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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29. 2019

신영

사람들은 왜 섬에서 섬으로 가는 걸까요?

사람들은 왜 섬으로 향하는 걸까요?

- 네?


늘 궁금했어요. 왜 사람들은 굳이 굳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수고로움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땅에서 땅으로 가는 걸까? 섬에서도 왜 다시 더 작은 섬으로 향하는 걸까? 하고요. 어차피 다 같은 땅일 텐데.

- 배를 타니깐요.


배요...?

- 배를 타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괜히 설레잖아요. 자동차보다는 기차가 조금 더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공항만 가면 괜스레 마음이 들뜨는 것처럼 말이에요. 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는 교통수단이 아니잖아요. 그냥 배를 탄 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 특별한 걸 하는 것 같은 거죠. 그러니까 어쩌면, 사람들은 배를 타기 위해 섬으로 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와 나는 가파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왜 사람들은 섬으로 향하는 걸까 따위를 얘기했다. 귓가를 때려대는 바람으로 기억될 대화였다.


배가 섬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분주한 사람들 틈에 섞여 그녀와 나도 배에서 내렸다. 선착장엔 노출 콘크리트 형식의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건물이 있었다. 한 유명 카드사가 진행했다는 프로젝트의 일환인듯했다. 빨갛고 노란, 원색의 촌스러운 현수막은 그 최신식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부끄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건물 이곳저곳에 붙어있었다. 거기엔 '가파도 돌미역 8,000원', '가파도 청보리 차 팝니다'따위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일단 섬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배 타기 전에 한 번 가볼까요?

- 좋아요.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길을 따라 무작정 반대편으로 향했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았다. 가파도의 집들은 지형 때문인지 아주 낮게 엎드려 있는 듯이 보였고, 유독 흰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많이 보였다. 흰색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반사시키며 경미한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붉은색의 포장도로는 흰색의 집들과 대조되며 더욱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파도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흰색과 붉은색이 떠오른다. 우리는 섬 군데군데 전시된 해녀 사진들을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이 찾아다녔다. 청보리가 아닌, 우리가 이 섬을 찾은 이유였다. 제주 출신의 한 사진가가 찍었다는 사진들은 섬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나와 그녀 말고는 어느 누구도 이 사진들에 눈길을 길게 주지 않는 듯했다. 그 사실이 못내 좋았다.

섬은 무척 작았다. 이미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막상 체감으로 느끼니 더 작게 느껴졌다. 섬을 따라 가운데로 난 길을 죽 걸어가니 금세 반대편 바다가 보였다. 넉넉하게 배편을 잡아두었던 그녀와 나는 우선 점심을 먹은 뒤 섬을 한 바퀴 돌기로 결정했다. 저 멀리 짜장면과 짬뽕을 파는 집 앞에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짜장면... 혹시 저기 가고 싶으세요?

- 아뇨. 기다려서 먹는 건 딱 질색이라서요.

저도 여기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기엔 좀 식상한 느낌이네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나를 한 식당으로 끌고 들어갔다. 토끼가 끌려 들어갔다는 용궁을 이름으로 쓰고 있는 식당에선 옥돔과 각종 해산물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정식 2인분을 시켜 먹었다. 우리 앞엔 금세 반찬 종지가 식탁 가득 차려졌다. 메인은 옥돔이었고, 해조류를 비롯해 각종 젓갈까지, 대부분의 음식이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었다. 식당 이름과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깨작거렸다. 해산물이라니.


음식 괜찮아요?

- 사실... 제가 해산물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데, 괜찮아요.

그래요? 어떡하죠...

- 못 먹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스무 개는 넘을 듯한 반찬들 중 대여섯 개 정도만을 집어 먹으며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섬 둘레를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았다. 하늘 높이 떴던 해가 조금씩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저는 요즘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 그래요? 원래도 피아노를 치셨어요?


아주 어릴 때요. 어릴 땐 다들 피아노 학원 한 번씩은 다녔잖아요. 뭐 딱 그 정도였어요.

- 하긴, 저도 피아노 학원에서 딴짓하면서 시간이나 보내다가 동그라미만 쳐서 완료했다고 거짓말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좀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어요.

- 그러게요. 저도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해요.


그래서 조만간 피아노를 사려고요.

- 좋네요. 저는 요즘 피아노를 소재로 쓰고 있는 글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보여드려도 될까요?

좋아요.


바다가, 나른하네요.

- 그러게요, 나른하네요.

섬에는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곳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유명 카드사가 이 섬을 새롭게 단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들어 두었다는 예술가들의 집은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지, 예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만이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다. 늦은 4월의 날씨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산책을 하기엔 다소 더웠다. 나는 트렌치코트를 벗어 한 팔에 걸쳐둔 채 다시 그녀와 섬을 걸었다. 배 시간이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선착장으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가파도에서 가장 유명한 청보리밭을 구경했다.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마침 몇몇 아이들이 하교 시간이었는지 가방을 멘 채로 우리 옆을 지나갔다.


이런 곳에도 초등학교가 있네요.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 글쎄요... 저는 그보다 여기로 오는 선생님들이 궁금해지네요. 나이 들어서는 오히려 이런 곳으로 오고 싶어 하겠죠? 어린아이들은 섬에서 큰 섬으로, 섬에서 뭍으로 떠나고 싶어 할 텐데.


작고 외진 곳,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이제는 그런 곳들이 더 좋네요.

- 그러게요. 왤까요.


사람들한테 질려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어릴 땐 마냥 친구들이 좋고 큰 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것들에 닳고 상처 입으니까 숨어들게 되더라고요.

- 섬에서 섬으로, 사람들이 그런 곳들로 향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게으른 오후 3시의 햇살을 쬐며 선착장에 도착했다. 섬으로 들어오면서 본 건물 앞에선 사람들이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은 채 노래를 부르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축제 시즌이라는 것이 실감 나는 광경이었다. 세련된 노출 콘크리트와 그 위를 장식한 원색의 현수막, 어르신들과 몇몇의 젊은이들이 뒤엉켜 부르는 구성진 트로트 멜로디, 예의 어느 항구 같은 정겨운 풍경들이었다. 그 카드회사는 이곳에서 무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미숫가루를 살까 했는데 좀 비싸네요. 이걸 사면 먹으려나...

- 인터넷 주문도 된다고 하는데요.


오 그래요?

- 찾아보니 인터넷이 더 싸겠네요.

그럼 그냥 구경만 해야겠어요.


선착장 한편에 놓인 건물 안의 기념품들을 싱겁게 둘러보고, 그녀와 나는 배에 올랐다. 햇살이 나른해서인지 전날의 숙취가 이제 올라오는 탓이었는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배에 올라 탄 우리는 또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배의 뒤편으로 뒤집어 놓은 접시처럼 생긴 가파도가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섬에서 섬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섬으로 가는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네요.

-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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