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의 화해

by 여지나


아침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엄마와 점심 약속을 잡아 두었다.

며칠 동안 고민한 결과였다.




얼마 전 식사자리에서, 엄마의 말에 남편과 나는 몇 번이고 시험에 들었다. 엄마가 귀가하신 뒤, 남편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등을 바라보며 내 마음은 무너졌다.


처음이 아니었다. 엄마는 기분이 상하면 주어를 생략한 채 비난했고, 그날의 대상은 남편과 나였다. 가끔이라고 해도 더 이상은 반복할 수 없었다.


말씀을 드려도 소용 없었기에, 다음 식사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멀리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번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온 가족이 모이지 않겠다고.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엄마가 내 입장을 이해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모녀관계에 대한 온갖 강의와 책을 다시 훑었다. AI와 상담도 했다. 대부분 '기대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첫 코스는 식당이었다.


최근 두 번의 식사 분위기 때문인지 엄마도 어색해하셨다. 잘해줄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도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 참에 우연히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최근에 엄마 기분이 안 좋았잖아."


그러자 왜 안 좋으셨는지, 섭섭했던 부분을 줄줄 읊으셨다.


"마음은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표현하면 상처가 돼. 내가 예민할 수도 있지만..."


말을 이어가는데 엄마가 대뜸 말씀하셨다.


"나도 예민해."


망했다. AI가 맞았다.


불안했던 이유는 진심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과도한 기대는 사라졌으나, 이왕 준비한 코스는 이어갔다. 카페 창밖을 보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 사진도 찍어 드렸다.


마지막으로 집에 데려다 드리면서 엄마의 집으로 들어갔다. 리곤 괜히 딴청을 피우다 말을 건넸다.


"엄마, 부탁이 있어."


엄마는 조금 놀란 듯 나를 돌아보았다.


"나 요즘 상담도 받고, 많이 힘들어. 저번에 식사할 때 분위기 안 좋았잖아. 사실 견디기 힘들었어. 금보다 심해지면 나 일상생활이 안될 것 같아.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그런 말은 안 하면 안 될까?"


실낱같은 희망으로 바닥까지 내보이자,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는 잠시 아무 말이 없았다.

그리고 두 팔로 나를 살며시 안았다.


"몰랐어, 우리 애기. 많이 힘들었구나."


거의 10년 만이었다.

엄마가 나를 안고 위로해 준건.


그리웠던, 뜻한 품이었다.


"엄마도 힘든 거 알아. 외롭고, 섭섭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줘. 부탁할게. 응?"


엄마의 대답은 또 의외였다.


"잊어버릴 것 같아. 적어놔야겠다. 엄마 휴대폰에 적어줘, 잊어버리지 않게."


새삼 엄마의 세월이 와닿았다. 그리곤 붙여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꾸 말이 나오네. 너희 잘못 없는 거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사실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된 후 앞으로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거라고 선언했었다. 많은 것을 참고 살아온 한 여자의 결심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내가 알던 엄마는 사라져 갔다. '너 아니면 누구에게 말하겠니'를 시작으로 내 마음엔 수많은 상처가 새겨져 왔다.


그래서 예전의 엄마는 거의 사라져 버린 줄 알았는데. 모성애라는 게 뭔지, 결국엔 딸을 위한 마음이 남아있었다는 게 감사하다면 바보 같을까.




아쉽지만 그 이후에도 엄마는 여전했다. 한 번씩 자기중심적인 모습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다행히, 엄마의 메모는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게 고마웠다.


아주 오랜만의 화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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