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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준비되지 않은 자유

월드컵 공원의 표지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수많은 선택과 갈림길 중에서 나는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두려웠던 초창기 시절이 생각났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시작해봐.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게 자유야.”

자유를 찾아 온 나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우격다짐으로 ‘자유’를 설교하려들었다. 내가 원하던 ‘자유’가 아니었다. 나는 궁지로 내몰리는 생쥐처럼 점점 두렵고 숨이 막혔다.


하나원(한국에 입국한 탈북자가 3개월 동안 교육받는 기관이다. 교육내용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켜야 할 헌법과 은행, 지하철 이용방법, 직업 기술 등)을 나와 임대주택을 배정받은 후 처음 문을 두드린 사람은 도우미 아주머니였다. 그는 대뜸 남한에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다음 날, 교회에서 처음 본 목사는 젊을 때 공부해야 된다며 신학교를 추천했다. 옆에 앉은 장로는 북한 사람은 손재주가 좋으니 봉제기술을 배우라며 자기회사 명함을 건넸다. 하나원에서 만난 친구는 한 달에 120만 원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며 손을 끌어당겼다.

남한에서 살려면 컴퓨터부터 배워야지...

중국어 잘하면 가이드하면 되겠네... 

김밥 집에서 일할사람 찾던데...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기들의 세계를 강요했다.


‘선택’이라는 단어는 남한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 무엇을 선택해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아이였을 때는 국가에서 나눠주는 옷과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고 체육교사의 선택을 받아 수영을 배운 것이 다였다.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정해 준 직장에 집단 취직되어 노동자가 되었다. 학생이었고 노동자인 나는 언제나 선택을 당하는 쪽이었지 누구도 내 의사 따위를 묻지 않았다. 나는 북한 건전지가 끼어진 삐걱대는 인형이었다.

나에게 꿈이란, 선잠에서 깰 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몽롱한 개꿈이 전부였다.


중국에서 사는 10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대도시로 도망 다녔고 먹고살기 위해 가정부가 되었다. 살아오면서 500원짜리 양말 한 짝도 스스로 골라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이런 천지분간을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가라’는 말은 자유가 아니었다. 그 말은 나에게 두려움이고 폭력이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참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 몸은 속에 든 음식물을 깡그리 토해내는 것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빈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선택할까

누구를 만날까


선택은 기회가 많을수록 욕심이 클수록 어려웠다.

스페인의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찾는 여행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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