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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r 30. 2021

점심 한 끼에 진심을 다하는 이유

음식은 예쁜 그릇에 곱게 담아 먹어야...

재료만 잘 다듬으면 사실상 요리는 거의 끝

450ml짜리 컵에 쌀 6: 1 보리 비율로 담아 계량한 후 잘 씻어 밥솥에 넣고 물을 450ml 컵에 꽉 채워 넣어 안친다. 감자 반개를 채 썰어 찬 소금물에 담가 녹말 기를 없애주고 쪽파 10cm와 양파 1/4개 정도를 채 썰어둔다. 달걀 하나는 깨서 촵촵촵 풀어 준비해 둔다. 재료를 다듬는 동안 물 350ml과 다시마 한쪽을 넣어 팔팔 끓어오를 때 다시마만 건져낸다. 스팸도 몇 쪽 미리 잘라 놓는다.

감자는 잘 저어가며 센불에 빠른 시간 내에 볶아야 식감이 좋아진다

식용유를 넉넉히 치고 양파에 소금을 쳐 달달달 볶은 후 양파가 충분히 물러지면 다시마 육수 냄비에 양파만 건져 넣어준다. 이제 양파와 물이 끓는 동안 남은 기름에 스팸을 구워내  플레이팅하고 그 기름에 썰어 담가둔 감자를 소금과 후추를 쳐 볶아준다.

계란국의 핵심은 두 가지. 양파를 달달 볶는 것과 달걀물을 붓는 동시에 불을 끄고 계란이 몽글몽글 해지게 살살 젓는 것

감자를 한 2~3분 볶은 후 불을 끄고, 이제 양파와 팔팔 끓고 있는 육수에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달걀물을 붓는 동시에 불을 끄고 가볍게 가볍게 슬슬 저어준 후 그릇에 담아내 쪽파와 후추를 뿌리면 계란국 완성. 이제 이렇게 연성해낸 반찬과 냉장고에 있던 밑반찬을 각각 담고 계란국, 밥을 담아내 점심 식사를 시작한다.


우리는 보통 일을 하는 이유를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에서 가장 앞에 있는 단어가 ‘먹다’(Eat)인 것처럼 사람의 생활에서 먹는 것은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일이 바빠서, 때를 못 맞춰서, 때론 귀찮아서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도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성격상, 대충 해먹는다고 생각하고도 막 이런거 만들어 먹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되면서 식사 시간이 꽤 불안정했었다. 특히, 급한 마감이 있을 때는 빵이나 대충 비빈 밥을 책상에 들고 와 말 그대로 끼니를 ‘때우며’ 일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별 맛도 없는 식빵 쪼가리를 대충 구워 버터에 설탕을 살짝 친 후 우걱우걱 씹으며 글을 쓰고 있자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더라. 좀 더 맘 편하게 일하며 살자고 뛰어든 프리랜서 생활인데 되려 일에 쫓겨 신성한 한 끼를 ‘때우고’ 있다니… 이후 나름 기준을 가지고 일과 중 식사 원칙을 정했다.

   

끼니는 적당한 양을 먹되 거르지 말자

가급적이면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자

1주일에 1~2번은 깔끔하게 한 상을 차려먹자

오늘 먹은 점심 사진. 어우 지금 봐도 배고프네

나가서 사 먹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 주  1~2번은 점심을 직접 요리해 먹으려 한다. 거기에는 또 다른 원칙이 있다. 반드시 한 두 개의 반찬은 직접 요리해 먹는다. 냉장고에 있는 것을 꺼내 먹는 것 만으로는 왠지 제대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급적 하나의 반찬을 하나의 그릇에 적당량 덜어 먹는다. 반찬 개수가 많을 때는 뭔가 그럴싸한 식당에서 먹는 기분이다. 식판을 쓰거나 한 접시에 모든 반찬을 다 담아 먹으면 함바집에서 밥을 먹는 느낌이 든달까.


최대한 적당량만 요리하고, 반찬을 리필해 먹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면 집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먹어 과식하기 일쑤니까. 마지막으로,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으면 집에 쿰쿰한 냄새가 돌아 결정적으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 싫어지게 되니 담가놓거나 미루지 않고 설거지는 식사 후 바로바로 해 놓는다.


별것 아닌, 약간 귀찮은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당 두 어번씩 점심을 차려 먹는 게 마음속 안정화에 도움이 되었다. 잠시 음식을 하고 밥을 차리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된다. 예쁘게 담아놓은 음식을 보면 뭔가 한정식을 먹는 느낌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점심의 끝은 거덜이 국룰

밥을 먹을 때는 설거지가 귀찮지 않도록 음식을 싹싹 먹다 보니, 골고루 차리기만 하면 균형 잡힌 식단의 점심을 먹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예쁘기도 하고 이렇게 자랑도 할 수 있지 않나. 자신이 요리를 그리 잘하지 못해도 괜찮지 뭐. 사진과 글에는 맛이 안보이잖아.

이렇게 한상을 차려먹는 행위를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하는 가장 작은 시작'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돈지랄을 해서 몇 천만원짜리 기타를 산다고 해도, 가지고 싶던 까르띠에 시계를 차고다닌다 해도, 그리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던 iMac Pro를 산다 해도 그게 과연 진짜 내게 도움이 될까? 하지만 이렇게 밥을 정성스럽게 차려 음미하는 행위의 효과는 확실하다. 최소한 배는 부르지 않나.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은 늘 나를 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작은 것 부터 나 자신을 위하고 소중히 여길때 주위의 작은 것들도 놓치지 않고 관찰 할 수 있다. 세상 만물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먼저 나 자신을 위하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야기가 좀 거창했다. 오늘부터 다들, 자신이 먹는 한 끼를 소중히 여기고 정성스럽게 차려 먹어보자는 이야기를 고담준론 장광설로 떠든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냥 냉장고에 있는걸 꺼내 데워서 예쁘게 플레이팅해 먹는 것만으로, 그 식사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장담한다. 아니면 나한테 삐삐치세요. 내가 짜장면 한 그릇 사줄라니까.


p.s) 술상도 마찬가지. 혼술 한다고 과자에 소주나 맥주 먹지 말고, 간단하게라도 주안상을 차려 마셔보자.

혼술 할 때 만족감이 확 올라간다. 단점은, 술이 늘거나 다음날 숙취가….

요런 술상 좋지 않나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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