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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May 10. 2020

김치 반찬통을 박살 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다들 움직이지 말고, 다치진 않았지?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와장장창. 오늘 점심에 상을 차리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내서 식탁 위에 올리려던 김치 반찬통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 거실 바닥에 가차 없이 아주 조각조각 박살이 났다. 김치는 바닥에 널브러졌고, 유리조각들은 거실 거의 전역으로 미세하게도 흐트러졌다  


“다들 움직이지 말고, 다치진 않았지?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깨짐과 동시에 난감해하는 나를 보고 아내가 한 첫 말이었다. 아내는 접시나 그릇 등 유리로 된 식기를 누구라도 깨게 되면 언제나 이렇게 말해 왔다. 그러다 보니 나와 아이들, 우리 가족들은 뭔가 깨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란 말도 하고 생각도 그렇게 한다. 일부러 깨는 거 말고 우연찮게 실수로 어쩌다 보니 깨지게 되는 경우에 말이다.


아내는 항상 아이들이건 내가 무엇을 깨던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라고 말을 한다.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그리곤 좋은 일을 기다리면 된다. 실은 유리로 된 식기가 깨지는 것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기는 것과는 상관없다. 옛날에 그릇이 깨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어르신들은 말씀을 하셨다. 사기그릇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깨지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의미였지 싶다. 그러다 보니 뭔가 깨지면 이상하게 찜찜했다. 아내와 결혼을 한 후에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와 아이들은 종종 뭔가를 깨곤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제일 먼저 움직이지 말라하고, 다쳤는지를 확인했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제 무엇인가가 누군가 - 그게 누구든지 간에 - 의 실수로 깨지면 언제나 아내의 말을 순서대로 듣게 되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집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특히나 누구라고 이야긴 안 하겠지만 - 옆에서 웃고 있다, 유난히 잘 깨 먹는 아이가 있었다. 지금이야 다 큰 성인이 되었으니 다들 깨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오늘 내가 반찬통 하나를 박살 내긴 했지만.. 유난히 잘 깨 먹던 그 아이가 뭔가를 깨고 나면 본인의 실수라는 게 난감했을 수도 미안했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 아이는 이를 울음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말은 언제나 움직이지 말라하고, 다친 데는 없는지를 묻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자 그 아이는 어쩌다 깨더라도 울음보다는 본인이 다친 데는 없는지를 먼저 보고, 꼼짝 하지도 않고, 엄마를 보고는 빙긋이 웃는 아이가 되었었다. 지금은 다 컸지만, 그때의 귀여움은 아직도 남아 있다.


나는 오늘의 난감함과 미안함을 피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좋은 일이 생기길 은근이 안 그런 척 기다린다. 사랑하는 아내의 말들이 나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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