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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an 04. 2021

짜장면을 위한 변명

가족 회식 음식이던 자장면, 코리안 패스트푸드가 되기까지

짜장면은 특이한 음식이다. 흔치 않은 블랙 푸드지만 양념을 들춰내면 뽀얀 속살이 보인다. 우리는 모두 중국음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중국에서는 짜장면을 한국 음식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자장면’을 표준으로 지정하고 있긴 하지만, ‘짜장면’이라 해야 제 맛이다. 이런 국민 정서를 알았는지 현재는 짜장면을 써도 문법에 틀리지 않은 것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짜장면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겠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800원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친구와 돈을 모아 700원씩 들고 갔더니 아저씨가 오늘부로 짜장면 가격이 올라 못 먹을 뻔했는데 사장님이 ‘그냥 700원에 묵으라’ 봐주신 기억이 있어 이 가격을 잊을 수가 없지. 근데 뭐야,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싸잖아! 

자장면 프랜차이즈의 2,900원짜리 자장면. 이것만으로도 먹을만~

하지만 당시 버스값이 100원도 안 하던 시절이다. 지금 자장면이 보통 3,000~5,000원이고 버스 요금이 1,200원인걸 생각하면, 그 당시 자장면은 버스 요금의 8배 가까이하는, 그리 싼 음식은 아니었다. 짜장면은 보통 생일이나 졸업식 같이 축하할 일이나 인생에 큰 변화가 있을 때 먹던 가족 외식 메뉴였다. ‘응답하라 1988’ 같이 추억을 다루는 드라마에서도 짜장면은 대표적인 가족 외식 메뉴였다. 


하지민 언제부턴가 짜장면 가격은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것을 넘어 점점 싸지기 시작했다. 제면기가 보급되면서 면을 수타해야 되는 부담이 줄어든 데다, 저렴한 이미지에 맞춰 재료를 줄여 단가를 더 내린 탓도 있다.  감자와 고기가 듬뿍 들어간 수타 짜장을 ‘옛날 짜장’이라 부르며 비싸게 판매하는 것을 보라. 이제 짜장면은 중고등학생이 학교 수업 마치고 집에 가다 그냥 한 그릇 사 먹을 정도 대표적 한국 패스트푸드다. 


자장면을 시키면 평균 나오는데 5분이 걸리지 않는다. 간짜장을 시켜도 10분이면 후루룩 면치기를 할 수 있다. 갓 나온 짜장을 잘 비벼 입에 넣으면 고소하면서 짭짤한 기분 좋은 달큰함을 느낄 수 있다.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먹는 방식인데, 비비기 전 식초를 한 스푼 정도 치면 짜장면의 감칠맛이 늘어난다. 너무 많이 넣으면 망… 느끼한 맛이 싫다면 고춧가루를 골고루 뿌려도 좋다. 

간짜장은바쁜시간에 가면 제대로 안볶여 나올 확률 있음. 양파가 너무 물러있다면 이미 반쯤 볶아놓은 재료를 썼을 가능성도 있음

양장피나 깐풍기 등 요리도 시키지 않고 짜장면 하나 시킨다고 괜히 식당에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사실 재료 재고 관리가 어려운 요리보다는 대량으로 빨리빨리 조리해 후딱 먹고 나가거나 배달하는 짜장면, 짬뽕, 볶음밥 등이 중국집 수익구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점심이나 저녁 등 바쁜 시간에 요리를 시키면 되려 주방에서는 매우 귀찮아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맛있는 간짜장 먹는 꿀팁도 원리는 같다. 전분물을 넣지 않고 춘장만으로 하나씩 볶아낸게 간짜장. 바로 볶아내기 때문에 보통 양파가 많이 무르지 않고 재료들이 아삭아삭한게 일품인데, 맛있는 간짜장을 먹고 싶다면 비교적 주방이 바쁘지 않은 11시 30분이나 2시, 5시 등에 시키면 불맛 향긋한 맛있는 간짜장을 먹을 확률이 높아진다.  

느끼하다 싶으면 고추가루나 식초를 뿌려본다
이렇게 기름지고 착 붙는 맛은 비슷한 가격대의 음식에서는 느껴보기 힘들다

스웨이드 같은 부드러움을 보라. 예전 짜장처럼 큰 고기 덩어리가 많이 씹혔으면 좋겠지만 이대로도 크게 나쁘지 않다. 패스트푸드점 햄버거나 길거리 핫도그, 떡볶이나 순대와 비교해 가격도 비슷한데다 그냥 때우는 느낌 대신 뭔가 잘 먹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을 때 이만한 가성비도 없다. 


별 것 아닌 점심이었다며 허전한 생각이 든다면, 누구나 하나 정도는 있을 짜장면에 대한 추억을 생각해보자. 마침 짜장면에 대한 특별한 추억까지 있으면 짜장면은 단순한 간편식을 넘어 그리움까지 담긴 특별한 음식으로 변한다. 이렇게 난 점심에 짜장면을 먹은 후 글로 추억을 하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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