 표정 하나에, 실오라기처럼 새어나오는 비웃음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내가 뭐 잘못했나, 북한말을 이해 못한 건가 온갖 눈치를 살피느라 고슴도치가 되던 기억에 소스라쳤다. 


나는 약속을 피해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어 전전긍긍하다가 전화기를 꺼버렸다. 좀 전까지 불안하고 두렵고 왕왕거리던 머릿속이 고요해지고 살았다는 안도감이 새어 나왔다. 나는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기 위해 문을 안으로 잠그고 창문 커튼까지 새카맣게 쳐놓았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속으로 이렇게 비웃었다. ‘웃기고 있네, 시간은 시간일 뿐이지 어떻게 돈이 될 수 있어.’

내가 살아온 시간은 금이 아니라 절망의 연속이었다. 나의 시간들은 배고픔을 견디고 도망자로 쫓겨 다니던 두려움이었다. 몇 날 며칠을 굶은 채로 보낸 나날이 허다했고 한겨울에 맨발로 한지 잠을 자던 시간도 있었다. 4겹의 두꺼운 철문 안에 갇혀 하늘을 원망하던 시간들은 하루가 1년 보다 더 긴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썩은 고인 물 같이 흐르지 않는 악취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스무 해를 견뎌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긴 후에야 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끔 이제 막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탈북자를 만날 때가 있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만큼 주눅 들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그들을 보면 10여 년 전의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그들의 불안한 눈초리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겼다는 불만이 생길 때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산물이 되었구나 싶어 괜히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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