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간과'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뭐.'
CPO와의 미팅을 마치고 나온 뒤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문장이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가 망한 뒤 다니게 될 다음 회사는 나름 심사숙고하며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심정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튼튼한 돌다리더라도 거센 폭우에 잠겨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자리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난달 예약해 두었던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는 일이었다. 런던 in 파리 out의 9박 10일 일정의 여행이었다. 큰 마음먹고 예매한 첫 해외여행 티켓이자 첫 유럽여행 티켓이었다. 그러나 당장 회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네 달 뒤의 비행기 티켓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수료를 한 푼이라도 덜 떼일 수 있을 때 취소하는 게 맞았다. 네 달 뒤에 백수여도 문제였고, 새로운 직장을 다니고 있어도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이번 여행은 포기해야 했다. 여행을 위해 작게 붓고 있던 적금과, 촘촘히 짜 놓은 10일간의 계획이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목적이 사라진 행위만큼이나 무의미한 것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컴퓨터에 뜬 '취소하시겠습니까?'라는 버튼을 누르는 일은 너무 쉽게 느껴져 오히려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몇 분 만에 나는 여행이고 나발이고, 당장의 생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뭐 가봤어야 아쉽지. 괜찮아.'하며 헛헛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 보려 노력했다. 막상 여행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생뚱맞게도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해외로 여행을 떠나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도쿄로, 파리로, 뉴욕으로 떠날 때 나는 어떻게 겨우 한 번 타는데 백만 원에 가까운 비행기 표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곤 했다. 그 돈을 지불할 수 없던 내 처지를 비관했다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그들의 여유랄까, 뭐 그런 나와는 다른 생활배경을 동경하곤 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취소가 완료되었다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상상만 했던 파리와 런던의 장소들을 떠올려보았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두었던 드라마 <셜록>의 촬영지나, 그 유명한 비틀스의 <애비로드>앨범에 나오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저녁이 되면 정각마다 조명이 반짝인다는 파리의 에펠탑과, 그렇게나 맛있다던 동네 빵집의 아침 바게트의 맛을 떠올렸다. 이젠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가만히 앉아 떠올렸다. 동시에 나는 다음 달의 월세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앞에서 끙끙대는 내 모습과, 수많은 '귀하의 역량에도 불구하고'라는 맘에도 없는 거짓말로 시작하는 수많은 거절의 이메일들을 떠올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내가 어떻게 하지... 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다들 어떻게 하실 거예요?"라는 슬랙 메시지가 왔다. 마케팅팀 혜인 님의 메시지였다. "모르겠어요. 하... 진짜 짜증 나네"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내 메시지 뒤로 "아 다다음달에 결혼하는데 골치 아프네 진짜.. 저는 일단 좀 지켜보려고요"하고 같은 방에 있던 다른 마케팅팀 팀원 승환 님이 메시지를 보냈다. 나뿐만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와중에 회사 내 소문난 마당발인 혜인 님은 "저도 일단은 희퇴 조건 나올 때까지 좀 지켜보는 걸로. 두 달치 + 가든리브라는 소문이 있더라고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서 저런 정보를 수집해 오는 건지 가끔은 대단한 구석이 있는 그녀였다. "가든 리브가 뭐예요?"하고 내가 묻자, 혜인 님은 회사에 속해 있지만 월급은 받지 않는 일종의 퇴사 유예기간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아마 조금이라도 경력 공백을 없애고 싶다거나, 직장건강보험에 좀 더 속해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 소속된 기간이 좀 더 필요한 이들을 위한 조건인 듯싶었다. 뭐가 됐든 회사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슬랙을 주고받은 뒤, 나는 혜인 님이 전해받은 소문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다음 직장을 얻기까지 며칠이나 버틸 수 있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곧 만기가 다가오는 여행 적금과, 기존에 들어 두었던 저축용 적금이 있었지만, 저축용 적금은 아직 만기까지 1년이 남아있어 당장 깰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회사가 소문대로 희망퇴직자들에게 두 달치의 월급을 준다고 했을 때 나에겐 두 달치 월급과 퇴직금, 그리고 곧 만기를 앞둔 여행 적금이 '생존'에 필요한 자금인 셈이었다. 그 돈을 모두 까먹고 나면 적금을 깨든, 아르바이트를 뛰든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다음 직장을 찾을 때까지 4~5개월은 버틸 수 있겠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뭐.'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날 이후 회사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온통 희망퇴직과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과 희망퇴직에 대한 공지가 비슷한 시기에 우리 본부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 내려진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회사가 나가라는 대로 곱게 나가주지 않겠다며 투쟁의지를 불살랐고, 조금이라도 쥐어줄 때 나가야지 안 그럼 퇴직금도 못 받을 수 있다며 상황을 금방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모두 공통점이라면 부지런히 채용공고를 살펴보며 다음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나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대책 없는 긍정과 바닥 없는 부정사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기 시작했다. 짐짓 괜찮은 척하던 마음은 회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순간마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멍하니 앉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되새겨보았다. 무수히 많은 시그널 속에서 '설마'하고 마음을 고쳐 잡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지경이 되도록 회사에 이상한 낌새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말부터 다양한 형태로 돌았던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난 지금,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작년 11월 무렵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